농장주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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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밤에농장주변이야기 2022. 1. 2. 16:57
폭풍 경보령이 났다. 태평양 바닷물 덕에 얼지 않는 우리 동네에 며칠 째 비 대신 눈이 와 쌓이고 얼고 오늘 밤엔 강풍이 분다. 벽난로 굴뚝 위를 휘감아 돌며 부는 바람이 제법 세다. * * * 바람이 무서운 줄 이 집에 이사하고 나서 처음 알았다. 남 으로 뻥 터져서 겨울엔 서남쪽에서 불어오는 칼날 같은 바람에 앞 문을 한 번 열었다 닫으려면 온 몸을 써야했다. 집을 도는 바람 소리는 별 별 괴성을 밤 새 지르더라. 이사 하고 며칠 안 되어 옆 집 사는 죤 웨인 같은 거구의 여인이 울타리에 기대어서 말을 걸어왔다. 이 집에 이사 온 사람들은 무슨 연유 에선지 얼마 안 살고 이래저래 불행해져서 이사 나가곤 했다' 고. -그래? 처음 이사 온 이웃에게 하는 이야기 치곤 별로 듣기 좋은 이야기는 아니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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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크리쓰를 보내며농장주변이야기 2021. 11. 28. 16:28
아무개야 내 사랑 크리씨가 오늘 이른 새벽에 떠났어. 지난 육십년 간 나의 빛 이었으며 연인 이었어. 내일 토요일 크리씨를 보내는 촛불 모임을 오후 네시에 가지려고 해. 와 줄 수 있어? 어제 낮에 받은 제프의 폰 메씨지다. 크리스마스에 태어나서 본명이 크리스틴인 크리쓰 제프는 애칭으로 크리씨가 부르고 이웃들은 크리쓰 라 하고. 그러지 않아도 엊그제 바바라랑 크리쓰가 크리스마스 생일을 맞게 될 수 있을 거야. 크리스가 누군데.... 했었는데. 이년 조금 더 전에 말기 췌장암 진단을 받고 열심히 투병 했다. 이젠 마른 눈인 줄 알았는데 굵은 눈물이 후두둑 아이폰 위로 떨어진다. 오늘 토요일 어제 밤 부터 비가 억수처럼 퍼 붓는다. 온 동네가 다 내려다 보이는 높은 곳에 있는 크리스랑 제프네 농장에 낯익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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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에서농장주변이야기 2021. 9. 14. 02:09
해가 떠 오르는 아침 남편이 동쪽 창을 열면서 참 계절 빠르게 바뀌네. 저어기 까지 들이비치던 아침 햇살이 벌써 요기까지 밖에 안 들어오네 가을 이다 부엌 창에 걸린 작은 잎의 단풍이 바알개졌네 타는 여름 강렬하게 피고 진 다알리아들 여름 끝을 보여준다. 씨를 남기기에 여념 없는 꽃들 더러 열매가 곱게 맺혔다. 꽈리 열매 꽃은 작은 하얀꽃으로 미미한데 열매 보듬은 주머니 색이 곱기도 하다. 스스로 찾아와 벌써 이년 째 머무는 이 보라꽃에 빨강 열매는 이름은 몰라도 이젠 낯 익네. 치열하게 여름이 살다 간 자리..... 여름이 한창일 때 놀러 와 뛰어 논 손녀의 웃음소리도 꽃 밭 여기 저기에 자글자글 남았네. 강형호의 꽃밭에서 (강형호 미국 에이전트 로 이웃 엘리엇님 강력 추천 응원하는 의미로) 이천이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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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농장주변이야기 2021. 6. 7. 00:24
드디어 어렵게 크리쓰랑 점심 약속을 했다. 뭐 해? 먹고 있어.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지. 토요일 아침 늦으막하게 느긋이 브런치 하자고. 뭘 먹으면 안되는지 물었다. 쇠라도 녹이는 위장을 가졌다고 자랑하던 게 불과 이삼년 전인데 일년 반 전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항암제 투여와 수술 그리고 또 항암제 투여 후 잠시 쉬고 있는 중 기름기를 피하고 생 야채는 소화가 어렵고 맵거나 자극적인 것 딱딱한 것을 피하고 부드럽고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을 먹는단다. 그거 나이 든 사람들 다 먹는 거 아냐? 그렇지 한 동안 우리 집 식사 때 마다 단골 손님이었던 크리스 먹어 본 것 중 뭐 먹고 싶은 것 있느냐 함께 꼽아 봤다. 소바, 죽, 우동.... 아침 부터 비가 흩뿌리고 하늘이 내려 앉는다. 해가 가리니 춥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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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알 데이 즈음에-2021년 오월 말(추가)농장주변이야기 2021. 5. 26. 23:17
골드 체인 나무 꽃이 피기 시작하면 메모리얼 데이가 가까와 오는 걸 안다. 나라를 위해 전사한 사람들을 기리는 날 오늘이 오월 이십육일 수요일 이니 오월 마지막 월요일 까진 닷새 남았다. 독립 전쟁 인디언들과의 무수한 전쟁 남북 전쟁 멕시코 전쟁 세계 대전 1, 2 한국 전 월남전 아프가니스탄 ......... 나라를 위해' 라는 이름 아래 죽어 간 펄펄하게 살아있던 젊은이들...... 맞 싸운 적군의 무수한 젊음들도 죽었다. 아무리 미화하고 영웅시 해도 죽은 이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추가) 주말에 동네 그로서리에 갔더니 입구에서 구십세가 넘으신 해병대 베테란 할아버지 두 분이 작은 성조기와 장미를 건네며 '제발 죽은 사람들을 잊지 말아달라' 고. 갑자기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이 분들의 죽어 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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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날에-가장 어두운 날 가장 마음이 밝은 날농장주변이야기 2020. 12. 23. 03:45
다섯시면 주위가 캄캄하다. 시계가 아니라 해에 맞춰 사노라니 요즘엔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네시면 저녁밥을 짓는다. 두 집 아래 사는 리사가 텍스트 메시지를 보내네. -Happy winter solstice! -즐거운 동지 (冬至)! 우린 동지에 Zinc 가 많은 붉은 팥죽을 먹어. 면역력을 높이는 민간 식이요법이야. - 밖은 일년 중 가장 어둡지만 마음 속은 가장 밝은 날이지. 리사가 튕겨준 말 일년 중 가장 어두운 날 가장 마음 속이 밝은 날 (The darkest outside, the brightest inside) 을 고맙게 받는다. -이렇게 줄창 퍼붓는 비도 축복이네 -나도 동감이야 . 오늘 부터 해는 점점 길어지겠지 비 내리는 어둠 속에서 리사랑 나는 동지를 그렇게 서로에게 밝게 권 한다. 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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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귀가 대들더라농장주변이야기 2020. 9. 11. 00:32
어제 샌프란시스코 근처에 사는 아들이 아침 아홉시에 집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공룡들이 왜 절멸 했는지 이해가 된다면서. 뭐 그렇게 쉽게 끝나겠니? 서부의 산불이야 매 해 연례 행사로 나는건데. 오레곤, 와싱톤주의 산불도 만만치 않아서 어제 오늘 우리 동네도 매캐한 냄새 까지 나는 중에도 나는 천연스레 '사는 쪽' 에 서 있다. * * * 구월에 이 살을 태우는 열기는 웬일인가 더운 열기로 바싹 타는 들, 숲에 한 점 불씨라도 당기면 금새 큰 불이 된다기에 없는 불도 다시 본다. 올 유월은 일월 처럼 춥고 비가 매일 와서 Junuary라고 불렀는데 해서 과일들이 신통치 않게 맺혔는데 이 열기에 포도들이 단물을 더하며 익어간다. 올해는 포도 따기는 틀렸다' 라면서도 곰팡이 스는 걸 막느라 포기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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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은 라벤다가 아니다농장주변이야기 2020. 7. 9. 14:42
뜰이 한참 보라로 물들기 시작한다. 유월 말 키가 작은 잉글리시 라벤다 종류들이 피어나기 시작해서 칠월 중순이면 뜰의 라벤다들은 대강 다 핀다. 올해는 유월 내내 비가 오다시피 해서 해가 모자라니 좀 더디 피는 듯 싶다. 오늘 칠월 팔일 오랜 만에 마음 먹고 라벤다 인물들 하나 하나 본다. 가장 먼저 피어나는 폴게이트 (folgate) *요리용 라벤다로 많이 쓰이고 인기가 높다. 질세라 곧 따라 피어나는 터커스 어얼리 퍼플 (Tucker"s Early Purple) * 잠이 잘오게 하는 베개용으로 많이 쓴다. 잉글리시 종류지만 요리용으론 안 쓴다. 히드콧 퍼플, 히드콧 핑크 (hidcote purple , hidcote pink) *역시 잉글리시 종류로 꽃송이가 크고 향기가 달아 요리용 으로 인기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