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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친구 크리쓰를 보내며
    농장주변이야기 2021. 11. 28. 16:28

     

    아무개야

    내 사랑 크리씨가 오늘 이른 새벽에  떠났어.

    지난 육십년 간 나의 빛 이었으며 연인 이었어.

    내일 토요일 크리씨를 보내는  촛불 모임을 오후 네시에 가지려고 해.

    와 줄 수 있어?  

     

    어제 낮에 받은 제프의 폰 메씨지다.

     

    크리스마스에 태어나서 본명이 크리스틴인  크리쓰

    제프는 애칭으로 크리씨가 부르고

    이웃들은 크리쓰 라  하고.

     

    그러지 않아도 엊그제 바바라랑 크리쓰가 크리스마스 생일을 맞게 될 수 있을 거야.

    크리스가 누군데.... 했었는데.

    이년 조금 더 전에 말기 췌장암 진단을 받고

    열심히 투병 했다.

     

    이젠 마른 눈인 줄 알았는데

    굵은 눈물이 후두둑 아이폰 위로 떨어진다.

     

     

     

     

    오늘 토요일

    어제 밤 부터 비가 억수처럼 퍼 붓는다.

    온 동네가 다 내려다 보이는 높은 곳에 있는 크리스랑 제프네 농장에

    낯익은 동네 사람들이 이 어두운 오후에 비를 맞으며 모여왔다.

     네 시 경이 되니 비가 완전히 그쳤다.

     

     

    크리쓰네 아랫 집에 사는 페니

    그 어려운 시간 동안 크리쓰를 돌보고

    그 시도 때도 없이 많은 병원 길을 동행해 주었던.

    초를 건네준다.

     

    누가 크리쓰 아니랄까봐.

    자신이 떠나고 난 후

    언제 어디서 누구들을 불러 촛불 모임을 어떻게 할 것인지

    미리 빈틈없이 계획하고 준비해 놓고 떠난 크리쓰.

     

     

     

    페니가 데크에서 큰 소리로 시작을 알리고

    우리는

    제프 가 처음 붙인 촛불을 차례로

    불 붙여 주고  받으며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더러는 아는 얼굴들

     만나서 반갑다고.

    그리고 이웃, 친구 크리쓰가 떠나서 아쉽다고.

    더러는 함께 눈 가를 소매로 훔치고.

     

     

    오지랍이 넓기도 했던 크리쓰

    섬에 사는 다양한 각 종의 사람들이 다 모였네.

    남편 제프와 함께

    영국에서 훈련된  수의사들로

    아프리카 사파리

    남미의 밀림, 가축농장

    서남 아시아의 밀림 속의 동물들 을 돌보느라

    지구를 두루 돌아다니며 일 해서인지

    사람 만나는 일엔  벽도 없고 거침이 없었다.

     

     

    순서도 없이 자발적으로 누구든지 원하는 대로

    크리쓰를 추모 하고

    남편 제프를 위로하는 말들을 나누었다.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 십칠년 전 우리가 이 섬에 처음 이사 온 이후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 친구가 크리쓰 야.

    동네 파머스 마켓에서 만났는데 첫 눈에 딱 내 친구로 보여지더라.

    나랑 친구할래?  그리고 나서

    우린 친구가 되었어

    크리쓰는 누구에게나 가깝게 다가갔어. 마치 물 처럼 자유롭고 경계가 없이.

    그리고  사람들의 연결고리 였어.

    서로 필요할 것 같은  사람들을 기가 막히게 알아서 만나게 해 주고 이어주고.

    누군가에게 남는 물건이 누구에게 필요한 지 잘 알고 있었고.

    크리쓰를 알게 된 건 내겐 참 행운이야.

    ......

     또 그녀와 내게 있었던 우스운 에피소드를 나눈 것 같다.

     

    바람 소리에

    더러 들리기도 하고 끊기기도 하면서

    그렇게 우린 말로 울며, 웃으며

    크리쓰를 다시 잠시 살려내 보았다.

    허공에 흩어지는 말, 말, 말들.....

     

    커뮤니티 (공동사회)가 있어야 사람이 잘 살 수 있다는 걸 굳게 믿었던,

    전 세계를 떠 돌아 다니며 언제나 외로운 나그네 였을, 

    그래서 가는 곳 마다 누구 와도 친구가 된 크리쓰

     

    몽골의 전통 가수들을 초대 해 숙식을 제공하며

    동네 작은 교회에서 작은 콘서트를 열어 섬 사람들에게 

    몽고 들판의 바람소리 같은 노래를 들려준 것, 남미의 피리 연주가들을 비롯해서

    크리쓰가 우리 섬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간 것은 미처 헤아릴  수 가 없다.

     

    어둠에 깊어지고 촛불들은 더 밝아지고

    바람이 좀 더 세게 불기 시작한다.

     

    크리쓰와 제프를 미시간주에서 이 곳 시애틀 지역 으로 오게 했다는

    부부의 오랜 친구가 

    자, 그럼 우린 크리쓰를 위해 노랠  불러야겠지?

    누군가 

     for She is a jolly good fellow를 시작하고

    우리 모두 다 함께 불렀다.

    for she is a jolly good fello Nobody can deny

    (그녀는 유쾌하고 좋은 사람이야, 아무도 부정할 수 없어!)

     

    좋은 친구 크리쓰

    잘 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길.....

     

     

    크리쓰네 집 에서 이백미터 쯤 떨어진 곳에 세워진 높은 철탑 수신대에 봄이면 물수리(osprey)들이 찾아와 둥지를 짓고 새끼를 낸다. 독수리들 보다 더 높이 난다고 모든 새들의 친구인 크리쓰가 애지중지 하는 새들이다. 내년 봄에도 또 오겠지.

     

     

    이천이십일년 십일월 이십칠일

    내 친구 크리쓰를 보내며

    교포아줌마

     

    • 노루2021.11.28 21:07 신고

      인상적인 이별 모임입니다.
      그러고 보면 아름답고 멋진 삶을 산, 또는 사는, 분들이
      주위에 참 많아요. 타인에게 잘하는 삶이 가장 아름다운
      삶인 것 같아요. 친절만 해도 쉽게 기쁨을 주고 기쁨을
      느끼게 하잖아요.

      답글
      • 교포아줌마2021.12.02 23:32

        크리스의 나이가 육십 초반 일 때 은퇴해서
        이 섬에 왔어요. 그 전에는 치열하게 자신의 커리어에 모든 걸 걸고 살았다고 해요.

        생의 마지막 장인
        은퇴 후의 삶을 이렇게 커뮤니티 조성에 힘을 쏟아 붓고 갔군요. 

        우리는 오십 초반에 이 섬에 왔기에 친구로 지낸 분들이 대개 열살 정도 연상 들이어서인지
        올해 유난히도 많은 이웃들이 떠나갔어요.






    • 빨강머리2021.11.28 22:25 신고

      세상도 서러웠나 봅니다
      눈물로 바람으로 토닥토닥
      작별 인사를 해주었군요
      왜 안 그렇겠어요
      지구의 모든 생명을 사랑했던 분이니까요.
      자기의 능력 아낌없이 나눠주고 떠나는 분
      배웅하는 이웃분들 모습이 숙연합니다.

      고인이 되신 크리스씨 명복을 빌며
      친구를 잃어버린 교아님께도 
      진심으로 위로를 드립니다.


      답글
      • 교포아줌마2021.12.02 23:36

        우기라 매일 오는 비
        그나마도 이번 11월은 기록적으로 강우량이 많았는데 때 맞춰 비가 그쳐주더군요.

        함께 생활하던 친구들이 떠나가니 저도 많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아서
        다시 추스리고 살아있는 친구들 챙기고요.

        멀리 한국의 옛친구들까지 생각나 안부 전 했어요.

        고맙습니다, 빨강머리님

    • 오공2021.11.29 01:51 신고

      함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크리스씨
      많은 분들의 슬픔을 모두 안고 떠나가는 모습.
      그 모습을 글로 남기시는 교아님의 눈물
      떠나시는 날 하늘도 서러운지 빗물이 눈물되고 
      바람에도 주변을 밝히는 촛불로 이별을 대신하나 봅니다.
      이렇게 한분 두분 떠나가는 섬에 사시는 사람들의 애환에 
      나그네 마음도 서러워 지네요.

      답글
      • 교포아줌마2021.12.02 23:41

        니이가 드는 건 주위에 떠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거란 진부한 말이 실감이 나는 올 해 입니다.

        남은 친구들 끼리 서로 전화해서 위로하구요.
        우리들은 또 다알리아 등 꽃 뿌리 나누기, 마늘 파종, 내년에 새로 심을 과실 나무들. 닭, 염소, 양, 오리....
        남는 동물들을 서로 분양해가라고 여기 저기 알립니다.

        삶이 진행될 때는 끝을 생각하지 않고 
        죽 살아나가다가 친구들이 하나 둘 가면
        아차! 합니다.

    • 나그네2021.11.29 14:13 신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드립니다 _()_

      답글
      • 교포아줌마2021.12.02 23:45

        크리스는 어떤 사후를 마음에 품고 갔는지 불분명해요.

        크리스마스에 태어나고 미들네임이 믿음 (faith)인데 크리스쳔은 오래 전 떠났구요.

        섬에 있는 각 종의 불교 템플을 방문했는데
        선종, 티벹트 불교등의 절에서 주지스님을 조심스레 모시고 받드는 것에 실망해서 불교신자가 못되겠다고 했어요.

        어디선가 만나면 친구인 걸 알아볼 수 있을거 같아요.^^

    • 앤드류 엄마2021.12.04 02:36 신고

      지난 17년 동안 교아님과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친구라 
      크리스를 잃은 교아님의 슬픔이 더 깊고 크시겠습니다.  
      교아님께 위로를 전하며 마음으로 안아드립니다.  
      비가 잦은 곳인데, 비가 멈추었다니 감사하네요. 
      크리스가 이웃들을 위해 특별한 행사 선물에 
      그곳을 좋은 커뮤니티로 만들기위해 위해 노력했기에  
      그녀를 추모하는 촛불행사에 많은 분들이 참석하였군요. 
      우리들도 크리스처럼 외로운 나그네들인데, 크리스처럼 마음을 열고 누구와도 
      친구가 된다면 어디에 살든 덜 외로울듯. 
      크리스가 천국에서 안식하시길. 
      교아님께서 아프지 않으셨으면... 
      크리스와 교아님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답글
      • 교포아줌마2021.12.06 05:14

        누구나 다 나그네...
        나이가 들 수록 점점 더 그렇게 수긍이 갑니다.

        위로 말씀 감사합니다. 경란님^^*

    • 율전 - 율리야2021.12.04 21:34 신고

      교아님의 17년 정말 정든 동행자 크리스님 ...
      오랜 병고를 겪으시다가 운명을 달리 하셨군요~~~
      우선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 저 세상에서는 이제 아프지 말고 
      영면 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한해를 보내는 마음이 저까지도 더욱 쓸쓸하고 허전함을 느끼게 됩니다.
      추모의 현장에 저도 얼굴을 내 밀게 되네요~~~

      답글
      • 교포아줌마2021.12.06 05:23

        참 바지런하게 열심히 살고 간 크리스

        하이킹을 하는 제게 
        자신은 목적 없이 걷는 낭비는 안 한다' 라고
        놀리곤 했어요.

        언제든지 일' 프로젝트' 로 하루를 짜던.
        그러다가 문득 짬이 생기면 문을 두드리던...

        몇 번이나 자신의 양말에 새로 난 염소 새끼를 넣고 와서 입양하라고 권고하던.
        대개는 섬에서 난산으로 식도가 막혀 죽기 직전의 염소, 양 새끼들을 응급처치로 식도에 튜브를 넣어 살린 경우의 생명들이랍니다.

        누가 동물이 출산하거나 아프다고 연락오면 
        밤낮으로 달려가 돕곤 했어요.

        아픈 동물은 내 관심사다' 하면서요.

        동네에서 공짜로 혜택을 받던 농부들이 많이 아쉬울 겁니다.

        바삐 살다 간 크리스라 영면 이란 단어와 쉽게 연결이 안 되는군요. 

        병의 고통이 없는 곳으로 갔겠지요.

        고맙습니다. 율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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