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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 부는 밤에
    농장주변이야기 2022. 1. 2. 16:57

    폭풍 경보령이 났다.

    태평양 바닷물 덕에 얼지 않는 우리 동네에 

    며칠 째 비 대신 눈이 와 쌓이고 얼고

    오늘 밤엔 강풍이 분다.

     

    벽난로 굴뚝 위를 휘감아 돌며 부는 바람이

    제법 세다.

    *  *  *

    바람이 무서운 줄

    이 집에 이사하고 나서 처음 알았다.

     

    남 으로 뻥 터져서 

    겨울엔 서남쪽에서 불어오는 칼날 같은 바람에

    앞 문을 한 번 열었다 닫으려면 온 몸을 써야했다.

     

    집을 도는 바람 소리는 

    별 별 괴성을 밤 새 지르더라.

     

    이사 하고 며칠 안 되어

    옆 집 사는 죤 웨인 같은 거구의 여인이 울타리에 기대어서 말을 걸어왔다.

     

    이 집에 이사 온 사람들은 무슨 연유 에선지

    얼마 안 살고 이래저래 불행해져서 이사 나가곤 했다' 고.

     

    -그래? 처음 이사 온 이웃에게 하는 이야기 치곤 별로 듣기 좋은 이야기는 아니네.

    그런데 나는 집(House)이 사람을 만든다고는 믿지 않아.

    사람이 집(Home)을 만들지.

     

    -그거 용감한 생각 이네. 글쎄 두고 볼 일 이야.

     

    며칠 후

    두 집 건너 사는 이웃이 와서 또 말을 건넸다.

    지난 십년 간 이 집에서 살고 이사 간 사람들 중에

    아이들도 낳고 잘 살다 가 이사 가 지금도 잘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이혼이 세번 있었던, 이혼하는 집 이라는 소문은 사실 인데 

    한 여자가 이 집에서 두 번 이혼 했기에 사실은 두 번 이나 마찬가지라고.

    요즘 세상에 이혼은 아주 흔한 일 아니냐고.

     

    나중에 안 일은

    동네 사람들이

    우리가 언제 이사 나가는지 날짜를 세고 있었다고.

     

    아마, 바람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아무도 나무 한 그루 안 심어

    집만 빈 벌판에 뎅그랗게 바람을 맞았으니.

     

    갖 가지 크고 작은 나무들을

    처음 몇 년 동안

    둘 이서 천 그루도 넘게 심었다.

     

    한편

    갖 가지 모양의 연 들을 구했다.

    바람을 갖고 놀자

    그래서 바람과 친해 지자고.

    어떤 날엔 열 개 이상 되는

    커다란 연 들을 하늘에 띄워 놓기도 했다.

     

    바람이 한 방향에서 불 때는 연을 날릴 수 있는데

    사방에서 걷잡을 수 없이 부는 날엔 

    몸의 중심이 흐뜨러지는지

    기분 마저 불안해졌다.

     

    연도 못 날리게

    바람이 중구난방 으로 시끄러운 날엔

    일찌감치 배 타고  뭍 에 다녀오곤 했다.

     

    섬에는 바람이 많다는 

    그 당연한 걸 섬에 이사오고 나서야 알았네.

     

    *   *   *

    어언 간 열 여덟 해.

    앞 뒤로 크게 자란 나무들은 센 바람들을 잘게 부순다.

    처음의 그 집을 밤새 돌던 바람은

    언젠 가 부터 없어졌다.

     

    오늘 처럼 굴뚝을 세게 때리는 바람 에도

    따뜻한 차 한 사발 두 손에 모아 쥐면

    겨울 바람이 뭐 이 정도는 되지... 한다.

     

    어디선가 잔 나무 가지 많이 부러지고

    새 들도 깊은 곳에 깃들어 잠을 설치겠다.

     

    이런 밤엔 

    부엉이도 지붕 위에 올라 와 앉지 않고

    들 쥐들도 땅 속 깊이 숨어 있겠다.

     

    다 들 무사하길.....

     

     

     

    한대수 바람과 나

    이천이십이년 일월 일일

    당연한 겨울 바람이 조금 세게부는 밤에

    교아

     

    • 유유2022.01.03 00:01 신고

      바람 부는 밤이 싫어지는 순간이었나 봅니다. 
      한 때는 바람 갖고 놀기도 했었는데
      이렇게 싫어 해야 할 경우가 다소는 원망스러울 것 같네요

      답글
      • 교포아줌마2022.01.03 01:55

        유유님 사시는 제주도 에도 바람이 심하지요?

        집을 짓고 대개는 방풍림을 돌리는데
        십년 동안 살던 몇 가정이 바쁘게 살던 사람들이었나 봅니다.

        바람 막이 나무들은 정말 효과가 있어요.

        아메리칸 향나무들, 동백나무 비슷한 로랠들을 많이 심어요. 빽빽하고 잎이 겨울에도 지지 않으니요.

        이젠 바람에 익숙해져서
        센 바람에도 담담한 마음을 적었어요. ^^

    • 빨강머리2022.01.03 01:53 신고

      죤 웨인 같은 거구 이웃. 심보 희안하네요
      터가 주인을 잘 만났네요
      바람 많은 제주도 돌챙이들도 돌로 담을
      쌀때 일부러 구멍나게 쌓는게 비결이래요
      바람길을 터주는거지요
      나무 천구루 심는 수고를 생각하며 라벤더
      꽃무리가 괜히 생긴게 아니구나
      사람들이 이젤들고 스케치북에다 그림그리고 사진도 찍고 하던 모습들
      하늘 밑에 천상의 정원을 꾸민 교아님 내외분 근면성실한 한국인 맞습니다.ㅎㅎ
      18년전 스토리 바람덕택에 
      들었습니다.^~^
      바람 맛사지 충만하게 하시고 봄날
      넓은 뜰에 꽃피는 그날을 상상하다 갑니다.

      올 해 소망은 코로나 굿바이입니다.
      내외분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아가들도
      무럭무럭 자라길 바랍니다.

      답글
      • 교포아줌마2022.01.03 02:08

        우리 섬은 바닷가에 작은 몽돌들 빼면
        돌이 없기로 유명해서 돌담은 생각도 못해요.

        돌아보니 차음엔 바람에 많이 시달렸던 일들...

        어쩌다 이 들에 머물게 되어 나무도 심어 바람도 막고 꽃밭도 만들고요.

        라벤다 밭은 많은 사람들과 맺어주었어요.

        향내 나는 고운 꽃밭 덕분 에요.

        옆 집 살던 데이나는 캘리포니아 중부로 이사 갔어요. 사람들 보기가 싫다고요. 다음 집이 차로 25분 가야하는 산 속으로 들어갔어요.

        몇 년 같이 살았는데 가끔 이메일도 하고요.
        그렇게 스쳐 간 인연 입니다.

        내년 봄이면 코로나가 갑작스레 우리 인류에게 굿바이 하고 홀연히 사라지는 일이 생기길 바랍니다.

        빨강머리님 두 분도 알콩달콩 계속 서로 위하시는 사랑 그늘 아래 하윤 하린이 그리고 하윤이 부모님 모두 건강하신 날들 되시길....

        고맙습니다. 이웃님^^*



    • 노루2022.01.03 15:56 신고

      1000그루 나무를 심으셨다고요. 숲을 심으셨네요.
      Carl Ferris Miller 의 천리포 수목원이 생각나요.

      센 바람 부는 밤. 바람 소리.
      가끔은 또 경험하고픈 밤이기도 하지요. ㅎ

      여기 눈 내리기 전날, 단지 몇 시간의 강풍이
      몇 집 태우고 말 화재를, 대부분이 주택인, 991개
      건물을 태우는 초대형 화재로 만들던 날,
      우리 뒤뜰과 건너편 집들 사이의, 그 이층집들
      높이의 두 배 반은 되게 곧게 큰, 열두셋 소나무들이
      좌우로 휘청이는 걸 보면서, 이 바람도 '이상가후'
      바람이구나, 했었지요.

      답글
      • 교포아줌마2022.01.03 20:36

        8' 부터 1' 까지 골고루 심어 봤어요.
        대부분 아주 어린 1-2 년생 묘목들이 살아남은 것들이 많아요. 성장도 튼튼하구요.

        한국에 그런 수목원이 있군요.^^

        바람소리는 때론 시공을 초월하는 경험을 가져오기도 하지요.

        다양한 바람결도 우릴 춤추게도 움추러들게도 하구요.^^

        콜로라도 의 바싹 마른 더운 바람에 산불 위험을 느껴 급히 빠져나온 적이 있었는데요.

        이번 화재가 난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노루님이 사시는군요.

        서해안을 따라 예년에 이어 올해에도 대단한 면적을 태운 산불, 졸아드는 호수 물.....

        기후변화
        참 무겁고 대책이 쉽지 않은 화두 입니다.





      • 노루2022.01.14 15:48 신고

        천리포 수목원에 관한 한 블로그 포스트:
        https://blog.daum.net/mokwon100/13737376

        미국에선 집집마다 보통 앞뜰 한가운데에 키 큰 '그늘 나무' 활엽수
        한 그루가 서 있어서 여름엔 그늘지게 하고 겨울엔 햇볕을 통과시켜주잖아요.
        한국 초중고 학교 건물 앞(보통 남쪽)에는 별로 크지 않은 사철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데가 여전히 많던데 좀 바뀌면 좋겠더라고요.

    • 율전 - 율리야2022.01.04 13:45 신고

      이곳 한국에서도 예전부터 바닷가의 마을들은 ...
      거의 모두가 방풍림을 심었죠 ~~~~
      그곳에 정착 하시면서 ...
      1,000 여 그루의 방풍림을 심었다는데서 놀라움을 갖게 됩니다.
      혜안을 가지시고 .. 장기적인 대책을 미리미리 준비 하셨군요..
      어디 방풍림 뿐이겠습니까?
      라벤다도 심어 가꾸시는 등 ....
      말씀 하신 그대로 바람에 지배 당하지 않고 ...
      바람을 극복하며 생활 하셨네요~~
      많은 느낌을 가지며 .. 포스팅 잘 보았습니다.
      늘 건강하시게 아름다운 삶 이어가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답글
      • 교포아줌마2022.01.04 15:58

        나무 심는 일에 실행착오가 많았어요.
        나무들의 크기, 드리우는 그늘, 모양, 서 있는 곳의 방향, 위치 등을 충분히 고려해서 매스터 플랜을 짜야 하는 데 주먹구구식으로 여기 저기 빈 자리 메꾸다 보니 해를 너무 가리기도 하고 작은 나무 앞에 큰 나무가 떠억 버티기도 하구요.
        옮기고 파내고 잘라내고 ..... 

        이런 나무들은 옮겨 다니며 고생 많이 했어요.
        더러 죽기도 하구요. 

        캔버스 처럼 빈 땅 을 찾다보니
        이런 바람 부는 땅에 이거다 하고 털썩 주저앉은 거죠.

        덕분에 우리가 의도했던 땅 을 가꾸는 일은 많이 해봤어요.^^

        땅은 그 위를 비추는 해, 그리고 내리는 눈, 비, 스치는 바람 모두 합쳐서 좋은 땅을 만드는 것 배웠어요.

        감사합니다.


    • 앤드류 엄마2022.01.12 01:56 신고

      바람이 워낙 세어서 "Windy City"로 불리는 시카고 만큼이나 
      섬은 바람이 세군요. 몇일째 눈이 내리고 날씨가 추워서 얼었는데,
      밤에 강풍이 불었다니, 체감온도가 남극추위만 했을듯. 
      그리고 눈이 얼어서 도로와 길바닥이 엄청 미끄러웠겠습니다.
      넘어져 다친분 없으셨기를. 
      그곳으로 이사가신후 집주변에 방풍림으로 나무를 천그루나 심어셨다니
      선견지명이 있어셨고, 그 나무들 심기만 하면 되는게 아니라 일이 많으셨겠습니다.
      나무 심을때 정말 묘목 선정도 잘 해야하고, 심는 위치도 잘 정해야 겠더군요.
      저희 사는곳도 강풍에 토레이도가 오곤하는데, 
      집뒤뜰에 있는 30년도 더 된 단풍나무가 저희집이나 이웃집 방향으로 쓰러지면 
      지붕이 파손되기에 바람이 잘 통과하게 큰가지를 많이 쳤는데,
      키가 너무 커서 윗부분을 더 잘라야 할것 같더군요. 
      이곳도 2주전인가 밤부터 강풍이 불어 퇴근해서 집에 갈때 
      차문을 못열겠더군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차문열었다간 
      차문짝이 바람에 날아갈것 같아서 미니밴이었기에 
      슬라이드형인 뒷문으로 들어갔습니다. 
      교아님 집이 비로서 주인을 만났는듯.
      그렇게 강풍이 불때 갑짜기 아프면, 그곳에 의사나 은퇴하신 의사라도 계신지요?
      이상기후 피해없이 이번 겨울 조용히 잘 넘어갔으면. 

      답글
      • 교포아줌마2022.01.12 15:41

        시카고의 magnificent mile
        커다란 빌딩 사이로 부는 그 바람 정신이 없어질 정도로 강하더군요.^^

        바다 보다 더 큰 ^^ 레이크 미시간 호수 가에 있으니요.

        당연히 강풍을 아시겠어요.

        응급 시에는 페리에 연락하면 배가 환자가 올 때 까지 기다렸다 떠나기도 하고 차례를 기다리지 않고 태워 줘요.

        전 세계 뉴스가 한 눈에 들어오니
        전 세계 그 날의 기상 변화도 안방에 앉아
        간접 경험하고요.

        뉴스는 갈 수록 충격위주로 편집해서 청취자들의 입맛을 돋구고요.

        어려운 일 연속 보도의 뉴스 속, 걱정 만 키우며 사는 우리 현대인들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게 하는 요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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