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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피하기와 맞추기-눈 눈 눈지난 글 들 2012. 9. 22. 02:26
조각가 Pat McVay 불안한 해파리 벤치-교아사진
'어떻게 그렇게 똑바로 눈을 맞출 수가 있어요. 사람 당황스럽게요.'
지난 겨울 서울에 머무는 동안 동네 성경공부에 몇번 참석했었을 때
열심히 눈을 맞추고 듣는 나를 견디다 못해 리더되는 사람이 참지 못하고 터뜨린 말이다.
'엄마야!
나 어떻게 해.'
내가 미국에 온 이후로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문화차이 중에 하나는
말하는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이었다.
특히 남자인 경우엔 더 더구나 시선이 맞닿는 걸 피하다보니
내가 말하는 내용에 자신이 없거나,
하고 있는 대화에 집중하지 않고 딴 생각을 하거나
뭔가 잘못을 저질렀거나,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거나,
말하는 상대방을 무시하는 것으로 오해받기 십상이었다.
친절한 남자 교수는 내게
문화차이인줄 알지만 자신감있고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애써 눈을 맞추려 노력하라고 조언했다.
언어 이전에 기본으로 갖추어야 할 소통의 태도라고.
상대가 누구이던 말하는 사람의 눈을 편안한 마음으로 똑바로 쳐다보며
백퍼센트 열중하며 듣고 말하는데 익숙하기 까진
족히 한 십오년 걸린 것 같다.
억지로 노력해서 이젠 자연스레 익숙해진 습관이 삼십년 만의 한국에서
아뿔싸
거꾸로 실례가 될 줄은....
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자신의 말에 열중하는 아줌마에
상대방들은 얼마나 심기가 불편했을까.
특히 남자들의 경우엔 이 열중하는 눈을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민망했을까
그러고보니 성경공부 리더가 말하는 동안
다른 아줌마들은 모두 눈을 책에서 떼지 않고 있었다.
그게 묵묵부답, 가르치는 사람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으로 예의있게 경청하는 태도였던 것이다.
이웃의 소농장에 가니
유독 암소 한마리는 소우리가 아닌 나무에 묶어 놓고 웃으며 눈을 맞추고 이야기도 나누고 머리도 쓰다듬는데
앞으로도 이십여년 주욱 같이 살아나갈 애완용 소라고 했다.
우리속의 육용 소들과는 절대 눈도 맞추지 않는다고 했다.
절대로.
눈을 맞추어서 관계를 맺는 것을,
정드는 것을 피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모임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눈 좀 맞추자' 한다.
마음이 가는 곳에 자연 눈이 가게 되어 있다.
또는 애써 눈을 피해 무관심, 냉정함, 절교등을 피하는 눈으로 말하기도 한다.
'무시' 란 말이 그러고 보니 눈으로 맞추어 안 본다는 말이다.
뜬 눈은 살아있는 것들의 표징이다.
한 눈에 사람을 척 알아본다는 말은 그 사람의 눈을 통해 보았다는 것이다.
동물들이 싸움에 임할 때 빈틈없이 적과 팽팽한 눈 싸움을 한다.
기가 딸리는 놈은 눈을 깔고 꼬리를 내리고 줄행랑을 친다.
요가 선생 왈
사람의 몸 중에서 끝까지 가장 쉬기 어려운 것이 눈이라 한다.
그만큼 두뇌의 활동을 즉각즉각 반영하기에.
잠든 사람이 꿈을 꾸고 있을 때도 눈은 어김없이 바삐 움직인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껌벅거리거나 가느스름하게 하거나 피한다고 한다.
빌 클린턴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스캔들을 부정하는 대목에서
'나는 그 여자와 아무런 관계를 갖지 않았다.( I did not have any relationship with that WOMAN.)'
눈을 가느스름하게 조이고 힘주어 말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언어로 다 못하는 말은 눈으로 말할 수 있다.
가장 절절한 표현은 언어 이전에 우선 눈에 나타난다.
말은 더해지고 덜할 수도 있지만
희.로.애.락.애.증.을 그대로 나타내는
우리 몸의 가장 솔직한 부분이 눈이다.
눈을 맞추지 않고 이야기하는 관계는
서로 이미 상대방의 마음을 잘 아는 관계일 것이다.
아니면 관계는 포기한
하나마나한 형식적인 대화일 수가 있다.
눈을 맞추지 않음으로 서로간에 동석이몽으로 다른 공간을 가질 수 있다.
서로 정직하게 눈을 대놓고 내놓고 하는 대화는 치열하다.
아차하는 순간에 자신을 들어낼 수가 있는 것이다.
눈을 피하고 하는 대화는
이런 면에서 권위나, 웃사람을 보호하게 되겠다.
말하기에 앞서 눈 부터 깔라는 상급생, 직장 상사, 교사, 군대 상사, 부모들의 말이
십분 이해된다.
눈을 깔곤 자신의 입장을 소신있게 나타낼 수가 없다.
눈으로 나타나는 상대방의 의중을 금새 파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을 깔아 표현할 의지를 접고 있기 때문이다.
무관심이 되거나 억하심정이 되기 쉽다.
말하는 사람은
일방적으로 혼자 말하고
선택해서 나오는 말 이외의 자신을 못 보게 가려 자신을 보호하고
질문하는 방해없이 자신의 뜻을 펼 수 있다.
그러나
듣는 사람의 의중을 파악할 수 없이
허수아비 빈들에서 독창하는 모습이 되기 쉽다.
서열이 정해진 사회의
상명하달 만이 있는 곳에선
소통을 위한 실질적인 대.화.는 필요없다.
소통을 하려 애쓰는 사람은
내 눈 좀 쳐다봐 하며
마음을 파악하려 애쓴다.
누군가의 진실을 얻으려고 할 때도
내 눈 좀 보고 말해 하고.
잘 이해가 안될때는
더 이해하려고 상대방의 눈을 기를 쓰고 들여다보고
소통을 위한 오가는 마음에는 반드시 눈이 만나야 한다.
소통이 가장 절실하고 열렬한 순간인
싸움
흥정
사랑의 순간에
두 눈을 활활 불태우며 만나지 않는가.
눈을 맞추고 안맞추는 것에는
확실히 대화의 차이가 있다.
Pat McVay -연어떼 벤치 school of samons - 교아사진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삼십여년 동안 상대가 누구이건 열중하는 마음으로
두눈을 적나라하게
똑바로 마주보고 말 액면 그대로 직설적으로 대화해 온
미국 멍청이의 아주 잘못된 편견일 수도 있다.
눈치아닌 코치까지 동원해서
말 이외의 싸인들로 의중을 파악, 은근히 교류하고
눈을 맞추고 안맞추고 하는 것 까지 말없는 언어로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잊어버린 탓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절묘하고 까다로운 사람간의 관계와
우아래의 공식들을
깡그리 까먹은
이방인이 된 탓일 수도 있다.
때론 격한 감정의 직접적 충돌을 피하느라
서로 간에 내놓고 얼굴 붉힐 일을 피하느라
일부러 눈을 맞추지 않는 배려지심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사회로 부터 아웃사이더가 되어 버린 탓일 수도 있다.
눈을 어디다 두어야하나. 맞추어야하나
한국에선 부모한테 꾸중 듣는 아이는
눈을 밑으로 깔아 '나 죽었어요.' 한다.
미국에선 같은 경우에
야단치는 부모의 눈을 떼지않고 계속 응시하며
'정말 잘못했어요. 부모님 말씀이 맞아요.' 한다.
'어디다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보니
뭘 잘했다고.'
이천십년 구월 오일
교포아줌마
횡수설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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