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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집을 짓는 사람들
    지난 글 들 2012. 11. 7. 12:02

    남편이 정규 건강 검진을 받던 날

    병원에서

    차례를 기다리느라 잡지를 뒤적이고 있는데

     

    리셉셔니스트가

    '폴 알렌(Paul Allen) 하고 부르니

    옆에서 앉아있던 사람이 대답하며 일어나더라고.

     

    낯익은 이름에 얼굴을 보니

    빌 게이츠랑 같은 하이스쿨을 졸업하고 마이크로 소프트를 같이 창설했던 바로 그 폴이더란다.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옷차림에

    사람들틈에 끼어 혼자서 조용히 차례를 기다리더라고.

     

    비슷한 이야기는 빌 게이츠도 심심챦게 흘리고 다닌다.

     

    컴퓨터 계통의 회사에서 일하는 후배가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주최하는 컨퍼런스에 갔을 때

    시작하기 전에

    로비에 앉아서 친구랑 마이크로소프트 회사에 대한 이야길 하는데

    앞에서 혼자 프린트물을 읽고 있던 사람이 잠깐 자기들을 싱긋이 웃으며 쳐다보더라고.

     

    빌 게이츠 닮았는데 설마 했더니

    첫번째 스피커로 나온 빌이 바로 조금 전의 그 빌 게이츠였다고.

     

     

    씨애틀에서 교외에 떨어진 스노퀄미 폭포 옆 작은 레스토랑에서

    맨구석에서 눈에 띌세라 조용히 둘이 마주 앉아 저녁을 먹는

    빌과 부인 멀린다를 본 우리 친한 친구도 있다.

     

     

    *  *  *

     

    컴퓨터 산업 혁명에 관련해 큰 돈을 모은

    미국 서부의 신흥 큰부자 ( new money)들은

    단순히 자신들의 개인적인 삶을 즐기고

    보통(ordinary)에 섞이려고 노력하고

    '누림' 보다 '나눔'에도 관심이 많아 보인다.

     

    시대가 그렇게 변한 것이다. 

     

     

     

    스캇 피쳐럴드(Scott Fitzerald)의 소설 속에 나오는

     

    안하무인의, 자기 과시의, 지난날의 가난에 원수 갚으려는,

    시퍼렇게 날 돋힌 성난 돈이 아니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

     

     

     로버트 레드포드가 연기한 개츠비  google image

     

     

    젊은 시절 돈과 패밀리 빽그라운드가 없어서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지 못한 개츠비가

    큰돈을 벌어 옛애인인 데이지가 사는 근처에 저택을 짓고 그녀를 다시 얻으려다가

    모두 물거품이 되는 이야기로

     

    일차대전이 끝난 후 갑자기 전대에 없이 미국에 몰려 온 부에 휘말려 

    물질만능주의와 부도덕이 팽배하던 1920년대의

    미국사회를 그려낸 이정표 같은 작품이다.

     

    1925년에 출판되었지만 그가 죽은 후(1940년)

    미국사회가 더 한번의 경제적인 호황을 누렸던 이차대전후 1945년 부터 1950년 대에

    폭발적인 인기로 읽혀졌고

    그 후 영화로도 만들어진

     

    미국학에서 미국사회 변천사를 이해하는데 꼭 거론되는 작품이다.

     

     

     

                                   영화 그레이트 개츠비 중 Google Image

     

    거대한 주택

    호화판 승용차

    비싼 의상

    술과 음식이 넘쳐나는 파티

    클럽 소속

    그들만의 비싼 스포츠

    특권의식

    불륜 등등

     

     

    소설의 주인공 개츠비가

    물질로 다시 태어나는  모습.

     

     

    '궁핍'을 벗어나

    부를 이룬 사람들이 어쩌지 못하고 거쳐야하는 몸짓이었으리라.

     

     

    둘러보면

    경제적 변천의 흐름 속에서

    한 사회가

    개인이

    거치고 지나가는

    너와 나

    그리고 사회가 살아가는 모습(세태)들은 

     

    어느 사회나

     

    다 같다.

     

    그렇게 보면

    세태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에 따라

    다수의 군중이 주어진 여건 속에서

    그렇게 의식없이 휩쓸려 흘러가는 자연스런 모습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살아가는 모습은

    계속 변.한.다.

     

    *  *  *

     

    우리 씨애틀 동네에서 '사람좋은 빌' 로 통하는 은퇴한 변호사

    빌의 아버지 씨니어 빌 게이츠가 서너해 전인가  PBS의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우리 인간들은 이제까지 역사상

    많은 경우 부가 남아 돌 때는 그걸로 전쟁을 해서 파괴를 일삼았다.

     

    다행히

    지금은 세계가 하나로 사는 세상으로

    자원이 부족한 곳으로 나누는 것이

    부를 맡은 사람들에게  맡겨진 의무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하는 이유는

    단순히  

     

    '해야 할 올바른 일(right thing to do)'이기 때문이다.

     

     

     

    최근 NPR(National Public Radio)에서

    빌 모이여스(Bill Moyer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전세계의 문제인

    소수에만 막대하게 축적된 부가 쏠리는 현상이 사회에 가져오는 해악에 대한 질문에

     

    자신의 손주들이 자손 몇대가 거부로 살 수 있는 거대한 유산을 물려받는 것은

    결코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그런 처지에 처한다는 것이 한 인간으로서 좋은 일이 아니고

    더 나아가서는 사회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라고 했다. 

     

     

     

     

     

    MOYERS: What do you think is the social harm that comes from a large concentration of wealth?

     

    GATES: I just don't think that my son's children or any other wealthy person's children are benefitted by being handed a quantity of money that's so great that they and their offspring will be really rich for that generation and for generations to come. That's not a good thing for a human being, to be in that situation.

    And then more to the point, it's not a good thing for society.

     

    -NPR 인터뷰 중에서-

     

    십구세기 말 부터

    이십세기 말에 거쳐간 수많은

    미국의 거부들의 삶을 통해서

    얻은 지혜이리라.

     

     

    *   *   *

     

    이제까진 아주 거부들의 이야기이고.

     

    보통으로 중산층으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요즘

    서부를 중심으로

    '작은 집' 짓기 운동 (small house movement) 이 펼쳐지고

    작은집 소사이어티 (Small house society)에의 관심이 높은 이웃들을 만난다.

     

     

     

     

     

     

     

     

     

    작지만 기능과

    에너지 절약을 고려한 집들이

    씨애틀 지역의 미디어룰 통해

    집주인들과 함께 자주 소개된다.

     

     















     

     

     

    잘 사는 건 뭘까

     

     

    내 한 몫의 삶을 사는데

     

    내 한 몫 이상으로 누리고 사는 것이

     

    부담이 되는 마음이

     

    점점 퍼져 나가는 것 같다.

     

    그러고보니 나도 줄여야 할 이런저런 것들에 마음이 불편해온다.

     

    씨애틀에 살아서 그런가?

     

    글로벌 이웃 소식이 아침 저녁 밥상에 올려지는

    이십일세기라서 그런가?

     

     

     

     

    이천십일년 일월 십이일

    교포아줌마 횡설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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