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ul S. Crane은 의사로 한국에 와서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관찰한 한국인들의 특성을 Korean Patterns라는 책으로 펴냈다. 한국의 지성들로 부터 한국인들을 폄하한다는 비난도 받은 책으로 미국내의 한국학 강의를 하는 몇개 대학에서 참고 도서 목록에 종종 올라있는 책이다. 책중에 <한국인들은 서로 모르는 둘 이상이 모이면 우선 서열을 결정한 후 관계를 맺는다 나이, 학력, 집안 배경, 출신지, 지인관계,직장, 직위등에 관한 자신의 신상 명세서 카드를 재빨리 서로에게 알게 모르게 의도적으로 내 보인 후에 모인 사람들 간에 서열이 정해지고 나면 그에 맞게 말투, 호칭등이 결정되고 그래야 모인 사람들 간에 질서가 잡히고 편안해진다고 한다. 이 서열이 애매모호한 사람들끼린 영 어색하고 불편해 어쩔 줄 모른다 그리고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은 마치 보이지 않는 스크린을 친 것 처럼 그들이 그자리에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고 보았다. 공적인 자리거나 사적인 자리거나 초면의 두사람 이상이 모이면 특수한 경우(동기동창생)를 제외하곤 위 아래로 사이가 맺어진다는 것이다. 책이 초간된 것이 1967년이니 이미 사십년이 훌쩍 넘은 시각인데도 현재의 서울 한복판에서도 심심챦게 속속 경험 할 수 있는 한국인의 전형적인 모습인 것 같다. 사십 후반에 귀국해 십년넘게 대학 강사생활을 한 내 친구가 젊은 후배 교수들에게 소개될 때 마다 강사라면 고개를 돌려 눈 안에도 안 넣는다며 그 비루한 강사직에 대한 애환을 만날 때 마다 풀어대는 것 말고도. * * * 강남 코엑스의 한 결혼식장 앞에 화환들이 주욱 늘어서 있는 서울의 진풍경 중에 유독 대기업의 유명 총수 회장이 보낸 화환이 가운데에 오똑 혼자 자리를 차지하고 좌우로 나란히 다른 이름있는 이들의 화환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것이 근정전 앞의 용상과 좌우 문무 백관들의 배치 바로 그것이다.
축하하는 화환들에도 권위와 우열이 있어서 철저한 자리매김을 한 그 엄격한 서열. 배를 움켜 잡고 한참을 웃고 많이 허탈했다. 귀한 자녀들의 결혼식장에 사회의 어른들 줄세워 빛을 내 드리고 자신들도 빛을 내는 화환 배치에 온신경을 곤두세우는 양가부모와 젊은 결혼 당사자들도 그렇지만 그런 풍경이 아무런 이의나 느낌이 없이 뭐가 이상하냐고 당연하게 자신들도 그런 화환들을 받지 못해 안달하는 사회 분위기 대기업의 사장단이 모여서 단체 사진 찍을 때 그 몇십명의 사람들이 단번에 자신들이 설 자리를 파악하고 한치 어김없이 몇분내에 정렬된다는 이야기도 농담이 아니라는 사회에 난 참 낯설다. * * * 젊은이들이 모인 모임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어서 고맙고 부푼 마음에 서둘러 갔더니 주관한 분이 시작 시간 보다 한 십오분 늦게 가야한다고. 윗사람이 빨리가면 학생들이 어려워한단다. 연사인 내가 나이 빼면 뭐가 윗사람인가 윗사람이란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젊은 마음들과 교류할 수 있을까? 위 아래 관계없이 강의장도 익힐 겸 마음 준비도 할겸 먼저 아니면 정시에 도착해있어야 당연할텐데 말이다. 청중은 연사에겐 조심스러운 대상이다. 갖가지 마음들이 예리하게 강연의 내용을 꿰뚫어보고 있으므로. 청중을 우습게 보는 강사는 자신이 무뇌한 경우이다. 예화가 내 딸의 이야기인 것에 좀 꺼려지지만 우선 생각나기에. 의대 첫학기에 의사가 되는 것에 고무적인(inspiring) 말을 해 줄 미국내에서 활동하는 선배들의 강연 프로그램이 있다는데 초청된 연사들이 둘 다 성형외과의들로 고도의 수입과 가슴, 힢 등 위험부담이 작고 돈많이 버는 것에 촛점을 두고 장황하게 이야기하더라고. 이제나 저제나 뭔가 보람된 이야길 들으려나 기다리다 무지 실망한 우리 딸 시간 아깝다는 생각에 같이 참석했던 동급생들간에 여론 조사를 한 후 벌써 삼년간 계속 연사로 초청되어 오는 이 두 강연자의 강연 내용의 적합성을 다시 판단해보고 내년 신입생들을 위한 초청에 대해 그 재고해달라는 자신의 의견을 편지로 써서 동감하는 몇십명의 동급생들의 싸인을 받아서 학장에게 보냈다며 씩씩대며 전화하더니 그 후 이주일 쯤 후에 학장이 자신을 불러서 다음해엔 다른 선배 의사들을 초청하기로 담당부서에 건의했다는 이야길 하더라며 신나서 또 전화하더니 그 학기 말에 딸은 학교로 부터 뜻하지 않게 그일로 특별 장학금(fellowship)을 받았다고 좋아했다. 내 돈 내고 받는 교육의 자질 개선에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경우이다. * * * 무슨 강연이나 학회가 있으면 바로 자신들이 정한 기준에 맞춘 서열에 따라 나타나고 자리를 뜨는 시간이 다르다. 중요한 사람일수록 자리에서 일찍 일어나서 마지막에 발표하는 사람들은 터엉 빈 공간에서 허공을 향해 공허한 마음을 달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로 자리에 도착하고 뜨는 시간이 어쩌면 그리도 한치 오차도 없이 서열대로 인 것에 그 정확함에 놀란다. 요직이나 고위층일 수록 끝까지 남아 한사람의 강연까지도 귀중하게 여겨 들어주는 자세로 겸허함은 생각도 해본 적이 없이 빨리 떠날수록 지위의 높음에 프라이드를 느끼는 오만방자함만이 서슬퍼런 후진의 모습이 도처에서 벌어진다. 자리를 빛낼 요량으로 부르는 특별 손님들은 일에 관계되어 실질적인 도움말을 줄 사람보다는 사회적 지명도가 높은 어르신들을 모셔서 개중엔 아니 대부분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장시간 자기 자랑에 횡수설설해서 장내를 삽시간에 집단 수면장으로 만들고 청중들은 그런 연사들을 참아내는데 아주 익숙해있다. 내실 콘텐츠에 충실하자는 목표는 이 서열의 횡포가 횡행하는 한 한국에선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헛구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일보다는 자리에 연연하고 실력보다는 겉에 걸친 학벌이 더 중요하게 서열 결정에 영향이 되는 사회에선 허워가, 가짜가 계속 판칠 것이기 때문이다. * * *
명절에 모여앉은 친척들간에도 식탁에 앉는 우.열.의 자리가 엄격하게 정해져 있는 사회 육십년대 폴 크레인이 보고 간 그 한국 사회가 아직도 구태의연하게 고층건물과 반듯하게 난 시가지에서도 그대로 계속되고 있는 걸 난 보고있을 뿐이고(안상태 기자 같은 심정으로 보고 드렸슴). 이천 구년 삼월 초 교포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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