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고 해가 나는 날 라벤다를 텁니다. 차랑 향주머니 속 채울 라벤다가 좀 필요해서요.
어두운 그늘에 말린 다발들을 내려 광주리 가득 담는데 흐뭇합니다. 해가 쟁쟁한 집앞에 퍼지르고 앉습니다. 실장갑을 낀 두 손으로 비비면 꽃이 술술 잘 떨어집니다. 아참 마스크를 꼭 씁니다. 미세한 가루가 코에 들어가는 걸 막느라구요
우선 채로 쳐서 먼지를 떨고요. 마른 꽃잎이랑 꽃받침은 키질로 날립니다. 남편이 채 치는 걸 도와줍니다. 채 속에 넣고 치면 되니까 낟알 헤뜨릴 일도 없어서 서투른 사람이 해도 되고 반복적으로 오래 쳐야 해서 힘이 듭니다. 키질은 꼭 내가 합니다. 바람이 조금 있는 데서 바람의 세기에 맞춰 살살 까불어 대면 누런색 꽃받침들이 검불이 되어 날아갑니다. 키질은 아무한테도 나누어주지 않는 몽땅 내 즐거움입니다. 키가 없어서 넙적한 대나무 채반을 키 삼아 까부리는데 꽤 쓸만합니다. 언젠가 누군가의 손때가 곱게 묻은 늙수그레한 키 하나 구하리라 마음만 먹은지 벌써 몇년 되는 것이 그런대로 채반으로 견딜만해서 그런가봅니다. 키가 꼭 필요하기 보다는 풀풀 낟알을 까불리고 돌을 골라내던 우리 어머니들의 그 능숙한 손놀림을 그 열심을 동경하는 거지요. 손에 일이 익었을 때의 그 여유로움도요. 아무래도 키는 장만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치고 까불리고 골라내고 하다보니 보라빛 꽃봉우리들만 채반 가득 남았습니다. 이렇게 고른 라벤다는 가까운 사람들의 찻잔에서 또 헝겁에 쌓여 향을 전하겠지요. 회색으로 무채색의 겨울 짬짬이 이런 날도 있습니다.
이천십일년 일월 십구일 교포아줌마(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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