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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년 만의 서울 -법 없이도 사는 사람들지난 글 들 2008. 8. 8. 23:24
우리 동네 캔디가 곤욕을 치뤘다.
승선장에 차를 대고 기다리는 중에 경찰견이 냄새를 맡으려고 닥아오자
캔디네 개가 근무중인 경찰견을 향해 마구 짖으니 경찰이 개들보고 조용하라고 했단다.
이에 캔디가 개가 폭약탐지하는 쓸데없는 짓은 왜 하구헌날 매일하냐고 한마디 한것이
화근이 되어 몇마디의 언쟁을 주고 받는 중 옆에서 보던 경찰이 덜컥 수갑을 채워 경찰서로 직행했다.
그날로 곧 훈방조처 되었지만 부랴부랴 달려간 남편이랑 씨애틀에서 전화받고 달려 간 캔디네 두 변호사 딸들
모두 화들화들 놀랜 하루였다.
* * *
서울에서 느낀 것은 법이 별거 아니다라는 것이다.
꽉 막힌 강변도로에서 앰뷸런스가 싸이렌을 켜고 가는데 아무도 비키지 않는다.
기사님에게 물으니 가짜란다. 그럼 진짜 응급환자가 탔을 때는 어떻게 되느냐고 하니
진짜일 땐 운전석 반대편에 탄 사람이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며 위급함을 알린다고.
그래야 겨우 길을 비켜준다는 것이다.
그러면 딱지 안 받나요?
경찰인들 무슨 수가 있나요. 아무도 안 비키는데.
법을 집행하는 전초 부대인 경찰들이 참 딱하게도 무력하다.
청계천에서 빨간불에 건너가려는 아주머니를 젊은 경찰이 만류하자
아주머니가 적반하장으로 경찰에게 핀잔을 준다.
아 오가는 차도 없고 발걸음이 느려 미리 좀 가겠다는데 웬 성화냐고.
젊은 사람들 다리 아픈 늙은이 이해 못하는데 그러면 못쓴다고 아들 친구한테 처럼 호통이다.
경복궁 옆 화랑가에 비좁은 인도에 고급차들이 척척 올라앉아 있어 행인들이 차도로 내려가
걸어야하는 형편이기에 순찰하는 경찰에게 물었더니 불법주차이긴한데 자기네 관할이 아니고 구청 관할이란다.
순찰은 거리 질서를 지키기 위해 하는 거 아니냐고 물으니 속수무책이란 표정만 짓는다.
강남의 노른자위 지역에서 아파트 세를 얻으려면
회계상 영수증을 발행해줘야 하는
법인체 회사와는 계약하려는 집주인들이 거의 전무하다는
공공연한 사실에 놀란다.
주인이 살고 있는 것으로 위장 전입하고 탈세하는 방법인데
너무 많이 행해지다 보니 불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상할 정도다.
부동산 중개업자 얘기가
주인들이 사회에서 다 잘 나가는 분들인데 참 우리나라 해도 너무 하지요? 한다.
같은 행위가 탈세 위장전입 따위의 흉칙한 죄목으로 포장되는 때는
정부관리나 국회의원등의 공인이 될 때다.
몇달간 살면서 나로선 기가 딱 막히기도 하고 코미디 같은 일들을 직접 경험하고 나니
그간 도마에 오른 정부관리나 국회의원들이 왜 자기들은 몰랐다고도 하고
왜 자기만 당해 억울하다고 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 * *
법이 효력을 갖추려면 일관성과 평등성이 있어야한다.
오늘은 단속하고 내일은 봐주는 노점상들에게 적용되는 규칙은
아직도 어려운 사람들의 생계를 배려하는
정으로 얽힌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어르신이 지은 죄는 다른 사람보다 가볍게 다스리고 봐주는 사회 분위기는
이리 저리 얽히고 연결된 '우리가 남이가'의 한가족, 한울타리의 정서를 반영한다.
그런면에서 사회의 구석 구석에는 아직도 情에 호소하고, 딱한 사정이 더러 통하는 사회다.
이렇게 정사회에서 이익사회로 넘어가는 어정쩡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아직도 얌체행위들은 재주를 피우며 서식하고
법망을 잘도 피하기도 한다.
그래도 사회는 어쩔 수 없는 대세로 점점 너와 나의 권리가 똑같이 소중한 수평적인 관계들로 변해가고 있어
서울은 법과 情이 한창 치열한 승부를 벌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삼십년 전 총이 법이던 으시시 하던 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투명해졌다.
사족: 삼십년만의 서울이라 문화적 쇼크가 있다.
한참 살다보면 익숙해지고 무덤덤해질 것이기에 지금의 신선한 충격들을
망설임 끝에 기록하기로 결심했다. 변하는 내 모습을 추적하기 위해서.
05/25/2008
교포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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