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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십년만의 서울
    지난 글 들 2008. 8. 8. 23:17

    서울엔 기원이 많기도하다.

     

    엊그제 부처님 오신 날 봉원사에 달린 그 많은 등들 

    '건강, 사업번창, 합격, 취직, 극락왕생등을 비는 기원이 가족들 이름과 함께 줄줄이 달렸다.

     

    삼성동 봉원사 앞 건널목 바로 옆에 자리를 깔고 수없이 절을 하는 여신도들을 자주 본다.

    절 밖의 인도에서 절이 있는 쪽을 향해 홍수같은 차들이랑 소음, 인파에 아랑곳하지 않고 

    뭔가를 염원하며 절하는 모습에 절로 나같은 행인까지도 숙연해진다.

     

    예술의 전당 뒤의 나즈막한 우면산에 커단 돌탑이 쌓여있고 숨가쁘게 정상에 올라온 사람들이

    탑돌이를 하며 기원하기도 하고 돌탑에 절을 하며 기원한다.

     

    작은 돌을 큰 돌탑에 얹거나 끼워넣어 집단적인 기원의 통로를 높이고 넓힌다.

     

    빼곡한 고층 건물 속속 교회들이 하늘을 찌르고

    무수한 아파트 철문 앞엔 무슨 교회 무슨 성당이라고 붙인 팻말이 한집 건너 하나 씩 있는 편이다.

     

    종교를 떠나서도

    만나는 사람들이나 미디아에서도 마음 다스리는 법에 대해서 많이들 말한다.

     

     

     

     

    *   *   *

     

    서울에 와서 몇달 살면서 내가 바뀐 것은 

    그간 잊고 살았던 운명론에 다시 익숙해진 것이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우선 약속한 것에 대해 예측할 수 없는 일과 기대에 어긋나는 일이 많이 일어나는 것이다.

     

     

    호텔 생활을 청산하고 아파트로 이사해 텅빈 집을 가구부터 행주까지 다시 마련해야하는 과정에서

    알만한 백화점에서 산 가구는 정품이 아닌 것이 배달되었고

    신용을 자랑하는 기업에서 배달된 매트리스는 새것이 아니었다.

     

    수직적인 인간 관계에서

    더 중요한 사람들 때문에 무조건 자신을 포기해야하는 때도 자주 있다.

     

    수십가지 어긋난 일 중에 몇가지 예를 든 것 뿐이다.

     

    하루를 계획하고 노력하고 정당한 시간과 댓가를 치루고 난 후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심심챦게 거듭되다 보니

    나도 기다리는 과정동안 제발 계획하고 노력한대로 진행되고 결과가 나왔으면 하는 

     

    조바심에 바램까지 곁들이게 된다.

     

     

    자주 일이 어긋날 때 실망과 마음 상함을 다스리는 법은

    액땜 이나 전생의 빚이나 일진이나 운수에 돌리면 

    그나마 화가 꾸욱 눌러지고 넘어갈 수 있는 체념의 양생술을

    불과 몇달 사이 빠르게 회복한 것이다.

     

    영국인들이 '미국인들에겐 죽음까지도 선택사항이다 (Even death is an option)'라는 비꼬임을 들을 정도로

    무한히 도전하는 사회분위기에서 삼십년 살다 온 사람치곤 빠른 적응력에 나도 놀란다.

     

     

     

    언젠가 읽은 누군가의 인도 기행문에 

    오페라를 가자고 한 인도 친구가 약속을 안지키는 통에 

    하루 저녁을 망친 후에 그 다음날 마주친 그 바람 맞힌 인도 친구에게 화를 내니 그 친구가

     

    '어제는 우리가 어차피 못만나기로 되어있기에 그리 된 걸 지난 걸 가지고 왜 바보처럼 화를 내느냐' 며

    천연덕스럽게 대응했다던 일화가 떠올려진다.

     

    인도는 한국보다 훨씬 더 약속이 안지켜지고 기대에 어긋나는 일이 많은 나라이리라.

     

    미국에서 십여년간 지내다 사십대 중반에 한국에 돌아와서 탄탄하게 정착한 친구가 

    친절한 조언을 한다.

     

    '한국에선 부조리와 싸우기보다, 그것들에 견뎌내는 것이 승자다.'

     

    좀 더 살면서 더 생각해 볼 일이다. 

     

    과연 그럴까?

    그래야할까?

     

     

    2008/5/14

     

    교포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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