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유난히도 안개가 짙었다.
안개 속을 거니는데 셀 수 없이 많은 거미줄들이 눈에 띄었다.
작은 이슬방울들을 함초롬히 단 거미줄들이 나뭇가지 마다 하얗게 걸려있다.
해 아래선 좀처럼 눈에 안 띄는 것들인데...
하나하나 찬찬히 들여다보니 그 짜임새나 크기가 다 다르다.
들인 공과 진지한 열심이 세세한 거미줄에 걸린 것을 보니 햐 감탄이 터져 나온다.
먹이를 잡고 새끼 거미들을 키우는 어미 거미의 일터가, 보금자리가 거미줄이란 사실이 처음으로 마음에 들어 온 날이다..
거미가 살아가는 생명으로 닥아온 아침이기도 하다.
거미줄이 망가질세라 조심조심 거미줄들을 보고 다녔다.
어릴 때 방에서 거미를 보면 엄마는
'아침 거미는 손님이 오신다는 기별이다' 하며 살려서 내보냈고 해지고 난 후의 거미는 '도둑 거미다'며 황급히 잡아서 밖으로 버리게 한 기억이 난다.
집안의 거미는 이런저런 구실로 무조건 내 보냈는데 거미를 의인화해서 우리네 삶에 엮었던 것이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다.
아침 거미건 저녁 거미건 방 안이건 밖이건 나는 무조건 거미를 싫어했다.
아니 크기가 좀 클라치면 소름을 끼치며 무서워했다.
미국에 온 후 갓난 첫아이를 업고 아파트를 나섰는데 옆 집 창에 엄지 손가락 첫마디 만한 거미가 떠억 붙어 있어서 기겁을 하고 신발을 벗어 딱 쳐 죽였다.
곧 이어 창문이 열리더니 '어머 그거 내 애완용 거미인데!.'하고 옆집 여자가 기겁을 한다. 죽은 거미를 로란지 로렌인지 그런 이름으로 부른 것 같다.
머슥해서 아엠쏘리를 연발하니 좀 진정되었는지 오래 살아서 곧 죽을 거니 차라리 잘 되었다고 했다.
세상에 뭐 갖고 놀게 없어서 거미랑 노나 음침하게 시리,,,,
그리곤 그 집앞 지날 때 마다 내 아들을 더 바싹 품에 넣곤 했다. * * *
아이들이 어릴 적 필독 도서 중에 E.B. White가 쓴 샬롯의 거미줄(Charlotte's Web)이 있다.
윌버(Wilber)라는 돼지와 샬롯이라는 거미의 이야기다.
살이 쪄서 잡아먹히기 직전의 윌버를 자신의 망에 글자를 쓸 수 있는 재주를 가진 샬롯이 농장의 동물들과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서 윌버를 주인이 안 잡아 먹게하는 이야기로 어른 들도 같이 읽는 동화다.
거미줄에 글자를 써넣어 멋진 돼지라고 주인에게 알린 덕에 윌버랑 샬롯은 장에 나가서 사람들 앞에 소개되고 나이가 많은 샬롯이 장에서 죽자 윌버는 샬롯이 낳은 알들을 집으로 가지고 와서 샬롯의 아가 거미들이 깨도록 돕고 그 자식들과 손자들을 자신의 친구로 곁에 두고 평생을 안잡혀 먹고 살게 된다.
책중에서-
샬롯: 겸손하다는 건 두가지 뜻이 있어. 하나는 자신이 대단하다고 자랑스레 여기지 않는 것'이고 '밑으로 낮아진다는 뜻이야, 읠버는 이 두가를 온통 다 갖고 있어.
_ _ _
윌버: 너희들도 글을 쓰니?
샬롯의 딸들: 아뇨, 그렇지만 우리가 어른이 되면 글을 쓸 수 있을거예요.
윌버: 너희가 쓰는 걸 배우게 되면 너희들 거미망(web)에 이렇게 써 봐. : 이 텅 빈 문간엔, 한 때 샬롯이 살던 집이 있었다. 그녀는 명석하고, 아름답고 끝까지 의리를 지킨 친구였다.그녀에 대한 추억들은 영원토록 소중히 간직될 것이다.
샬롯의 딸들: 그걸 배우려면 우리의 한 평생이 다 걸릴걸요.
윌버: 한 평생. 그게 우리가 가진 것이지.
_ _ _
그 책 영향인지 우리 아이들은 나 어릴 때 처럼 거미를 보며 기겁을 하진 않은 것 같다.
* * *
뜻하지 않게
안개 덕분에 거미랑 온전히 화해했다.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네!
이천구년 시월 팔일 아침 안개가 열시 반 경에나 걷히다.
교포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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