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들은 구수한 조크들 중에 유독 맘에 남아 간간히 웃음짓게 하는 게 있다.
경상도 사나이들은 사랑한다는 말을 니~ 내 아이 나아도! 한다는데 단도직입적이고 번식의 정점에 서 있는 남녀관계의 핵심을 찌르는 프로포즈가 확 맘에 든다.
어느 인류학 강의실에서 주어들은 얘기로 청춘남녀가 자기 짝을 알아보는데는 십육분의 일초가 걸린다고 한다. 우생학적으로 그리고 짝을 맺어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능력을 알아보는데 본능적으로 그렇게 섬광적으로 닥아온다고 한다.
돌아보니 내가 그 봄 남편을 처음 본 십육분의 일초 동안 우리의 운명이 결정돠었던 것 같다.
자기 아이들을 낳아달라는 말은 안했지만 우릿적 프로포즈는 결혼, 출산, 육아, 해로에 까지 이르는 긴 과정을 당연히 전제하는 것이었다.
이번 여름 아들이 목하 살림 중인 걸프렌드랑 집에 다니러 왔을 때 한 끼를 냉면을 대접했다.
돼지고기, 소고기 편육도 하고 시원한 배 한조각에 밭에서 갓 딴 오이랑 무에 달게 식초 절임을 해서 고기육수에 겨자도 새로 개어서 냈더니 한 사발 뚝딱 국물도 훌훌 다 마셨다.
'아무개(아들이름)야, 너도 이거 만들 수 있어? 모르면 너네 엄마한테 배워서 나 만들어 줄래? 정말 맛있는데!'
아들은 노 프로블럼 이라며 나 한테 육수 만드는 법만 써달라고 했다.
아들이 어릴 적 나는 실수를 많이 했다. 식사 중 물도 떠다 받치고 고교졸업 때까지 빨래도 개어서 장에 넣어주고.
대학가서 처음 이년동안 익숙치 않은 자취생활로 아들이 고생이었다.
옷은 한번 입고 차곡차곡 쌓아서 다 없어지면 밑에서 부터 빼어서 다시 한 번 입고(그사이에 때가 다 삭는다나?) 벗은 건 다시 쌓아 그 다음번엔 밑에서 부터 꺼내어 뒤집어 입고....
이렇게 반복하다보니 한학기가 세탁기 한 번 안 돌리고도 지나갔다한다. 방문해보니 세 녀석이 같이 쓰는 기숙사 방이 온통 쓰레기같은 걸로 쌓여있었는데 그게 바로 세 룸메이트의 옷더미들이었던 것이다.
운좋게 비슷한 성향의 급우끼리 만났기에 망정이지. 쓰레기더미에서도 즐겁게 학창시절을 끝낼 수 있었던 게.
열여덟에 집 떠난 후 아들은 헐벗고 때론 굶주린 젊은 날을 보냈고 빨래, 다리미질을 안가르치고 앉혀놓고 밥 멕인 한 생활인으로서의 기본기를 등한시하고 안 가르친 미련한 어미노릇을 자책했다.
지난 봄에 아들네 살림집에 가보니 부엌은 아들이 전적으로 맡고 있는데 음식도 잘하고 반질반질 깨끗하기가 도를 넘게 살림솜씨가 늘었다.
걸프렌드가 맡고 있는 집안 청소도 깔끔하다. 좀 먼지 쌓이고 지저분하면 또 어쩌랴. 한참 바쁜 젊음인데.
그래도 오픈 하우스한다고 우리를 의식해 정돈된 집안을 보여준게 고마왔다.
음식점에 저녁을 먹고 난 후엔 다시 집으로 데려가서 차까지 대접해주었다.
* * *
일 때문에 이박삼일 만에 서둘러 떠나는 아들과 걸프렌드를 뱃전까지 데려다 주는 길에 혼잣말처럼 결혼을 하면 좋을텐데... 했더니
걸프렌드 왈 아직 결혼 할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단다.
아들은 엄마 상관이 아니라는 듯 눈짓을 준다.
맞아, 이 애들의 생인 것을....
* * * 오랜만에 젊을 때 학생촌에서 아이들 낳아기르며 친하게 지내던 대니네 엄마랑 통화했다.
그 집이나 우리집이나...
대니가 걸프렌드 데리고 집에 왔기에 썩 맘에 내켜하지 않는 대니 엄마가 걸프렌드한테 '얘 , 넌 밥이라도 할 줄 아는거냐?!' 따졌단다.
그래 며느릿감 한테 뭐라고 해쑤?!
Can you cook? 그랬지 뭐.(아주 심술, 퉁명스런 톤으로)
아이구 대니엄마 정신차리세요.
밥하는 게 뭐 대수라고. 그러다가 아들 차이겠어요. 같이 해먹던지 아니면 나가서 같이 제각각 맛있는 것 사먹던지 하면 될텐데요.
대니엄마는 나보다 앞으로 더 많이 속터지게 생겼다.
아들만 둘 있어서 남녀 평등시대에 직장에서 남자보다 더 열심히 뛰어야 살아남는 딸 입장 생각 못하니 재래의 남녀 역활의 관념에서 벗어나긴 더 힘들겠고, 요즘처럼 결혼이 사회적 구속력을 잃고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여자들도 경제적 독립을 우선으로 하는 시대에 우리 처럼 딸하나 있어서 부모가 세련될 기회를 가져야하는데...
울아들 언제나 그 밝고 맘에 드는 걸프렌드한테 '니 내 아아 나아도!' 하며 프로포즈 할까.
아니다.
'내가 열심히 맛있게 밥해줄께. 결혼해줄래?' 그러겠지.
지들 젊음, 지들 인생. 지들이 알아서 하겠지.
우선은 사이좋게 잘 지내기만 엄마는 기도한다. 아프거나 어려운 순간에 서로 의지하고 위로가 되는 진정한 짝으로의 관계가 돈독해지길....
그러다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 * *
전기일을 하러 온 젊은이 포도 한바구니 따주니 걸프렌드 가져다주면 너무 좋아하겠다며 입이 벌어진다.
오년째 살아온 걸프렌드라고. 결혼하면 좋을텐데.. 그러니
주위에 이혼이 널려 결혼 못 하겠단다. 자신의 부모가 자기가 열여덟에 이혼했고 위의 두형이 이혼했고 친구들 중의 삼분지 이가 이혼했고 자기 걸프렌드도 아이 낳자 마자 이혼한 이혼녀였다고.....
이천구년 십일월사일 교포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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