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교포아줌마의 봄을 넣은 김치-봄을 잊은 엄마
    얼치기 음식 2018. 3. 30. 16:28


    봄이라고 다 같은 봄이 아니다.


    불길 처럼 일어나는 벚꽃이 이 봄엔 눈에 안들어 온다.




    엄마가 두어달 전 부터

    깜빡깜빡 기억력이 감퇴하신다더니


    노인성 치매끼를 보이신다.


    지금이 무슨 철이지요?


    가을인가???


    몇월 달이지요?


    팔월? 아니 구월?

    에이 그런 거 묻지 마라




    아흔 둘


    이 봄에 

    한국나이로 아흔셋이 되신다고 

    잘도 기억하시는데.....



    아직도 수영장에서 서너랩을 거뜬히 헤엄치시고

    버스 노칠 세라 뜀박질도 하시는데...



    아흔 두해

    두 발로 걸으며

    꼿꼿하게 사셨는데....



    황황히 찾아가

    혼자 사시는 엄마랑 둘이

    두 주일 남짓 함께 자며 

    확인되던 일



    엄마 머리가 단단히 고장나고 있네.




    '걱정 마라

    너네 엄마가 누구냐

    혼자서도 잘 지내고 있으니 염려마라.



    전화하면 언제나 그 말로 시작해서

    그 말로 맺으셨는데....'


    지난 해 봄

    오월

    생신 때도,


    땡스기빙 즈음해서

    가족 모임때도 그런 기미가 없으셨는데....



    대학원에서 

    소위

    노인을 위한 소셜 워크를 공부했다는 내가


    가끔씩 먼 곳을 헤매는 엄마 앞에서

    함께 헤맨다.



    내 엄마가 어떻게....



    모녀는 자궁으로 연결되어 있다던가.



    나의 일부도 푹썩 무너졌다.



    시얼즈 백화점 캐털로그 두꺼운 책을 곁에 두고

    딸들 맘보 바지랑 원피스들을 

    맵씨있게 만들어 내던 

    엄마의 바느질 감들은

    헝클어져 있었고



    냉장고엔

    자식들 오면 준다고 담가 둔

    각종 김치

    매실, 오이지, 무, 마늘 .... 장아찌들


    이젠 

    짠 저장음식

    가져다 먹지 않는 자식들에

    쌓이고 쌓여있었다.



    버리고

    버리고 또 버리고...



    일생을 산 엄마노릇을 

    다 버리시라는 것 처럼.




    못된 자식.





    -눈기러기들이 날아간 자리에 이젠 수선화가 피고.-




    집에 오니

    빗속에서 절로 나온 갓들이 

    곱기도 하다.



    정신 차리고 또 살아나가야지.



    하루 종일 

    김치를 담그었다.


    느릿느릿.








    배추

    무우

    흰 양배추

    자주빛 양배추

    싹이 나기 시작하는 마늘

    생강

    소금







    일찌기도 핀 

    노랑 갓꽃 두 가지


    병에 넣으니

    봄 김치가 되었네.


    꽃 넣은 병엔 

    자주색 양배추를 섞지 않았다.


    맑은 물 속의

    노랑 꽃빛을 보느라고.







    절인 배추를 눌러담았더니

    꽃이 눌렸다.




    그래도 노란 봄이 들었네.


    고와라!







    이젠 히로랑 쑤우네 전용이 된


    밑이 넓은 병에도

    절인 배추, 무, 양배추에

    당근 주홍색도 넣고

    새로 딴 푸르고 보라색 갓들을 절여서

    꼭꼭 눌러 담았다.



    작년을 못 넘길 것 같던 히로가

    요즘엔 다시 레슬링 코치도 하기 시작했다고.



    내 김치를 즐겨 먹어주는

    지난 겨울 내내 아프며 지낸

    바바라 한테도

    전화해야지.



    봄김치 담갔어.

    가지러 와.



    살며

    더러 고장나고

    고쳐지기도 하고

    더러 너무 오래되어 망가지기도 하지.



    그래도 살아있음에.



    오늘을 산다.



    '엄마,

    기억력 좋아지는 약 드셨어요?


    이젠 주무실 시간인데요.'



    멀리서

    가깝게 

    엄마랑 이야길 하네


    그래, 너무 걱정 마라

    너도 어서 자라.



    엄마는 여전히 

    엄마노릇을 하신다.




    봄이 온다고

    해 마다 같은 

    봄은 아니다.



    이천십팔년 삼월 삼십일

    어! 어느 새 삼월이 다 갔네.


    봄에 가을이라고 하는

    엄마 한테 다녀 온


    교포아줌마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