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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마다 침실 벽난로 굴뚝 함석 뚜껑을 두들겨
잠을 깨우는 딱다구리가
아직도 짝을 못 찾은 건지
아님 다른 딱다구리들이
줄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두드리는 건지.
새총으로 녀석들을 쫓는 걸 실력상 포기한
남편이 셀폰으로 잡은 딱다구리 한마리.
모습을 보고나니
두들기는 소리가 덜 방해된다.
이젠 아는 애가 그러는 것 같아서.
그 참.
* * *
시애틀의 가을 부터 봄까지
촉촉하게 차분히 내리는 비는 익숙하지만
요즘 내리는 비는 빗방울 굵기와 그 내리는 기세가 다르다.
수퍼 엘니뇨라 겨울이 따스하고 엄청 비가 많을거라고는 했지만.
백이십년만의 기록적인 집중 호우가 와서 여기저기 홍수가 났다.
그래도 그칠 줄 모르고 오고 또 오는 비.
* * *
처음에 이 빈 들에 짐을 풀었을 때
집을 감싸고 도는 바람이 낯설고 힘들었다.
섬이라 바람많은 건 당연한데 그걸 몰랐다.
할 수 없지.
바람을 가지고 놀자.
연을 사서 하늘 높이 날렸다.
그것도 바람이 한방향에서 불 때 이야기다.
방향도 없이 중구난방으로 불어오는 바람앞에선
음악을 틀어 바람소리를 누르곤 했다.
그럭저럭 바람엔 익숙해져서
이젠 웬만큼 부는 바람엔 끄떡없게 되었다.
* * *
섬에 사는 이웃중에는
겨울마다 비를 피해 남쪽 해나는 곳으로 철새처럼 옮겨갔다가
추위와 비가 그치면 제비 뒤따라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붙박이로 주욱 사시사철을 살아내는 이웃은
겨울을 견디고 나면
더 찬란한 봄을 맞을 수 있다고들 한다.
올해는
비 피해 안 간 것이 후회될 지경이다.
지하수 수위가 올라가고
비교적 높은 곳에 사는 랄크도
집 앞 움폭 낮은 곳에 물이 고여 연못이 되고
거기서 숲에 사는 개구리들이 모여와 산란을 하느라
밤이면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좋다고 한다.
못보던 오리들이 쌍쌍이 모여와 헤엄도 친다고.
* * *
오리가 헤엄칠 정도는 아니지만
처음으로
라벤다, 포도밭 낮은 곳 군데군데 물이 고여
하늘이 비쳐보인다.
사막성 식물인 라벤다가 이 물들을 잘 견디고
올해도 꽃을 피울까.
자연 현상 앞에서는 속수 무책이다.
날씨로 일어나는 일들을 받아들이고
감당할 뿐이다.
내일은 해가 났으면.
그리고 물이 땅속으로 잦아들기를 바랄 뿐.
몇십년 만에 한번씩 있는 일이라니....
이 들에 십여년 머물다 보니
이런 해도 있네.
스쳐 지나가는 들
여름의 기쁨을 떠올려본다.
이천십육년 삼월 십칠일
비오는 밤에
교포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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