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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노비의 반란
    내 이야기 2005. 5. 10. 16:15
    어느 노비의 반란 
      2002/05/10 00:00
    교포아줌마     조회 6682  추천 70
     
     
     
    어머님 전상서 

    어머니 날입니다. 
    올해도 어머님께 선물을 드렸습니다. 
    예년과 다른 것은 처음으로 마음없이 드린 것입니다. 
    월부금 갚듯이요. 

    제가 요즘 제 삶에 찾아온 계절 변화로 바람이 많이 입니다. 

    저 같은 여자들을 위해 어떤 여의사가 쓴 책을 읽었습니다. 
    신체 변화와 함께 각질화되어 가는 마음에 물기를 유지하기 위한 책입니다. 

    제가 그 책에서 건진 것은 하나입니다. 

    제 나이 쯤에서 자신을 다시 발견하라고 합니다. 
    주위와의 관계에서 새로 조명해 본 자신 말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들을 엉킨 실 풀듯 다 풀라고요. 

    그래서 관계들로 부터 자유로와져야 건강하고 편안하게 늙을 수 있다구요. 
    남에게 군림하지도, 예속되지도 말고 누구와도 평평한 관계로 
    쓸데 없는 힘의 낭비를 없애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늘없는 해변가의 갈대들 처럼 자유로운 몸짓으로 훨훨 늙어가라는 겁니다. 

    * * * * 

    거의 30년 전에 시집갔지요, 저는. 
    어머님이, 아버님이 싫어하시는, 아들의 혼을 뺀 못마땅한 여우로요. 
    신혼여행 다녀와 큰 절드린 자리에서 
    '내 마음에 드는 며느리는 아니다. 앞으로 너를 재교육시키겠다'는 아버님의 큰돌덩이 마냥 숙인 제 고개 위로 던지신 무거운 말씀. 그 옆에 앉아 꽉 다문 입술과 찬 눈길로 엄한교사의 자세를 취하시던 어머니셨지요. 

    * * * 

    언어의 채찍을 든 조련사와 같은 지붕아래서의 3년은 저를 '새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가슴은 점점 졸아들고 미풍에도 까불던 젊음의 가지들은 다 부러졌습니다. 속이 없는 깡통 로보트로 하루하루가 빈 채로 덜컹거리며 지나갔습니다. 

    친정과는 발길이 끊겼으며 
    남편이 좋아했던 환한 웃음 
    식성,걸음걸이, 심지어 '생각'까지 고치라는 
    저를 만들어 온 이십여년이 깡그리 부정되는 
    3년이었습니다. 
    '니가 좋아 한 결혼이니 언제라도 싫으면 나가라'는 열어놓은 '문'을 등 뒤에 두고 
    허깨비 되어 버틴 시절이었습니다. 


    * * * 

    미국에 와서 갑작스런 휑한 공간이 부담스러워 
    틈만 나면 어머님 아버님 한 두달 씩 다녀가시게 했지요. 

    그러면서 저는 서서히 주위의 나무, 풀, 들이 보이고 그사이로 부는 바람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잃어버린 '나'를 회복하는 뜨거운 물줄기가 혼자 있을 때면 시도 때도 없이 퐁퐁 솟았습니다. 
    '나'가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 * * 

    어머니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제가 이국 땅에서 첫아이를 '아들'로 낳은 것입니다. 
    어머니와 저 사이를 계속 이어준 끈이 된것입니다. 
    하마트면 끊어진 인연으로 태어나지도 않았을지도 모르는 저의 소중한 아들을 품에 안고 
    처음으로 남편과 결혼한 것을 복으로 생각했습니다. 
    더도 덜도 아니게 꼭 맘에 드는 내 아들의 모습에서요. 

    아들의 모습에는 남편과 저의 모습이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아버님의 모습도 들어 있습니다. 
    제 친정 부모님의 모습도, 싫으시겠지만 들어있습니다. 

    아들을 사랑하는 제모습에 
    어머니도 내 남편을 그렇게 사랑하시겠지 
    어머니 아들 사랑 이해했지요. 
    얼마나 보고 싶으실까 

    제가 만일 아들이 없고 
    딸만 있었다면 
    시댁 식구앞에 절절 매는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 
    어머님, 아버님이하 
    모든 시댁 식구들 멀리 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머니가 미워지다가도 
    나중에 내 며느리가 나 싫다고 아들 못보게 하면 슬플 생각하고 
    어머니 오시고 싶으실 때마다 오시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보시라구요. 


    * * * * 

    옥색 모시 적삼에 파랗게 젊던 어머니도 
    어린 새가슴의 분홍 한복 속의 철없던 새댁도 삼십년 가까운 세월에 늙었습니다. 


    하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제가 어머니에게 영원한 굴러든 돌같은 존재인 것입니다. 
    영원한 남입니다. 

    어머니와 저는 불화한 사이가 아닙니다. 
    관계가 잘 유지되어 왔습니다. 
    부리는 시어머니와 섬기는 며느리로요. 
    굴종의 관계입니다. 

    근래에 어머니, 두 시누이 모시고 디즈니 랜드 갔을 땝니다. 
    하루종일 운전하고 갔으니 그 다음날 피곤하겠다고 쉬라고 하셨지요. 
    매직 킹덤 모셔다 드리고 호텔에서 혼자 쉬며 지내고 
    그 다음 날 유니버설 스튜디오 갈 때 
    내일 하루 종일 운전할 텐데 또 호텔에서 혼자 쉬어라 하셨지요 
    저도 처음 가는 곳이라 같이 가겠다고 하니 
    '서울에선 이렇게 딸들하고 같이 시간 보내기가 쉽지 않다고 
    우리끼리 좋은 시간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하셨죠. 

    모르셨겠지만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제가 어머니 자식 되는 노력을 뚝 끊어버린 
    순간입니다. 긴 세월동안 그 보다 더한 순간들도 잘 참아냈었는데요. 

    * * * * 

    돌아오는 길 
    손 위 시누이의 '우리 엄마 같은 멋쟁이 신식 노인은 없어. 며느리들 잘 이해하고 딸하고 똑같이 대하고.'라는 말이 얼마나 공허하게 들리던지요. 

    포기한 마음에 무모한 용기가 생겨 처음으로 저도 저의 어머니의 얘기를 꺼냈지요. 

    제가 제 어머니 안부를 전하니 어머니 못들을 걸 들은 것 처럼 불쾌해서 얼른 다른 화제로 돌리셨지요. 

    어머니 
    저의 친정 어머니에 대해 아시나요? 
    저의 아버지에 대해 물으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에 대해 아시나요? 
    저는 누군가요? 

    아직도 그렇게 맘에 안차는 며느리에 손해본 결혼이신가요? 



    이 봄 
    어머니 날 
    처음으로 
    친정 어머니와 어머니의 선물을 똑같은 걸로 마련했습니다. 
    친정 어머니 선물 꾸러미는 다정한 기억과 함께 감사의 마음으로 쌌습니다. 
    어머니께는 파산한 몰락자의 마음입니다. 
    죄송합니다. 
    마음을 드릴 게 없습니다. 
    아무리 뒤져봐도 그 긴 세월동안 자연스레 쌓은 정이 한톨도 없군요. 
    일찌기 대들고 싸워 어머님의 자식으로서 사람 취급해 달라고 당당했어야 했는데요. 
    어린 나이에 들은 주눅이 세월이 지나 펴지지 못한채 버티다가 
    기대를 빼버리니 그 자리가 푹 꺼졌군요. 
    정은 편안한 사이에서 자연스레 이는 기운인걸요. 

    누가 뭐래도 제 잘못입니다. 


    저는 한동안 어머니를 마음에서 빼어 버리겠습니다. 
    겉으로 해드리던 것들은 그대로 계속될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겉치례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제겐 아들과 똑같이 사랑하는 딸이 하나 있습니다. 
    어머니 손녀입니다. 
    어머니께서 당신의 딸들이 세상 행복을 다 지니길 원하시는 것 처럼 
    저도 제 딸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이젠 성년이 된 딸에게 
    당당하게 편한 마음으로 인생의 가을을 즐기는 엄마를 보여주렵니다. 

    * * * 
    제자신이 회복되어 
    멀지 않은 
    어느 날 
    어머니와 
    편안하게 
    마음과 마음이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갱년기의 반항 며느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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