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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벤다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내 이야기 2008. 5. 27. 23:17

     
     
     
    라벤다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2008/05/27 01:54 추천 3      1
     
     
     




    남편의 어릴 적 친구와 몇 십년 만에 연락이 닿았다.
    한 두어시간이면 차로 닿는 거리에 살고있다니 남편은 얼마나 설레이며 반가와하는지.

    와 보면 알겠지만 우리집은 작은 움막이야. 마음의 준비를 좀 하고 오는게 좋을 것 같애서…

    화가인 친구가 하룻밤을 자고 올 우리 부부의 잠자리를 걱정하는 말이다. 

    걱정말라고 우리부부는 아직도 캠핑가면 산에서 땅바닥에 텐트치고 자는 신세라고 남편이 친구를 안심시킨다.

    홍안의 얼굴로 헤어져 주름들이 엉성하게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나이에 만나는 
    두 친구의 설레임을 감지하면서 같이 동료 화가라는 동갑내기 금발의 친구 부인과도 맘이 맞는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하는 바램을 하면서 방문길에 올랐다.

    만년설의 산봉우리가 보이는 넓은 들녘 끝에 자리잡은 그의 집엔 짙고 옅은 보라색 라아벤다가 집주위를 온통 물감을 칠해 놓은 것 같이 흥건하게 피어있다.

    담 없는 집에서 개가 반기며 뛰어나오고 방구라는 이름의 늙은 고양이도 수줍게 인사를 한다.
    두부부가 환하게 웃으며 반긴다.

    두 손을 맞잡고 서로 붇안고 등을 두드리고 나서 아내들을 소개하면서 
    금방 분위기가 편해지고 네 사람이 한참 만난 사이들 처럼 곧 친숙해지는 뭔가가 있었다.


    친구네 집은 정말 필요한 공간만 있게 자그마한 고옥이었다.
    좀 놀라울 정도로 집안엔 최소한의 필수품들만 초라할 정도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의자며 식탁등의 가구들은 기능위주로 놓여있지 장식용은 전혀 아니다.
    꼭 필요한 것들만 최소한으로 놓여있다.

    라아벤다 향기가 진동하는 뜰에서 우리 넷은 각기 다른 크기와 모양의 컵에 차를 마셨다. 부부가 가지고 있는 컵이 총동원한 것이다.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가 무르익고 시간이 가면서 깨달은 것은 물질을 전혀 누리지 않고 사는 그들의 생활이다. 

    못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 두 부부가 선택한 삶의 모습이다. 

    웬만큼 편안한 가구들에 길들은 우리는 곧 등이 뻐근해왔다.

    친구 부부는 우리가 좀 불편할거라 하면서도 자신들은 아주 편안한 얼굴이다.

    밤이 늦도록 지난 몇십년을 잇는 이야길 나누고나니 자신들의 침실에서 자라고 한다.

    ‘이방이 참 좋은 방이야. 달빛이랑 별빛이랑 비치는 방이거든. ‘

    기본적인 침구로 얼핏 불편해보이는 침실에 남쪽으로 난 창을 가르치며 친구가 자랑스레 말한다.

    이 방을 우리 부부에게 양보하고 어디서 주무세요?

    부부가 염려말라며 바로 옆에 붙은 작은 방의 문을 열어 보이는데 일본식 후통(futon)이 간단히 깔려 있다.

    ‘걱정마. 이 방도 아주 멋있는 방이야. 뒤에 있어서 별빛이랑 달빛이 은은하게 걸러 들어오거든.’

    양보 받은 침대의 머릿 맡엔 천진한 동화를 연상시키는 그의 소품들이 몇 점 걸려있다.

    친구의 부인은 우리를 위해 연보라색의 시트위에 푸짐한 라아벤다 한 묶음을 걸쳐 놓았다.

    그 밤 카텐 을 달지 않은 맨창으로 보이는 별들하며 방안 가득한 라아벤다 향기에 
    취해서 늦도록 잠들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 
    친구 부부는 부지런히 각종의 라아벤다를 잘라서 한아름 안긴다.

    ‘이건 프로방스, 이건 싼타 마리아, 이 진한 보라는 그로쏘, 하얀 건 알바…..
    종류마다 냄새가 독특하게 다르거든.’

    * * *

    지금 우리 거실은 라아벤다 향기가 진동하는 호사스러움의 극치다.

    갑자기 군더더기로 초라해보이는 커텐을 떼고 
    밤엔 창가에 별빛을 그리고 달빛을 드리워야겠다고 생각해본다.

    나는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을 물질로 가리우고 놓치고 살고있는가? 



    교포아줌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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