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주부들 가요 배워주는 델 한번 가봤다. 악보가 있는 노래책을 가지고 가라오께 화면이 앞에 나오고 무슨 노래던 척척 구성지게 뽑는 노래선생님이 마이크를 쥐고 노래를 배워준다. 지난 주 배운 노래를 복습도 하고 새 노래를 열심히들 배운다. 즉각즉각 고운 가락으로 뽑아들 낸다. 칠십년대 이후의 노래는 전혀 모르는 나 그래도 옛날 실력이 어디가나 대강 감잡으면 거기서 거기로 혼자 틀려도 튀지않겠다싶어 조용히 흥얼거린다. 그러다가 앗! 이게 뭔가 눈물이 콱 난다. '중년'이란 노래가사에. 훠얼훨 훨훨 하는데 주착없이 주체할 수 없이 나는 눈물. 여기 아짐들은 이미 이노래에 많이 울었는지 아님 목청에만 싱경쓰는지 맹숭맹숭 감정없이 부르는데 지금은 한줄도 생각도 나지않는 가사 하나하나가 가슴을 후볐다. 이제껏 누구라는 임무로 열심히 굴레 쓰고 살아왔는데 앞으론 자유롭게 살고싶다는 그런 뜻만 남아있다. 둘레를 돌아보니 내 또래나 그보다 나이 많은 아줌마들이 익숙하게 부른다. 누구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든 모두 장해보이고 역전의 용사들 같아서 눈물겨웠다. '꽃밭에서'라는 자막이 나오기에 아빠하고 나아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인가보다하고 익숙한 가사를 떠올리고 자신있게 목청를 가다듬는데 웬걸 꽃빛이 왜 그리 좋아 뭐 그런 가사의 어른 가요가 나온다. 아 나 참 멀리 떠나 살아왔네! 미국으로 떠나가던 때 양희은의 아침이슬과 김민기의 친구 송창식의 나의 기타이야기가 들은 테이프들을 데리고 왔다. 차로 너른 벌판을 몇시간이고 달릴 때마다 듣고 또들어서 너덜너덜 거덜난 목청들에 좀 미안할 정도로 참 줄기차게도 노래를 시키고 따라 불렀다. 나중에 양희은이 목청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했다는 소식에 김민기의 저음이 중년이 되어 더이상 노래로 들리지않게 망치소리같이 둔탁해졌을 때 내가 너무 노래를 시켜서 무리가 갔구나하고 미안할 정도였다.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그땐 양희은같은 청아한 목청으로 활활 뽑아 내 미국 개척사의 주제가 처럼 자유롭고 힘차게 부르던 노래였다. 나중에 들으니 이 노래가 한국에선 팔십년대 모든 운동들에 널리 두루두루 불렸다는데 내겐 타지에의 낯설음에 고국의 정서를 이어서 안정의 닻을 내려주고 허허롭게 펼쳐져 주체가 안되던 자유를 실감하여 토로하고 신천지에서 매일을 씩씩하게 살게하던 '빛' 같은 노래로 나 혼자 만의 '아침 이슬'이었다. * * * 테이프도 닳고 서울을 떠나 간 연륜이 쌓임에 따라 우리의 여행길을 따라다니는 가수들도 당연하게 미국 가수들로 바뀌어갔다. 로키 마운튼 하이의 죤 덴버 아 엠 아이 쌔드의 니일 다이아몬드 아메리칸 파이의 돈 매클레인 죠니 캐시의 덜덜 떨리는 음성들 제임스 테일러등의 감미롭고 살살녹는 칸추리언 웨스턴 뽕짝들이 귀에 익어갔다. 광야에서 저녁노을이 붉게 물드는 때면 어스름 땅거미가 짙게 깔리기 까지 해리 벨라폰테의 '오 대니 보이(1950년 카네기 홀 공연 테이프)를 셰난도를 들으며 달리곤 했었다. * * * 노래 배우는 시간이 지나고 한사람씩 나와서 한곡씩 뽑는 시간이 되었다. 어쩜 그렇게도 다 가수들인가. 아이 나 못해요 하고 빼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구성지게 뽑는 가락들이 당당한 기상들과 어울려 모두들 다 한가락씩 한다는 말이 바로 이거구나! 멋지게 차려입고 다 들 가수 두 뺨친다. 시간관계상인지 일절씩만 서둘러 부르게하고 남의 노래를 듣기 보담은 자신의 노래부르기에 더 관심이 있어보인다. 눈치로 대충 십팔번들이 정해져 있는 것도 같고. 잘못봤나? 부르는 노래의 대부분이 잃어진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과 실연의 애절함을 절절하게 호소하는 가사들이다. 간혹 당신이 최고야라는 내용의 으챠챠하는 가락도 있었고 사랑이 뭔가요 친구여 내친구여 등등 처음들어보는 노래들 아 개중에 내가 배워서 불러보고싶은 노래도 있었는데 김창완이란 사람이 부른 '회상'이란다. 아직도 나와 감성의 키가 맞는 노래가 불려진다는게 무척 반가왔다. 같은 실연의 아픔을 요즘 한창 뜨는 총맞은 것 처럼의 가사같이 내 심장에 구멍냈으니 고쳐내라고 떼쓰는게 아니고 달빛에, 찬바람에 알듯말둣 아픔을 전하는 애잔함이 맘에 든다. 앉은 순서대로라 뒤에 숨은 듯 앉아있던 내게도 드뎌 차례가 왔다. 총무라는 아짐마가 앞으로 나가란다. 얼마만인가 무대에서 남들 앞에서 노래부르는게. 갑자기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내 눈앞의 청중들은 왼통 아줌마들이시네. '아리조나 카우보이'한다고 불쑥 튀어나왔다. 노래선생님이 가수 이름을 물은 후에야 겨우 곡을 찾아냈다. 어릴때 제니쓰 나지오에서 흘러나오던 명국환의 노래로 뭐든지 한번 들으면 금방 외워 따라부르던 서너살 때 레파토리로 부르고 나면 아버지가 너무 대견해서 수염 까슬한 뺨을 어린 볼에 따갑게 부벼주던 노래다. '카우보이 아리조나 카우보이 광야를 달려가는 아리조나 카우보이 말 채찍을 말아쥐고 역마차는 달려간다 저 멀리 인디언의 북소리 들려오오면 고개넘어 주우막집에 아가씨가 그으리이워 달려라 여억마야 아리조나 카우보이' 어린 시절로 돌아가 신나게 발도 구르며 어깨춤도 추며 부르고나니 아줌마들 환호소리 드높고 교포아줌마 인기 짱이더라.^^ 이천구년 이월 교포아줌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