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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깐 동안의 여름 잎새-낮이 제일 긴 날에
    지난 글 들 2010. 6. 22. 14:33

    일년 중 낮이 제일 길다는 날(Summer Solstice)

    오늘도 내리시는 비

     

    우리 동네에 지난 이백칠십몇일 동안

    섭씨 이십사도가 넘은 날이 하루도 없었답니다.

     

    과실 꽃피는 때도 열매 맺는 때도 다 비 속에서 지나갑니다.

     

     

     

     

                    rainyday 014.JPG

     

     

     

     

    오늘이 지나면

    동지가 될 때 까지는 매일 낮이 줄어들겠지요.

     

    해는 길어지고 여름은 코 앞에 닥아오는데도 을씨년스런 날들에도

    계절에 그럭저럭 말없이 순응하는 것은 초목인가 봅니다.

     

    내가 불 가까이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동안 열심히 철에 맞는 모습을 하며 살아나가네요.

     

     

    rainyday 023.JPG

     

     

    엊그제는 마실 나갔다가 네틀(Nettle,아래 왼쪽 사진)에 손을 찔렸습니다.

     

    살갗에 닿으면 잎에 있는 가느다란 털에서 나오는 산(furic acid)에 찌르는 통증과 함께

    몇일을 퉁퉁 부어 오릅니다.

     

    네틀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깻잎인가 하고 잘못 건드렸다가 많이 쏘이는 풀이지요.

    일본 스시에 곁들여 나오는 시이소 잎새 같기도 하구요.

     

    크리스틴이 급히 dock, dock(아래 오른쪽 그림) 하면서 해독하는 풀을 찾아냈습니다.

     

     

    정말 독을 중화하는 풀은 몇 발자국 안 떨어진 곳에 있더군요.

     

    나는 아파서 얼어붙고 크리스틴은 열심히 잎을 따서 으깨어 찔린 곳에 붙여주었는데

    몇분 후 통증이 가라앉고 다음날엔 말짱해졌습니다.

     

    장소가 그늘이었다면 고비(fiddle heads)를 찾아 똑같이 했었을 겁니다.

    같은 효과가 있거든요.

     

     

     

    rainyday 031.JPG

     

                                                          rainyday 025.JPG

     

     

     

     

    꿩들이 깃든 해당화 숲에도 비가 내립니다.

     

    저 찌르는 덤불을 지붕삼아 벽삼아 알을 깨우는 일이 한창일 겁니다.

     

    rainyday 038.JPG

     

     

     

    우리 동네 본토박이 이 풀은 보랏빛으로 피는데

    이년 전에 한 포기 사다심은 후 역시 토양이 잘 맞는지 병충해도 없이 잘 번식합니다.

     

    이름이 머라머라 했는데 구태여 외우지 않았습니다.

     

    꽃의 모습과 색이 독특해서 성큼 뚜렷하게 다가오는 꽃이거든요.

     

     

    rainyday 045.JPG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는게  어려운 말이 잘 안나와 그럽니다..

     

     

     

    스물 한살 젊은 아들을 잃은 엄마 이름은 가슴아파서 

    그냥 그녀라고 그리고 모든 가족의 이름은 거론하지 않으렵니다.

     

    구태여 누구라고 밝히는 것이 가씹 이외에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슬픈일도 좋은일 처럼 사는 일인 것을요.

     

     

     

    그녀는 지난 토요일 오십일 전에 다른 나라로 가버린 아들의 생을 기념하는 메모리알 써비스를 겸한

    작은 축하연 (Celebration of life) 을 베풀었습니다.

     

    그 전날에는 불교식으로 49제를 치루며 아들을 영원히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고보니 미국에 불교신도가 많이 늘어납니다.

     

    그리고 다음날 친구들을 모아 짧았던 아들의 삶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파티를 연 것입니다.

     

    죽음을 생의 마감, 또는 완성으로 보아 태어난 날처럼 죽음도 축하하는,

     

    말이 그렇지

    아무리 죽음을 승화하려해도 부모에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들 잃은 엄마랑 아빠가 두어번 목이 메어 서로가 대신 마이크를 잡거나 등을 토닥이며

    위로해주는 동안 우리 모두 마음에서 울어나오는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rainyday 043.JPG

     

     

    어릴 적 부터 신경계통의 장애로 트러블이 많았던 삶과 

    돌보며 지켜봐야했던 부모로서의 고통도 나눠주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짧은 인연 속에서도 함께 했던 반짝이던 기쁨의 순간들도 나누어주었습니다.

     

    선택의 여지없이 

    맡겨진 영혼에 대해 부모로서, 자신들만큼이 할 수 있던 최선을 다 하고 난 후 

    이제는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이는 자세로

    모인 사람 모두와 함께 ' 평화의 기도를 했습니다.

     

     

     

    Serenity Prayer(흔들림이 없는 절대적인 평온을 위한 기도)

     

    God grant me the serenity                       신이여 제게 평온을 주셔요

    to accept the things I cannot change;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I can;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세요;

    and wisdom to know the difference               그리고 바꿀 수 없는 것들과 바꿀 수 있는 것들 간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셔요.

     

     

     

    이제는 훌쩍 가버린 젊은이가 

    어릴 적 부터 자신이 만든 낚시대로 즐겨 낚시를 하던 

    향나무로 둘러쌓인 고요한 연못가에

    한 줌 가루로 묻히는 곳에 

     

    우리들은 정성으로 향나무 잎새들을 하나 차곡차곡 덮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조그만 나무 쪽배 안에 놓여진 촛불들을 하나하나 켰습니다.

     

    그의 영혼이 가는 길을 밝히는 것이라구요.

     

    종교적으로 갈등이 있는 하객들은 구태여 의식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고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평소에 로도덴드론을 좋아한 젊은이를 위해서 하객들이 가져간 로도덴드론 꽃나무들을

    그 주변에 심을 것이랍니다.

     

    그녀가 아들의 생을 테니슨의 싯귀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여름잎새' (brief summer leaves)라고 표현하면서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을 때

     

    나 또한  촌음으로 언뜻 지나가는 잎새인 것에 숨죽였더랬습니다.

     

     

     

     

    메모리알 행사가 끝난 후

    느즈막한 점심식사가 뒤따르고요.

     

    우리들은 모두 또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rainyday 057.JPG

     

     

     

    그녀를 위로하려고 

    이 빗속에서도 제일 먼저 어김없이 피어난 터커스 어얼리(Tucker's Early) 

    진한 보랏빛 라벤다를

    한 바구니 담아 갔습니다.

     

    올해 첫 라벤다가 누군가를 위로하는 일에 쓰여서 좋은 일입니다.

     

     

    이상기후 속에서도 제철이면 제 모습을 해내는 초목들을 보며

     

    내가 이고 사는 하늘아래 어떤 날씨던지

     

    다 순.응.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고.요.한 평.화.를 위해서요.

     

    그리고 

     

    오.늘.

     

    즐겁게 잘 살아야겠습니다.

     

     

    한 젊은이가 남겨주고 간 선물입니다.

     

     

     

     

     

              rainyday 052.JPG

     

     

     

    이천십년 유월 이십이일

     

    하지날

     

    바꿀 수 없는 것들을 이제야 알기 시작한

    교포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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