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공정택 전 교육감 구속' 조선일보 4월 15일 뉴스
요즘 교육감의 부정이 들통 나는 걸 보면서 학부모와 교사, 그리고 행정관리들이 공범했던 오랜 범죄의 온상이 말끔히 사라지는 풍토가 되는 밝은 교육 현장을 기대해 본다.
자라나는 내일의 국민들에게 똥물을 튀기는 유아원 부터 시작하는 촌지문화는 어린이들에게 부정 부패에 굴복, 적응, 가담케하는 실질적이고 생생한 교육장이 된다.
(몇 년 전 올렸던 글을 뒤져 다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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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서울 다녀오는 길에 너무 재미있다며 기내에서 본 ‘투사부일체’란 영화를 사왔다.
상소리와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속의 주인공 계두식 교생에게 악당을 무찌르는 의적처럼 박수를 보내며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통쾌하게 보았다.
대학졸업후 몇년간 몸담았던 교직생활이 오랜만에 생생히 떠오른다.
칠십년대 서울의 중앙통에 위치한 사립 중학교에서 투사부일체의 교내 비리의 내용과 그 부정을 저지르는 등장인물들이 거의 일치하는 교육현장을 경험했다.
학생들과 좋은 기억을 가졌던 오년간의 교직생활을 구태여 밝히지 않는 이유는 그런 환경에서 속수무책 무기력하게 느끼던 기억이 싫어서인 것 같다.
기억 저 깊숙히 눌러두었던 일들이 영화를 보면서 떠올려지는데 세월이 멋지게 발효시켰는지 이제 돌아보니 여간 코미디가 아니다.
일학년 과목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1반 학년주임 교사의 반에는 치마폭이 넓어서 일학년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 전체를 대상으로 자신의 자녀를 전교 일등시키는데 동원하는 왕치마가 있어서 한달에 한번씩 시내의 이름난 모음식점에서 회식을 베풀곤했다.
참석 교사들에겐 회식 후 월급에 반이나 되는 돈봉투들을 돌린다고 다녀온 옆자리 교사가 그 통큼에 대해서 혀를 두르는 소릴 듣곤했다.
다른 반에 처음 두번의 시험에 전교 일등을 한 J가 있었는데 세번째 부터는 번번히 5등내지 10등에 머물렀다.
체육,음악, 미술등의 교사들의 주관적인 점수가 매겨지는 과목에서 항상 J는 왕치마의 아이 K보다 열등한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몇몇 전교 일등 후보자가 있었지만 항상 예체능 과목에서 점수를 깎이곤 했다.
하루는 K의 반에 실험감독으로 들어가서 내가 출제한 문제 중 하나에서 K가 오답을 적은 것을 보고 답안지를 거두어나왔는데 성적이 발표된 결과로 K가 그 과목에서 100점을 받은 것으로 되어있기에 답안지를 뒤져보니 오답을 지우고 담임교사의 필체로 정답으로 고쳐져있었다.
이십대 초반의 내가 오십을 넘은 당사자인 학년주임이며 담임교사인 그 쓰레기 선생(이하 쓰선생으로 약칭)에게 답안지를 갖다대고 따졌더니 갑자기 쉬잇하면서 교무실밖으로 나가자더니
‘ 나 좀 봐줘. K가 일등할 때마다 K네 엄마가 사례로 오십만원씩 주기로 했거든. 이번에 돈받으면 내가 섭섭치 않게해줄게’
하며 한 눈을 꿈벅했다.
그때 오십만원은 쓰선생의 월급에 몇배가 되는 돈이었다.
문제의 고친 답안지를 들고 교무주임을 거쳐 교감을 거치는데도 아무도 아무런 반응이 없어 교장실 까지 갔는데
처음 면접한 자리에서 좋은 선생이 될사람은 한 눈에 알아본다며 즉시 나를 채용했던 그 교장이 똑같이 호탕한 음성으로
‘아무개 선생 이말 알아? ‘진세이와 난죠야? 일본말인데 인생이 무엇인가? 하는 말이야. 인생공부 더 해보면 이런 것 아무것도 아냐.’ 하며 나를 달래며 묵살해버렸다.
이러는 중 왕치마의 아이 K는 계속 일등을 달려 이학년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평소에 촌지가 많이 들어오는 졸업반이나 일학년만을 맡던 쓰선생이 이번에는 이학년 학년 주임을 맡겠다고 나섰다. 이 보기드문 금광을 남 못주고 자신이 계속 맡겠다는 심사였다. 등수대로 분반을 하니 학년주임인 1반 담임이 일등을 데려가는 건 따 논 당상이었다.
문제는 이 쓰선생이 욕심을 한발 더 내민데서 발단되었다. 등수대로 분반을 한 명단을 개학 며칠 앞두고 숙직을 하면서 평소에 눈여겨 봐 둔 각반의 봉투 학생들을 모조리 자기 반에 뽑아가서 반 배정을 바꿔치기 해버린 것이다.
개학 첫날 설레이며 등교한 학생들에게 학급배정이 게시되고 이학년 담임들에게 출석부와 학급 명단을 돌리자 이상한 낌새를 챈 교사들이 대짜고짜로 쓰선생한테 달겨 들었다.
그리고 날조된 명단임을 재빨리 확인했다. 봉투 밝히기에 쓰선생 둘째 가라면 서러울 체육을 가르치는 P선생을 앞장으로 몇 교사가 사기꾼 운운하며 길길이 날뛰었다.
평소엔 교무회의가 끝나면 돈버는 이야기로 서로 말이 통하는, 과외생들만 과외로 가르치고 정규수업은 주로 자습시키거나 무슨 트집이던지 잡아서 단체 기합으로 시간을 보내는 수학교사 왕쓰레기 J랑 항상 종로의 주식시장에서 오전을 보내고 목욕하고 점심먹고 오후에나 자리에 앉아 졸곤하던 교감이
학기 첫날이라 아침부터 할 수없이 자리를 지키다가 이 불의의 사태를 중재하고 나섰다.
이미 게시된 반배정을 보고 각 학급에 모여있는 학생들에게 명단을 다시 번복하고 출석부를 다시 만들 수도 없으니 최선의 해결책은 이 잭팟 학급 교사직을 놓고 제비를 뽑는 게 어떻겠냐는 인간의 약점을 최대로 이용한 기상천외의 기발난 안이었다.
놀랍게도 정말 놀랍게 이학년 담임 교사 한사람의 반대나 이견도 없이 일곱반의 교사가 교무실 한가운데서 상기된 얼굴로 투기에 임했다.
쓰선생이 백지를 일곱조각으로 내서 1에서 7까지의 숫자를 적고 꼬깃꼬깃 접어서 두 손에 넣어 몇번 흔들다가 주사위 던지듯 확 판위에 뿌렸다.
이제는 한개씩 집으면 되는 순간에 ‘잠깐’ 하면서 P선생이 스톱을 걸었다.
'왜 종이조각이 여섯개 밖에 안되는 거야 하면서.
교무실의 모든 눈이 쓰선생과 그의 손에 갔다.
‘에이 늙은이 좀 봐주면 안돼애?’
하면서 엄지와 검지 손가락 사이에 숨겨져있던 1 이라고 적힌 종이조각을 비굴한 얼굴로 할수 없이 펴 보였다.
첫 게임이 실패로 돌아가자 즉각 교감의 지시로 이일에 이해관계가 없는 젊은 비담임들을 시켜 엿장수 실뽑듯 위에 부분은 일곱개 직선을 그리고 아래 부분은 이리저리 꼬아 끝에 번호를 적어 아래부분은 가리고 각자 교사들이 위의 일곱개의 선중에서 하나를 뽑게하는 방법을 취했다.
쓰선생은 벌로 제일 끝에 하나 남은 번호를 가지도록 선택권을 박탈했다.
그리하여 두시간여의 희비애락은 끝이나고 그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쓰선생이 야심작 잭팟 학급은 이십대의 젊은 윤리교사 K에게로 당첨되어 개학 첫날 개학식이 두시간이나 지연되는 쇼우로 막을 내렸다. 햇병아리였던 그 당첨 여교사가 그 해 하루에도 두어번씩 학부형에게 불려나갔다가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돌아와 출석부나 교과서에 끼워 온 돈봉투를 살그머니 핸드백으로 옮길라치면
‘K선생, 그거 다 내 덕인 줄 알아. 나한테도 좀 나눠 줘.’ 하며 못내 주머니 돈 도둑 맞은것 처럼 아쉬워하며 별볼일 없이 돈되는 학생들은 다빠진 재수 옴튼 학생들의 학급을 맡으며 쓴담배만 퍽퍽 피우던 쓰선생.
그 사건에 대한 학교측의 해명이나 쓰선생의 사과문이나 그에 대한 어떤 징계도 그 후에 없었다.
같은 해에 친척 조카가 중학교 입학 후 반장 후보로 나갔는데 예상을 뒤엎고 낙선이 되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몇몇 학급 임원이 담임 교사가 혼자 개봉한 후 쓰레기통에 버린 투표용지를 모아 다시 까보고 교사가 개표 조작한 것을 발견 부모들에게 알렸고 부모들의 학교측에 항의로 담임이 바뀌고 반장이 다시 선출되었는데 들어오는 교사들 몇몇이 나쁜 녀석들이라고 단체로 벌주고 반장인 조카는 대표라고 특별하게 벌서느라 하루를 고되게 보내는 웃지못할 사태가 벌어졌다.
나처럼 사회 초년생으로 마악 기자생활을 시작한 대학교 때 같이 야학교사를 하던 친구 L이 위의 사실들의 진위를 조사하고 기사를 써서 편집국에 올리니 ‘학교는 우리 사회의 최후의 양심의 보루라서 절대 침뱉을 수 없다’며 기사 원고를 간단히 쓰레기통에 넣었다는 칠십년대 한국 굴지의 신문사의 편집 데스크.
아아, 나도 그때 차라리 조폭이었더라면….
주인공 계두식 교생이 비리와 폭력에 발길질을 하고 몽둥이를 휘두를때마다 나도 마음으로 조폭 투사가 되어 그들을 흠씬 패줬다.
시원하다.
치열한 경쟁에서 아이들 대신 또는 등에 업고 스스로가 뛰고자했던 내자식만 사람인 막무가내 반칙장이 새치기 도사 치맛바람 부모들
치맛바람을 조장시키고 그 바람에 놀아나 사회의 온갖 비리를 어린 동심들 앞에서 뻔뻔히 교과서처럼 몸소 펼쳐보이던 교사들
사학을 치부의 방법으로 영리 재단으로 현금 조달 장소로 사용하던 일부 사학재단 설립자들
썩은 부분때문에 교권 전체를 매도 할 수는 없지만 이들 중 일부는 우리 사회의 사부일체의 가치관으로 절대 권위를 부여받아 치외법권지대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온갖 만행을 저질러온 저질 조폭들이었다.
참신한 후배 젊은이들이 교직에 뛰어들어 촌지 안받기 운동을 한다는 풋풋한 이야기를 들은 것도 한참 되었는데 칠십년대의 교육현장에서의 비리들이 이천년대에 영화의 소재로 여전히 인기몰이를 하고있다는 사실엔 놀랍다.
학교비리는 너와 나가 깊게 관여되어 합리적인 방법으론 해결할 수 없는 깊은 사회악으로 또 다른 폭력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는가하는 추측도 해본다.
그래도 동심을 멍들게하는 파렴치한들을 무자비한 직업 폭력가들을 시켜 때리고 조롱하여 벌주는 코미디 영화로 만들어 관객들이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하는 것은 확실히 달라진 세태를 느끼게 한다.
웃음의 대상이 되어 세상에 발가벗기게 되면
그다음엔 설자리를 잃어버리게 된다.
어제 린다 마이크네 부부랑 저녁을 먹고 난 후의 대화 중에
마이크가 십사년간 시티 매니저로 살림을 맡았던 인구 십칠만의 워싱톤주 작은 도시에 있는 미들스쿨에 전혀 학교와 교사의 권위를 무시하고 교실에서 날뛰는 일부학생들로 부터 학교의 질서 유지와 학생들과 교사들의 신변 안전을 위해 시청각 교육자료실에 두명의 경찰이 매일 상주하는 이야길하며 교사들에게 절대 복종하고 양말을 신지 않으면 혼나던 자신들의 청소년 시절과 비교하며 개탄했다.
미국의 학교 폭력에 대해선 한두가지로 잘라 말할 수 없이 복잡다단한 요소들이 그 원인이 되겠지만 ‘어떻게 미국을 이 지경까지 몰고 왔는가’라면서 육십년대 부모, 학교를 위시해 사회 전반의 모든 권위를 무시하고 깨부순 자신들 세대때문이라고 자책했다.
육십년대 칠십년대의 미국은 여성과 유색인종이 백인 남자들에 반기를 들고 자신들의 인권을 쟁취한 시대였으며 젊은 세대가 자신들을 월남전같은 죽음의 상황으로 몰아넣은 위선과 거짓 투성이 기성세대들의 모든 가치관과 권위에 근본적으로 질문하고 혼신으로 도전, 추락시킨 때였음을, 집으로 걸어돌아가면서 마이크는 기억해낼지도 모르겠다.
첨언: 삼십여년 후에 돌아 와 근무하던 학교의 소식을 들으니 그당시 왕쓰선생(왕 쓰레기) 수학 교사로 아이들 수학 과외 가르치고, 촌지 걷기에 혈안이고, 발육이 빠른 가난한 집 아이들 데려다가 트집잡아 때리며 말로 성희롱 하던, 교감하고 아침마다 주식 시장 들여다 보며 투자에 골몰하던, 마누라랑 싸우고 나면 애들 단체로 때리고, 별명이 미친개이던 그 쓰레기가 교장까지 했다는 이야기다.
첨언:촌지를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에게 뇌물 증여죄처럼 벌을 가하는 제도가 만들어져야 할 것 같다.
첨언: 이글이 참신한 교사들의 모습에 먹칠을 하는 결과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2010년 6월 10일
교포아줌마 올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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