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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득 도시가 그리워지는 날
    농장주변이야기 2007. 8. 8. 23:10





    어제 아침 포도밭에 잡초를 뽑는 중에
    느닷없이 부리가 뾰죽하고 희고 검은 새가 나타나서 덤벼듭니다.

    무릅을 꿇은 자세에서 새의 정면 공격을 받은 것에
    소스라쳐 놀랐습니다.

    온 몸에 깃털을 다 세우고
    펄쩍펄쩍 뛰며 꽥 소리를 지르며 막무가내로 대듭니다.

    아니 어디가 다쳐서 고통스러워서인가

    상처라도 있나 보려고 가까이 가니 눈을 쪼려고 뛰어오릅니다.

    이렇게 가까이서 맹렬하게 대드는 새는 난생 첨입니다.

    상대 안 하려고 몸을 돌리니 새가 더 소리치며 날뜁니다.

    그 소리에 울타리 밖에서 나를 지켜보던 우리 삽살개가 
    포도밭으로 훌쩍 넘어 들어왔습니다. 

    새는 날아서 공중으로 올라가서도 여전히 소리칩니다.

    일어서서 나오려는데 아뿔싸 옆 줄에 회색 알들이 세개 보였습니다.

     

    알 품은 새둥지는 건드릴 수 없습니다.

    부랴부랴 우리 개가  알들을 볼 세라 밖으로 나오는 중에도 

    공중에서 꽥꽥 호통을 칩니다.

    우리 하룻 강아지는

    지난 해 캐네디안 기러기들이 알 낳고 방치해 둔 

    어른 주먹만한 알을 두개나 먹었거든요.


    올핸 흰머리 독수리들이 잘 안보이는 것이
    가마귀들이 하도 성해서 독수리들을 몰아낸 것 같습니다.

    굴뚝에 깃들어 후웃후웃 고운 소리를 내던  헛간 부엉이 가족도 
    가마귀들이 잡아 먹은 것 같습니다.

    부엉이 새끼는 가마귀가 낮에 공격하고
    가마귀 새끼는 부엉이가 밤에 잡는데
    가마귀 수가 워낙 많아서 상대가 안되는 것 같습니다.


    머리가 커서 아이큐가 높고 무리를 지어살며

    무리간에 의사소통으로 상조상부하는 가마귀들 숫자는 

    지구 상에 점점 늘어난다는데

    밭에 깐 검은 직조가 열을 받아 따끈따끈한 것을 알고 

    대강대강 알 품어도 깨일 수 있겠다 싶어서인지

    포도밭에 알을 품은 저 헛똑똑이 이름모를 새는 

    무슨 수로 가마귀들의 눈을 피해 
    안전 출산을 하려나


    발톱으로 채가는 독수리들도 없고 밤엔 승냥이들도 뜸한지
    토끼들은 애들 데리고 바로현관 앞까지 와서 보기에도 화목한 가족모임을 갖고
    라벤다 밭에 이리저리 토끼집을 만든 것이 점점 아파트 대단지가 되어갑니다.

     

    이젠 토끼 덫을 놓는 것도 법으로 금지되어서

    고양이를 길러 순찰을 돌게하지 않는 한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막 단내를 풍기기 시작하는 린다네 복분자딸기 밭엔 노루떼가 와서

    상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제 밤엔 드디어 노루들이 우리 밭에도 출현해서 상추랑 고추랑 깡그리 잘라 먹고
    디저트로 남편이 애지중지하는  딸기 밭을 잎사귀들 까지 몽땅 먹어치웠습니다.

    몇 알 남긴 것은 익기까지 기다리려는지

    겨우 발개지기 시작하는 것들 뿐입니다.

    이런 날 아침엔 에라 이 땅 원래 주인들에게 

    그래 너네들 잘 먹고 잘살아라 물려주고

    훌쩍 도시로 가고 싶어집니다.


    이천 칠년 칠월 칠일 

    교포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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