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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어려운 입장
    구경하기 2007. 8. 8. 23:07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짤트 탄생 250년을 맞아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지구상의 한 도시인
    씨애틀의 씨애틀 씸포니에서도 온통 모짤트의
    음악들로 갖가지 프로그램으로
    요절한 천재의 생을 축하하는 페스티발을 
    벌이고 있습니다.


    프로그램 중에 눈길을 끈 것은
    바이올리니스트인 잍착 펄만(Itzhak Perlman)이 
    초청 지휘자로 모짜르트의 장송곡(Requiem)을 지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몇번을 보았던 영화 ' 아마데우스' 의 소재가 되었던 레뀌엠의 감동을
    생음악으로 느끼는 기대감

    어릴 적 소아마비의 후유증으로 
    앉아서 바이얼린을 켜는 퍼얼만이 
    어떤 지휘자의 모습으로 어떻게 이 중후하고 심오한 음악을 연주할까
    하는 호기심


    그의 제자인
    한국인 이세 열일곱살의 레이첼 리(Rachel Lee)가
    바이올린 콘첼토 No.5 K219 (Turkish)를 씨애틀 씸포니와 협연하는 
    프로그램도 있어서
    장영주의 뒤를 이어 떠오르는 또하나의 한국계 바이얼리니스트를
    응원하는 마음등을 가지고 연주회에 갔습니다. 


    * * *
    여성 콘서트 매스터가 날렵하게 입장해서
    악기들의 음을 고르고 의자에 앉고
    이어서 지휘자가 커튼 뒤에서 입장합니다.

    혼자서 
    양 손에 목발을 짚고 두발에 보철이 달린 구두를 신고
    지휘단상을 향했습니다.

    천천히 심하게 몸을 뒤틀면서 열심히 매걸음에 신중을
    기하면서 걷습니다.

    세 단으로 이루어진 지휘단상에 오를 때는
    한순간 목발과 발걸음이 제대로 맞지 않아
    뒤뚱하고 넘어질 뻔해서 관객들이 손에 땀을 쥐었습니다

    드디어 단에 올라 앉은 자세를 갖추고 자신있게 지휘봉을 들기까지
    청중들은 줄곧 기립해서 우뢰와 같은 박수로 그의 매걸음을 응원했습니다.

    그의 입장(Entrance) 그 자체가 감명깊은 하나의 연주였습니다.

    * * *

    저는 펄만을 아주 가깝게 느낍니다.
    레코드를 통한 그의 숱한 바이올린 연주곡들과
    화면을 통해 본 그의 연주하는 모습들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십여년전
    캐임브릿지 하바드 야아드에서
    우연히 그를 지나쳤습니다.

    그는 세명의 동행이 있었는데
    예의 그 힘든 목발 걸음에 한손에는 가죽 손가방까지 들고
    자신이 닭요리하는 이야기를 하며 걷더군요.
    두드러지게 발달한 어깨와 팔뚝, 손
    그리고 쾌활한 웃음을 섞은 음성

    뒤에서 숨죽여 걸으면서
    이 명연주가의 일거수 일투족을 노칠세라 
    귀하게 관찰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 어릴 때 보고 자란 TV프로그램
    Sesame Street에 나온 그의 모습도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EASY 와 DIFFICULT라는 단어를 배워주는 부분에
    펄만이 출연했습니다.

    예닐곱살 된 여자애가 깡충깡충 뛰어서는
    몇개의 계단을 오르더니 EASY ! 라고 말합니다.
    뒤이어 목발의 퍼얼만이 천천히 힘들게 올라가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으며
    DIFFICULT! 라 말합니다.

    아이가 끼익끼익 바이얼린 소리를 내느라 애쓰다가 DIFFICULT! 하고
    펄만이 순식간에 멋진 멜로디를 켜고는 EASY! 하는 장면입니다.

    다양하게 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려고 직접 구상하고 출연했다 합니다.

    * * *

    전체 삼부로 나뉘어진 
    프로그램(Itzhak Perlman Conducts Mozart Requiem) 동안
    펄만은 목발을 짚고 세번 입장하고 세번 퇴장했습니다.


    흰색의 부품한 드레스로 곱게 차린 레이쳘 리
    소프라노, 메쪼 쏘프라노, 테너, 베이쓰-바리톤의 네 가수들
    백사십명의 씨애틀씸포니 합창단
    그리고 씨애틀씸포니 단원들을 지휘하여
    멋진 모짜르트 음악을 
    앉아서 
    두시간 남짓 거뜬히 연출해냈습니다.

    청중들의 환호에 답하느라 다시 입장해서 인사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렵게 그러나 열심히 걷던 모습이 
    모짜르트 음악의 감동과 함께 저의 가슴에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하이텍의 시대
    세계 하이텍의 선두를 달리는 도시 중의 하나인 씨애틀에서
    얼마든지 전자 자동화된 기계로 쉽고 매끄럽게 입장할 수 있을텐데

    자신의 어려움을 그대로 보이기를 고집하는 그에게서
    어려움에 익숙해진 그의 삶 자체가
    그토록 아름다운 음악을 쉬이 연주해내는 근원이 됨을 
    감동과 함께 새삼 배웠습니다

    250년을 지나고도
    불후의 선률들로 오늘도 살아있는
    작곡가 모짤트와는 달리
    음악 연주가나 지휘자들은 그 명성이 오래가지 않지만

    명바이올리니스트 잍챡 펄만의 
    힘들게 걷는 모습과 그의 예술성은
    길이 후세에 전해질 것 같습니다.




    교포아줌마 올림

    2006년 일월 이십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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