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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힌솥의 밥을 떠나서
    횡수설설 2007. 8. 8. 23:02
    죤이랑 린다네가 집들이가 아닌 부엌과 식당들이를 했다.

    벌써 일년 반째나 걸려 짓고 있는 집이 일손 구하기도 어렵고 
    자금도 바닥이 나서 좀체로 끝나지 않아 좀 우울해진다고
    집들이(house warming party)는 완공 뒤로 미루고 
    대강 마무리한 부엌과 식당에서 이웃 사촌들만 초대해
    일요일 아침의 브런치를 대접했다.

    죤네 초원에서 말을 먹이고 재우는 캔디네 부부
    이웃 사촌인 캐롤네 부부
    우리 부부 그리고 죤이랑 린다 여덟 사람이 모여 앉았다.


    미시시피의 남부 프렌치계의 요리 잘하는 엄마 음식을 먹고 자란 린다가 
    정성스레 솜씨를 부렸다.

    소고기 돼지고기를 안먹는
    제칠일 안식교인들인 캐롤과 프레드 부부를 배려해서
    터어키 소시지를 준비하고

    야채 오믈렛이랑

    초콜렡 씨네몬 빵하고 캐롵 케이크도 굽고
    과일 샐러드를 만들었다.

    죤은 우리동네 잡초 같이 지천에 깔린
    물푸레 나무(alder tree) 조각을 넣어 연어를 훈제하고
    프렌치 토스트를 손수 만들어
    부부가 함께 식탁을 차렸다.

    음식을 많이 가리는 캐롤네는 커피 대신 자신들의 커피 비슷한
    음료를 가져오고
    각자 기호에 따라 
    차게 한 오렌지 쥬스에 샴페인을 섞은 미모사(mimosa)와 
    오렌지 쥬스로 아침을 시작했다.

    캔디가 죤보고 감사기도(grace) 하라고 청하니
    모인 사람들 각자 종교가 다르니까 나름대로들 감사하라며
    이렇게 멋진 다이닝룸에 이웃과 앉아 음식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감사한다고 간단히 기도를 대신했다.


    식당의 벽엔 남부의 정취를 나타내는 
    크림색 마그놀리아 한송이 소담스럽게 붙어있고
    정성스레 다린 상보랑 수놓은 내프킨
    할머니에게서 물려 받은 차이나랑 크리스탈 컵들이
    남부지방의 어느 식탁에 앉은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자연 남부의 맛있고 걸진 요리가 화제에 올랐다.

    식초를 넣은 매운 소오스에 비벼 먹는 통돼지 바비큐 이야길 하다가 
    우리나라 돼지 머리 삶아 누르는 것과 똑같은 head cheese 이야기며

    독일계의 캔디남편이 blood sausage 맛있단 이야기에
    영국의 black pudding 이나 
    우리나라의 순대가 다 같이 재료랑 맛이 거기서 거기란 이야기

    미국외의 나라에선 소나 돼지의 모든 부분을 낭비없이 
    맛있게 조리해 먹는 이야기


    한국의 김치와 독일의 캐비지 피클인 sauerkraut의 닮은 맛을 이야기하며
    입맛들을 다시기도 하고



    어릴 적 접시에 담아 준 음식은 군말 말고 다 먹어야 했다던가
    아이들에게 한가지 싫어하는 음식은 빼고 먹을 수 있게 허락해준 
    좀 너그러운 엄마의 이야기며
    아들 형제가 다섯이라 엄마가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드느라 
    간단한 조리법으로 야채라곤 감자와 옥수수만 먹었다는 이야기등에 섞어
    두시간 동안 하하호호 웃으며 상을 다 비웠다.

    * * *

    그러고보니 내가 그동안 참 많이 변했다.

    한국집이 아닌 
    어떤 모임의 어떤 음식의 식사에 가더라도
    편하게 먹고 마시게 된 것이 그렇다.

    * * *

    미국 온 첫 해 추수감사절에 남편 지도교수 집에서 
    로즈마리, 베이질, 세이지등의 온갖 향을 넣은 터어키는
    지금 생각해도 목이 절로 돌아가게 낯설었다.

    파티라는 말에 영화 하이클라스를 떠올리고 
    그레이스 켈리처럼 하이힐에 정장을 떨쳐 입고 가서
    청바지 스웨터 운동화 차림의 평상복으로 
    여기저기 자기들 편한대로 앉거나 덜렁 눕기까지 하는 
    다른 대학원생들 사이에서
    엉거주춤 영 불편했었다. 

    거기다가 말은 안통하고 인사를 건네오는 사람들틈에서
    입언저리가 마비될 정도로 한결같이 속썩은 억지미소를 짓느라 
    혼자서 서툰 꼭두각시 인형춤을 추는 것 같던 저녁이었다.


    그렁저렁 지난 삼십년간
    전세계의 온갖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다양한 음식을 다양하게 요리하여 다양한 식탁에 올려
    다양한 방법으로 먹는 이 미국에서 
    때론 진땀을 흘리고 
    때론 실수한 걸 뒤늦게 알아 혼자 키득키득거리거나 
    얼굴 붉히면서 산전수전의 백전용사가 되어
    이젠 
    사과를 포크와 나이프로 솜씨있게 깎아먹는 사람 앞에서
    내 사과 내 스타일로 먹는다 하고 맨입으로 베어먹는 배짱도 생겼다.


    앞에 놓인 크기가 다른 세개의 포오크의 용도에 신경이 쓰여
    눈치 보느라 뭘먹었는지 모르겠던 어리석은 내숭을 깨고
    식탁에서 모르는 건 무조건 주인에게 물어보는게 
    몸과 마음에 좋다는걸 깨우치고 
    식탁, 음식에 따라 젓가락 삼지창 손가락을 자유자재로 쓰며 
    갖가지 양념에도 얼추 익숙해지고
    상위에 오르는 대화에도 함께 수다떨며 
    음식을 즐길 수 있게 되기까지의 소화 안되던 
    숱하게 많던 날들이여.




    안맞고 마음 불편한 
    낯설고 새로운 것들에 용맹히 적응하다보니
    어느새 내 밥먹는 습관에도 변화가 생겼다.

    음식을 입에 넣고 말하지 않고 
    씹을 때 입을 꼭 다물고 
    스파게티 먹을 때 국수를 이로 끊지않고 돌돌 말아 
    한입에 넣고
    고기나 야채도 큰 조각을 앞니로 끊지 않고 잘게 썰어 한입에 넣고
    같이 나누는 음식에는 써빙 스푼, 포크, 국자를 따로 놓아 
    각자의 수저가 직접 닿으면 못먹는 줄 알 정도가 되고
    야채나 칲을 찍어먹는 소오스들에 한번 입에 물었던 음식은 다시 넣지 않고
    트림은 숨넘어 가도 참고 코는 밥상에서 팡팡풀고 그렇게 되었다.

    좀 정이 없고 복없이 까다롭게 음식을 먹는 것 같이 보일지 모르겠다.

    지난 가을 어느 답사팀에 끼어 충청도 지방을 둘러보는 일정에
    그 지방에서 순두부로 유명한 식당에 점심차 갔는데
    네명마다 한상씩 차려 나오는데 순두부는 한 상에 한 대접만 달랑 올랐다.

    버스기사, 인솔자, 그리고 우리 부부가 앉은 그상에서
    남편과 나는 밥하고 나물들만 먹고 순두부는 한숟갈도 뜨지 못했다.

    하루 만나 같이 지낸 사이도 남이 아니라고 넷씩 짝지어
    사이좋게 한 솥 밥 한 뚝배기 찌개 나눠 먹는 그 식탁에서 
    썰렁하게 위생문제를 떠올려 혹 분위기 깰까봐
    따로 달라는 말도 못했다.






    여름에 시어머니 와 계실 때
    유태계 미국인 딸아이 친구가 며칠 놀러왔는데
    식탁에서 두 문화가 

    서로의 배려와 포용속에 잘 어우러지는 걸 보았다.

    어머니가 육개장을 후후 불며 후루룩후루룩 요란하게 드시는 걸 
    찬찬히 보던 그 친구가 갑자기 어머니 보다 더 큰 소리로 
    후후 불고 후룩거리면서
    이렇게 먹으니까 이 맵고 뜨거운 국물이 더 맛난다고 했다.


    요리사 지망생인 딸 애 친구는
    고유의 음식을 먹을 때는 고유의 먹는 습관도 따라 먹어야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지혜를 알고 있었다.


    그 다음날엔 우동을 끓여 
    뜨거운 국수를 한꺼번에 듬뿍 집어 앞니로 끊으며
    훌훌 코를 훌쩍거리며 모두들 편안하게 먹었다.


    연어를 통째로 구워 올렸는데 생선 눈알을 별미로 아시는 어머니가
    '얘야, 저 손님한테 나한테 생선 눈알을 양보할 수 있냐고 물어봐라'
    하셔서 식탁이 와그르르 부서지게 한바탕 웃었다.

    구운 생선 눈이 얼마나 맛있지는 먹어본 사람끼리만 그 맛을 안다.



    이십대의 우리 부부가 고추가루, 고추장,쌀, 멸치등을 챙긴 짐을 
    싸놓고 그 때 아흔 가까우시던 시외할머님께 절을 올리니

    '한식구가 모여 한솥밥 먹고 사는 것도 복인데
    물다르고 음식다른 먼나라에 가서 무슨 고생을 사서 하려느냐'고
    눈가를 훔치시던 생각이 난다.


    한식구 한솥밥 먹던 복을 그리고 아쉬워한 적이 많다.

    이젠
    가리지않고 누구와도 마주 앉아 
    무슨 음식이라도 편하게 나눌 수 있는
    메트로폴리탄 식성이 된 것 
    또한 복이라고 생각한다










    2007년 일월 십일일 춥고 해밝은 아침

    교포아줌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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