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실수한 날
    다문화사회 2014. 6. 24. 22:57





    저녁을 준비하면서 낯이 뜨끈뜨끈해진다.

    어쩌면 내가 그런 실언들을 전혀 거리낌없이 내뱉을 수가 있었을까?

    곰곰 생각해봐도 어떤 편견에서 한 말은 아닌데
    예민한 이십대 초반의 젊은이들에게 주었을지도 모를 상처를 생각하면
    가슴이 뜨끔뜨끔하다.










    * * *
    오늘
    새로 심을 작물들에 배수관 시설을 하느라 데이비드가 두살 아래 동생인 후안(Juan)이랑
    후안 친구 마리오(Mario)를 데리고 일하러 왔다.

    데이비드 곤잘레스는 우리가 작년 봄 처음으로 농사랍시고 시작할 때부터 줄곧 우리를
    도와주는 고마운 친구다.

    멕시코에서 태어나서 일곱살에 캘리포니아의 프레즈노(Fresno) 카운티로 이주한 후 오렌지, 포도농장에서 잔뼈가 굵은 스물두살의 건장한 젊은이다.

    열 살때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오렌지 따던 이야길하면서 
    주위에 온통 널린 오렌지에 질려서 오렌지가 맛있는 줄 모른다는 친구다.

    죤 스타인 벡의 소설 ‘분노는 포도처럼’ 의 배경이 바로 데이비드가 자라난 곳이다.


    데이비드를 만난 것이 우리 부부에겐 정말 행운이다 싶게 
    일도 열심히 하지만 낙천적이고 쾌활한 성격에
    전혀 구김살을 볼 수 없어 그가 일하러 오는 날은 남편이나 나나 
    데이비드가 밭에서 하루종일 크게 틀어놓는
    멕시칸 음악만큼이나 하루 종일 덩달아 흥겹게 일하곤 한다.

    고등학교에서는 풋볼 선수였고
    커뮤니티 칼리지를 다니다가 
    근처의 목장에서 우량종의 소,돼지등을 번식시키는 것을 배우고 있다.


    빈들에서 시작해서 이제 제법 모습을 갖추어가는 우리 농장을 돌아보면 
    어디하나 그의 손길이 가지 않은 구석이 없다.

    라아벤다 밭에서 부터 새로 지은 헛간(barn), 과일 나무들, 곳곳에 데이비드와 
    그의 일가 친족들의 땀과 노동과 순하고 넉넉한 웃음들이 온통 배어있다.




    * * *

    삼월 중에 다녀 온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칠레 여행 길에서 
    고작 몇마디 배운 엉성한 스페인어 표현이랑,

    처음으로 같은 스페인어를 쓰는 사람들의 문화를 접하고 오니
    어쩐지 데이비드에 대해 좀더 알게 된것 같고 더 잘 통할 것 같은 착각에
    데이비드가 태어난 멕시코와 
    남미의 아르헨티나, 칠레를 한 동아리로 묶어 
    무식 범벅으로 짧은 경험을 과시하며 이야길 끌어간 것은

    오직 나의 무지와 남을 살피지 못한 경솔함에서 나온 것이다.

    고작 
    두어주 남짓동안 내눈의 안경으로 관찰한 
    아르헨티나 칠레사람들을 이야기하면서
    어느 새 데이비드랑 후안이랑 마리오도 같은 사람들로
    일반화시키고 까불었다.


    후안에게 마떼(mate)라는 차를 마시느냐고 남미 사람들은 다 마시던데 라고 하자
    데이비드가 웃으면서 우리는 ‘미국 젊은이’들이어서 잘 모른다고 할 때에서야
    퍽하고 제 정신이 들었다.

    나는 왜 어쩌자고
    이 미국에서 자라서 일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멕시칸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뿐만 아니라 이세상 스페인어를 쓰는 사람들은 다 같은 무리의 사람으로 보아
    개인을 집단에 묻어버리는 과오를 범한단 말인가?




    * * *
    미국에 살면서
    누가 나보고 어디서 왔느냐(Where are you from?) 고 물으면
    마치 주인이 객을 향한 언사같아서 좀 언쨚아지곤 했다.

    스포케인 퀘달린 네이티브 아메리칸으로 
    단편 소설가이며 코미디언,시인으로 유명한 Ten Little Indian의 저자 
    셔만 알렉시(Sherman Alexei)는
    911 직후 씨애틀 거리를 배회하는 그에게
    술취한 행인이 ‘Go back to where you came from’ .이란 소릴듣고
    자기가 어디서 왔느냐고 미국 사회에 되물은 적이 있다.


    아시안계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버어클리 대학교의 총장을 지낸 Tien(1990-1997) 교수가
    어느 공석 연설에서 캠퍼스 밖에만 나가면 ‘where are you from?’ 이라는 질문에 
    떳떳한 미국 시민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사회에서 영원히 객으로 취급받는 아시안의 처지를 씁쓸하게 토로한 것을 보도한 
    방송을 본 적이 있는데 나도 그와 같은 기분에서 일 것이다.



    이런 저런 배경에서
    꼭 필요한 경우 아니면 
    미국 사회에선 누구에게나 
    출신국을 묻고 거론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라고 생각해왔었다.



    간혹 
    낯선 사람들과의 모임에서 누가 반색을 하면서 다가와서는
    일본사람이냐 중국에서 왔느냐 그러다가 한국에서 왔다면
    극동 아시아 거기서 거기 한국 일본 중국을 다같은 사람들로 묶어
    이것저것 아는체 하면서 한 그릇에 버무려 비벼 넣을 때는
    상대방의 무지에 대한 답답함이 불쾌감으로 번지는 때도 많아 애써 
    헛웃음으로 일축하곤 했었다.
    * * *




    오늘 
    데이비드와 후안 그리고 마리오 이십대 초반에 감수성이 예민한
    청년들에게 무대뽀로 저지른 실례와 그에 대한 자신의 변명을 생각할 수록
    나란 인간이 얼마나 자기 중심적인가 발견하고 화들짝 놀랜다.

    남이 같은 실수를 내게 해 올 때와
    내가 남에게 실례를 했을 때 해석을 달리 하게 되는 
    이중잣대를 지닌 뻔뻔스러움이라니.


    한편
    좀 더 내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내게 실수하는 사람들도
    편견이나 오만보다는
    무지라는 단순함에서 
    또 자신의 빈약한 경험을 토대로
    뭔가 좀 더 통해보려는 의도에서 그리할 수도 있겠다 싶어진다.

    * * *

    해 밝은 봄 날
    등이 휘게 모두들
    하루 종일 수고한 저녁 상에
    밥이랑 구운 김이랑 삶은 야채 샐러드랑
    구운 갈비랑 싱싱한 고추종류와 토마토를 섞어만든
    토마토 쌀사(salsa)를 듬뿍 곁들였다.

    각자의 컵에 물을 따르면서
    오늘 내가 한 실례에 대해 조심스레 사과했다.

    ‘단순한 무식’에서 비롯한 실수라는 내 변명을 빼지 않고.

    내 실수에서 남의 실수를 이해한 날이었다.




    이천육년 사월 사일
    교포아줌마 올림




    *전에 조선 블로그에 올렸던 글입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