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늦은 시간에 크리스틴이 문득 왔다. 빨간 파카를 입고 청바지를 입고.
웬일? 하며 묻는 내 눈에 대고 장례식 다녀오는 길이란다. 우리 동네 분위기는 격식에서 자유로와서 장례식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차림으로 망자에 대한 예를 나타낼 수 있어서 좋지 않느냐며 들어선다.
따뜻한 차를 끓이고 팥떡도 내어놓고 숨을 돌리게 하니 내 손에 작은 나무 조각을 얹어준다.
아직도 물기가 남아있는 물푸레 나무 작은 가지를 송송 썰은 한 조각이다.
며칠 전 까지도 펄펄 날던 친구가 나무 자르다 변을 당했다고.
사고 난지 닷새만에 네이티브 어메리칸 의식으로 장례를 치루었는데 죽은 친구 생각에 의식은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줄곧 노래와 춤, 그리고 연신 풍기는 자욱한 연기속에서 하루 종일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영결식이 끝나고 돌아가는 조문객들 모두에게 이 나무조각을 나눠줘서 무심코 받아들고 왔다며 이유가 뭘까 한다.
왜 네이티브 어메리칸들은 나무에도 혼이 있다고 믿쟎아. 아픔도 알고 피도 흘리고 공포에도 떨고 원수도 갚는 그런 이야기들이 많은 부족들의 설화에 두루 널려있어. 벌목 당할 숲들이 밤에 웅웅 울다가 다음 날 아침 불도저가 오자 큰나무 들이 쓰러져서 불도저와 운전자들을 죽였다는 이야기들도 있어.
자른 나무랑 명을 같이 했으니 죽은 이와 죽은 나무를 함께 추모하느라 그 나무 조각을 나눠 준 것 아닐까 나무를 자를 때 조심할 것을 남은 이들에게 경고도 할 겸.
나무를 이해하면 사고도 그리 억울하지 않을 것이고 사고로 인한 죽음도 순리로 받아들에게 되고.
위로될까 해서 되는 말 안되는 말 이리저리 주저리주저리 엮었다.
하루 종일 밖에서 얼었는지 크리스틴은 듣는 둥 마는 둥 차를 열심히 마신다.
몸이랑 마음이랑 좀 녹나 했더니 느닷없이 몰몬교에 대해 이야기한다.
공동체 의식이 상당해. 그리고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안정감도 무시할 수 없고 이웃이 어려움을 당하면 상대를 차별치않고 무조건 돕는 것도 얼마나 좋은 일이야. 그게 교리로 어기면 벌을 받는다니 사회적 압력(social pressure)으로 남을 돕는 것도 확실한 것 같고.
넌 무신론자 아니었어?
아직은 종교를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구경다니는 단계지만 신의 존재는 항상 느낄 수 있었어.
죽을 일도 걱정이야. 저렇게 젊은이가 어이없이 덜컥 가버리는 걸 보니 준비 안 된 내 죽음도 현실로 가깝게 다가오네.
나는 계속 차를 내고 떡을 내고 크리스틴은 연신 먹어댔다.
지난 이년간은 동네에 새로 생긴 일본계통의 절에 가서 모찌 만드는 것 배우고 다도도 배우며 모찌도 먹고 녹차도 마시며 절 구경하느라 열심이더니...
삼십 초반에 미국에 온 영국계 이민일세로 혈육이 없이 남편만 달랑 의지하고 살아 온 크리스틴이다.
* * * 쑤우는 미리 치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하는 성격이라 그런지 육십 중반의 나이인데도
오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오기가 무섭게
자신의 영결식에 올 친구들 명단 연주할 음악 장식할 꽃에 대해 다 정해서 유언장을 벌써 다 써 놓았단다.
화장을 해서 자신이 잘 다니는 산책로에 뿌리고 그 자리엔 노란 향나무로 벤치를 만들어 (자신의 사진과 이름을 새겨넣은) 사람들을 쉬어가게 하고 쓰고 남은 돈은 몽땅 미국국립공원에 기부한다고. 그녀는 내셔널 파크에 대한 사랑과 기부 활동에 정말 열성적이다.
기왕이면 살아있을 때 벤치를 만들어놓고 자신도 즐기다 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 내년 봄쯤 실행에 옮길까 한다고.
혹시 자신이 남편보다 더 먼저 가게되면 자신의 친구 중에 괜챦은 사람을 골라서 혹시 그들 중에 미망인이 되었을 경우 남편보고 데이트 상대자로 고려하라고 명단을 작성해두겠다고 하니 사람 좋은 그녀 남편이 그 시간에 당신 갈 준비나 더 멋지게 하라고 넌지시 사양하더라고.
평소에 명랑하고 음식 차리기를 즐겨하고 친구가 많은 쑤우는 죽음을 준비함에도 친구들과 즐김을 염두에 두었다.
듣다보니 나도 덩달아 긍정적이고 밝은 마음이 되었다.
이천구년 시월 십삼일
교포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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