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봄이 오는 길목에서 만난 미샤
    농장주변이야기 2017. 2. 23. 05:32



    하루 종일 비가 줄줄 내리는 날



    바느질할 천을 찾으러 동네 Thrift Store에 갔다.







    미샤!!


    맞지?


    옷매무시와 머리가 많이 흐트러져 있었지만 

    미샤 맞았다.


    한동안 못 봤네.


    어떻게 지냈어?  아들은 여전히 잘 있고?


    순간 미샤의 눈에 눈물이 번뜩 고여 툭 떨어졌다.



    '아들이 갔어. 그 애가 왜 해군 헬기를 몰았쟎야? 군에 가서 기술을 배우면 좋은 직업을 잡을 수 있다고 해군에 입대했었는데

    그게 애당초에 잘못 택한 길이었어. 아냐 해군에서 파일롯이 되었으니 괜챦았지, 서양의술은 절대 믿어서는 안되었는데 그만 세월을 많이 노쳤어

    마지막에 좋은 때라피스트를 만나고 마리화나가 그 애의 고통을 많이 줄여주어서 피아노도 치고 평화롭게 갔어. 그애가 에이즈에 걸린 줄은 본인도 몰랐지 뭐야

    어떻게 감염되었는지 아직도 미스테리야, 아무튼 이젠 고통이 없는 곳으로 갔어. 참 착한 아이였는데... 그 애가 피아노를 치면서 나를 쳐다보던 모습이 얼마나

    편해보이던지....'




    두서없이 줄줄 흘러나오는 내용에 나도 모르게

    어느 새 미샤를 꼬옥 포옹하고 있었네.





    나랑 미샤는 십년 전 쯤 


    어느 봄날

    동네 화원에서 만났다.


    Silver Bell Tree

    내가 묘목을  사는데


    아들네 집 뜰에 심어주겠다며 마지막 하나 남은 묘목을 사던 미샤


    이름이 참 예쁘네. 미샤, 스펠링이 어떻게 되는데?

    Micha.


    말도 차림새도 걸음걸이도 곱고 정갈한, 강한 인상을 주었다.

    아들이 사는 곳으로 멀리 동부에서 이사왔다고

    아들 이야기를 하고 또 했었다.



    그 후로

    동네의 이곳 저곳에서 마주칠 때는 잠깐씩이라도 안부를 묻고 반갑게 만나는 사이가 되었었다.




    그 어려운 말을 후루룩 뱉어낸 후에


    'Today is not my best hair day.'

    미샤가 헝클어진 자신의 머리로 화두를 돌리는 것에 그래도 안심이 되었다.


    '아들이 이미 이 지구 어딘가에 돌아와 있을지 누가 알아? 

    벌써 아홉달 된 아가로 어딘가에 자라나고 있을거야.'


    그럴 수도 있겠지. 맞장구쳤다.


    '그런데 너 그거 알아? 앞으로는 전쟁과 폭력이 없는 날이 올거야, 벌써 징조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쟎아, 5차원의 세계 속에 사는 사람들이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어, 5차원의 세계엔 죽음이 없어...................................'




    나는 잠자코 그녀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뒤죽박죽 혼동되는 건 나 였다.


    미샤는 한참동안 황야에서 외치는 선지자 같은 간절함과 때론 밝고 희망찬 얼굴로

    외치듯 말했다.



    다음엔 머리랑 옷매무시랑 좀 더 다듬고 나온 때에 만났으면 좋겠다는 미샤의 말에 

    그래도

    안심하고 한참을 깊게 포옹했다.


    가슴 한구석이 뻐개지게 저려왔다.









    또 만나.


    곱게 머리 빗고 정갈한 화장에 

    그 반듯한 걸음걸이와

    절제된 언어로 주위를 상큼하게 긴장시키는 

    예전의 미샤를 

    다음에 만날 땐 보고 싶다.



    봄날의 설레임을 가지고

    어린 묘목을 사러 나오는 그녀를

    동네 화원에서 다시 만났으면..




    이천 십칠년 이월 이십일 즈음


    교포아줌마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