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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친구 바바라
    농장주변이야기 2015. 11. 10. 18:12


    타미플루를 먹어 독감 바이러스를 없앤지도 한참인데

    증상은 계속되어 좀체 떨쳐지지가 않네.


    참 독하기도 하네.


    차츰 나아지면서

    바바라를 찾아가 봐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팔월 말에 아들 결혼식이 끝나면 구월 중에 한 번 올께.


    칠월 어느 날 바바라를 방문해서 그렇게 말했었다.



    그리곤 

    내 일에 열중 하느라 바바라는 항상 마음 한켠으로 미루면서


    하루 하루 지내다 보니 어느새 십일월


    이렇게 야속한 인간이네.


    아침부터 굳게 마음먹고 털고 일어나서 바바라를 찾아갔다.



    *  *  *


    바바라가 묵는 요양원은 참 깨끗하다.

    냄새가 없고 

    주민들이 거하는 방문은 항상 열려있어 간병인이나 의사, 간호원들이 수시로 

    주민들의 상태를 체크하고 돌본다.


    바닥은 리놀리움으로 되어

    넘어져도 안전하게 되어있고

    혹시 걷는 주민들의 경우 잡고 걸으라고

    통행로엔 어김없이 손을 짚는 레일이 설치되어있다.



    환자라고 안부르고 주민(resident)라고 부르는 이유는

    대부분이 노년에 장기간 살고 있고

    간혹 수술 후 재활하기 까지 머물고 있는 환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곳을 집 삼아 살고 있어서 그렇게 부른다.




    *   *   *


    바바라 방에 가니 룸메이트만 혼자  tv보고 있다.

    간호원이 바바라가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부터 식당에 가 있다고.



    삼발이를 짚고 걸어들어간 것이 벌써 일년되었는데

    이젠 휠체어에 앉아 있다.


    단정하게 머리 빗고 화장도 곱게 하고 tv 앞에 앉아

    몇십년 전 캐롤 버넷 쇼를 보고 있다.


    한 손에 커피를 들고.


    You Came! (왔네!)

    반가와한다. 환하게 웃으면서.


    얘는 내 친구야. 그리고 내 이웃이야. 그런데 얘는 이웃이라기 보다는 내 친구야.



    바바라는 우리 집 앞에 살았다.

    내가 빈들에 이사와서 라벤다를 심고 자라 향이 그녀의 집까지 바람에 날아갈 때

    나를 찾아왔었다.



    내 이름은 바바라야

    라벤다들이 되다니... 아주 좋아.







    이 섬에서 낳고 자라 이 동네 고등학교를 다니던 열여섯살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자마자 그 아가를 떼어서 누군가에게 입양시켜야했다고.


    그 후부터 

    일생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라벤다 밭에서 그렇게 자신의 아픔 가슴을 술술 풀어보였다.


    잠잠히 듣고만 있었더니


    Am I too sad for You?(네 친구가 되기엔 내가 너무 슬픈 사람이지?)


    그말에 나는 덜컥 체했다.


    아냐 사람은 누구라도 슬픈 일이 있어.

    이제부터 우리 친구해.


    고마와

    하지만 아가를 낳아서 얼굴만 보고 남에게 준 것 보다 더 슬픈 일은 없을거야.



    그렇게 바바라와 나는 친구가 되었다.


    그녀가 사십 중반이 되었을 때

    입양으로 포기했던 아들의 행방을 찾고

    그 아들이 한국에서 입양된 여인과 결혼해서 손녀를 가진 사실도 알아내고.

    몇년에 한번씩은 바바라를 찾아오는 이야기도 나중에 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림공부를 한 이야기며 

    같이 불장난을 한 남학생은 결혼해서 은행의 중역까지 지내고 편안히 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겨울에 사오십 마일의 강풍이 불기는 예사여서

    어쩌다 전기가 나갈 때는


    Hey, This is your Friend Barbara. Are You O.K.?

    하고 어김없이 전화를 해오던 바바라.



    혼자 사는 그녀가 둘이 사는 내게 안부를 물어주곤 했다.


    혼자 사는 두려움을 그렇게 이겨나갔다.




    당뇨를 앓는 바바라가

    약 먹는 걸 잊고 있다가

    당이 떨어져서 넘어지면서 허리를 다치고

    쓰러져있는 것을 옆집에 사는 로리가 발견


    병원으로 옮기고


    정기적인 투약과 돌보는 사람이 있는 환경으로 옮긴 것이

    작년의 일이다.




    *  *  *



    미안해 그동안 일이 많았어.

    궁색하게 변명하려다 얼른 그만 두었다.

    바바라한텐 그런 기만은 절대 할 수 없다.



    어때 점심 먹고 갈 수 있어?


    그럼. 오늘은 좀 오래있다 갈께.


    식당에는 크게 튼 tv 앞에서 조는지 자는지 하는 두 남자 노인이 휠체어에 앉아있었다.


    자리를 구석에 피아노 있는 곳으로 옮겼다.


    아 참 너 좋아하는 노래있으면 말해봐 내가 피아노 치게.


    Somewhere Over the Rainbow  칠 수 있어?

    바바라가 피아노곡에 따라 살살 따라 부른다.


    어쩐지 바바라가 알것 같아 beautiful dreamer 를 쳤더니

     또 살살 따라 부른다.


     닥쳐!

    갑자기 고함이 나서 보니 지팡이를 든 건각의 할머니가 우리를 향해 shut up 하고 소리친다.


    바바라가 눈을 꿈뻑하며 무시하란다.

    누구한테나 그런다고.


    그러고 보니 지나가는 사람들 한테 마다

    그녀는 닥쳐, 닥쳐를 인사처럼 해댄다.


    다시 피아노 치기.


     금발의 지니를 치니

    따라 부르며 돌아가신 엄마 이름이 지니여서 아버지가 즐겨 부르곤 했다고 웃는다.

     우리 엄마 머리색갈도 연한 갈색이었거든.


    그렇네.

    금발의 지니는 잘못된 번역이네.

    I dream of Jeannie with the light brown hair.


    어쨌거나 칠십이 내일 모레인 미국태생 바바라랑

    육십이 넘은 한국에서 낳고 자란 내가 같은 노래를 즐기고 있으니 참 기적이다.


    My wild Irish Rose 칠 수 있어?

    그건  첨 들어봐.

    한번 불러봐 

    멜로디를 들으면 칠수 있거든.


    부르는데 영 음정의 고저가 없이 두런두런 가사만 나온다.


    나중에 집에 가서 배워서 다음에 오면 칠께.


    그렇게 가만가만 조용한 둘만의 음악시간을 마쳤다.



    *  *  *


    식사시간이 되자 벽 한쪽이 좌악 열리면서

    부엌이 열렸다.

    쿠킹하는 냄새가 식당으로 풍기고

    주민들이 하나하나 식당으로 들어와 앉았다.

    대부분은 휠체어에 앉아서

    간혹 걸어서.




    내 친구가 점심먹고 갈 거라고 바바라가 미리 말을 해두어서

    바바라 옆에 내 자리도 마련되었다.



    헤이, 모모꼬 내 친구 아무개야.

    이웃이었는데 이웃이라기 보다는 내 친구야.


    모모꼬는 일본계 미국인 노인이다.


    혼자 중얼중얼. 또 중얼중얼


    머리에 무슨 스토리가 항상 돌아가고 있어.

    그래도 아주 나이스한 사람이야.


    바바라는 머리가 맑고 성격이 온순해서 

    모모꼬랑 그리고 걸어다니는 죠이랑 셋이서 함께 항상 밥을 같이 먹는다.

    셋 다 누구의 도움의 필요없이 혼자 식사를 할 수 있다.


    닥쳐!를 입에 달고 다니는 노인은 혼자 밥을 먹는다고.


    식탁에 앉아서 밥 오기를 기다리다 갑자기 모모꼬가

    휠체어를 몰고 자리를 뜬다.


    좀 도와줄래? 가서 모모꼬 좀 데려다 줘.


    모모꼬가 밥을 다 먹은 줄 알았다며 웃으면서 다시 자리에 와 앉았다.







    포크 커틀렛, 감자, 클램 챠우다, 샐러드가 오늘 점심 주 메뉴다.

    주민의 건강상태에 따라 당뇨병 있는 사람들을 위해 특별 쿠킹된 음식을 제공하고.


    모모꼬는 건강에 이상이 없어서 

    양도 많고 인공감미료를 치지 않은 치즈케잌을 디저트로 받아놓았다.



    제씨카

    내 친구가  샐러드랑 클램챠우더 시킨 것 알지?

    그런데 내 친구 한테 치즈 케잌도 하나 줄 수 있어?


    바바라는 서빙하는 스테프들에게 공손히 Thank You 라는 말을 어김없이  하곤했다.




    내 앞에 앉은 죠이는 치큰누들수프랑 딸기 아이스크림을 먹고.


    죠이도, 모모꼬도 나한테 아이스크림 뚜껑을 열어달라고 다투어 부탁을 했다.



    죠이는 참 건강해보이네.


    으응, 그런데 좀 이상한 건 매일 세끼 똑같은 치큰누들수프랑 아이스크림만 먹는다는 거야.

    그리고 옷도 항상 똑같은 것만 입고.


    죠이가 후딱 식사를 끝내고 훌쩍 자리를 뜨자 바바라가 소근소근 해준 말이다.





    디렉터가 내 그림들을 저렇게 액자에 넣어서 

    요양원 곳곳에 거는 중이야.


    그림들에 바바라 이름이 쓰여있다.


    내 방에 가 볼까?


    내가 만들어 간 커다란 라벤더 베개에 혹시 룸메이트가 알러지 반응을 하면 

    간호원한테 맡겨두었다가 

    둘째 언니 메리엘렌이 오면 주겠다고.






    헤이, 델핀, 여기는 내 친구 아무개야. 이웃인데 이웃이기 이전에 내 친구야.


    가만히 비닐봉투를 열어 라벤다 베개 귀퉁이를 꺼내놓는다.


    조금 후에 아 라벤다 냄새가 나네. 내가 좋아하는.


    델핀, 너 라벤다 좋아해?

    그럼 내가 제일 좋아하는 냄새야.


    휴우

    안도의 숨을 쉬면서

    내가 갖고 있어도 되겠어.


    환하게 웃으면서 베개를 침대위에 꺼내놓는다.



    너한테 주고 싶은게 있어.


    이건 챠콜로만 그린건데

    예전 우리 농장에 있던 낡은 barn이야.


    조오기 커다란 문에 작은 유리창이 있었는데

    나는 속에 들어가서 그 유리로 들어오는 빛을 즐기곤 했어.




    내가 대학에서 돌아오니 그 barn을 부셔 없애서 얼마나 서운했는지 몰라.

    그래서 이렇게 그림으로만 이라도 가지고 보곤 해.

    너 오려면 주려고 이렇게 카피해서 갖고 있었어.










    내 개를 기억해?

    바바라 침대 옆에 이젠 오래 전에 떠난 개의 사진이 놓여있다.


    참 똑똑하고 좋은 개였는데...



    성 프란시스는 동물한테 참 나이스하게 대해준 성인이야.

    성공회 교도인 바바라

    성프란시스 랑 잘랑잘랑 소리나는 벨을 보여준다.





                                              

    다음에 또 올께

    으응, 그런데 언제 온다고 말 안하고 오는 게 더 나아.


    생각 안하고 있다가 나타나면 아주 반갑거든.


    약속하면 그 시간이 오기까지 기다리는게 너무 힘들어.


    여윈 손목에 아주 작은 시계를 차고 있다.


    손을 잡고 작별을 했다.


    맑은 정신의 바바라의 시선을 뒤로 하고

    나는 집으로 향했다.











    *  *  *


                                                                                     단기 암기력을 시험하느라 

    바바라랑 했었던 대화와 

    만났던 사람들의 이름을 

    자세히 적어본 날.

    한마디 한마디

    다 기억하네.


    내 친구 

    바바라


    이웃이기 보다는

    친구인.





    이천십오년 

    십일월 팔일 


    교포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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