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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렇게 만났네
    다문화사회 2015. 8. 11. 09:49


    창가에 서서 비오는 바다를 바라보는데

    누가 문을 톡톡 두드리는 거야


    그래서 내려다보니

    히로가 손짓으로 내게 괜챦냐고 묻는거야.


    그렇게 안부를 물어주는게 어찌도 반갑던지.


    그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아침 산책을 가는 길에

    히로는 매일 내게 안부를 물어주었어.


    자연히 아침이 기다려지고

    밖에 나가 서로 안부를 묻기도하고

    산책도 같이 하고

    밥도 같이 먹고


    어느 날 내가 저 바닷가에 세워진 전봇대가 보기 싫다고 했더니

    자신의 농장에서 커다란 대나무들을 파다가

    저기에 심어주었어.

    그게 저렇게 대나무숲을 이루었지 뭐야.


    그렇게 지내다보니

    같이 살게 되고

    결혼하고 싶게 되었다고.







    저 큰 창문으로 내어다보이는 곳 위쪽 구부러진 소나무가 있는 곳이

    히로의 전 부인 아나니아의 가든이고


    그 아래 창문 가까운 쪽 석탑이 있는 곳은 탐의 가든이야.


    히로가 우리 둘의 죽은 배우자들을 기념해서 만든 가든인데

    우리는 저 가든들의 나무들을 가꾸면서

    각자  죽은 배우자들을 그리워하곤 해.


    그리고 서로 그 그리워하는 마음을 인정하고 그 공간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해줘.


    아나니아랑 탐이랑 이렇게 우리의 삶에 함께 하고 있어.







    탐은 급성심장마비로 그렇게 홀연히 어처구니 없이 떠났다고 했다.


    아나니아는 몬타나 글레이셔 파크의 그 아름다운 아발란취 레이크에서 

    히로가 그녀를 향해 셧터를 누르는 순간 뒤로 넘어져 호수에 빠져 극적인 이별을 했다고.







    아 아발란치 레이크 

    우리도 기억해냈다.


    그 아름다운 호숫가에서 

    자신의 떠나갈 자리를 택한 것일까?


    많은 발길들이 끊이지 않는 곳이니

    아냐니아가 그곳에서 외롭지는 않을거야.


    히로는 아직도 아내의 죽음에 애석해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죽음을 정당화하려 애쓰는게 보인다.




    탐은 세일러였어

    세일 보트에 거의 미치다시피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이렇게 바다가 보이는 곳에 집을 얻고 좋아했었는데.


    막상 일을 당하고 보니 내가 정말  혼자이더라고.






    히로와 쑤우는 그렇게 

    서로의 상실을 달래고 달래주다가

    같이 산다.


    쑤우네 집의 벽난로 앞에서

    양가의 장성한 자녀와 그들의 가족 손주들을 데리고


    젊지 않은 나이에 단촐한 결혼식을 올렸다고.



    나이든 

    그래서 모두 결혼한 자식들은 한결같이 

    두사람의 만남을 축하하고 응원했다고.


    둘 다

    사랑이란 말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서로를 돌본다고 했다.



    우리 나이쯤에선

     사랑이란 서로를 보살피고 돌봐주는 것이란 거 맞겠다.







    이건 아나니아와 히로네 농장에서 가져온 불상이야.

    표정이 참 평온하지.


    아침마다 차를 마시면서 이 창문을 통해 저 표정을 보는데

    정말 좋아.


    너그럽고 편안하고.


    이 페인팅은 탐이 좋아하던 그림이야.

    탐은 언제나 노도가 이는 파도를 좋아했어.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어.

    아주 화끈한 남성.






    쑤우랑 히로는 

    우리 섬의 작은 포구를 낀 동네의 이웃하는 사이로 살았다.



    너른 농장을 가졌던 히로는 

    결혼 후 농장을 팔고 쑤우네 해안가 집으로 이사 들어왔다고.


    그리고

    둘이서 상의해서 

    그린 하우스는 티 하우스로 만들고

    정원의 나무들은 히로의 손에 차츰 변해 십년이 지나

    멋진 일본식 가든이 되었다.


    관음보살이며 부처가 일곱 여덟개나 앉아있는데

    다들 표정이 편안하고 부드럽다.


    누가 불교신자냐 물으니

    종교랑 관계없이 불상의 이미지가 마음에 들어 설치해놓은 것이라고.



    히로를 배려하는 마음에서인지

    집 안팎에 

     흡사 일본에 있는 집이나 정원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일본풍으로 꾸며져 있다.


    그러면서도 쑤우는


    이건 우리 고조 할머니가 쓰시던 흔들의자인데

    앉을 수는 없어.

    아마 그 시대 사람들은 이렇게 작았나봐

    어쩜 이렇게 작은 의자일까.


    이건 내 남동생이 그린 수채화야

    어릴 때 자란 고향집의 숲을 그린거야.


    아주 화려한 색으로 밝게 숲을 표현한 그림도 보여주고.








    두 사람이 서로의 과거를 위한 공간을 허용하고

    다른 점을 배려하면서 공존하는 집


    쑤우가 보여주는 자그마한 집의 구석구석에서

    그걸 느낄 수 있었다.




    그 해 그 겨울

    탐이 가고 난 후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의미가 없었을 때

    만난 히로.


    나는 아냐니아를 잃고난  조금 후라

    쑤우가 얼마나 힘들까를 알 수 있었거든.



    이십대에 유학생으로 일본을 떠나 온 후

    나는 언제나 꼭 내 처지에 꼭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곤 했어.


    그리고 그 사람들은 내게 더할 수 없이 고마운 은인들이야.


    all are so nice people, you know.



     그런데 히로 너 그거 알아?

    네가 나이스했기에 네 주위를 다 나이스하게 만드는 거야.


    남편이 확신한다는 듯 히로에게 말했다.


     맞아, 히로는 참 착한 사람이야. 나는 참 행운으로 느껴.


    쑤우도 맞밭았다.









    은대구를 미소쏘스에 절였다 굽고

    미역두부미소국을 끓이고

    오이 샐러드에

    우엉졸임을 내놓은 저녁상.



    디저트로 나온 블루베리랑 바닐라 아이스크림 호박케이크를 먹으면서

    이 일본인 히로를 만난 것이

    참 기뻤다.

    그리고 그의 일본인 뿌리를 수용하고 같이 즐기는 

    그의 아내 쑤우 덕분에


    우리의 만남은 아마도 편하게 동양적인 분위기가 될 것이다


    초대받아서

    오랜만에 편하게 맛.있.게.

    먹은 저녁이었다.





    이천십오년 팔월 구일

    히로랑 쑤우네 집에 다녀와서

    하늘을 보다.



    교포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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