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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 아이 울음-생의 축가
    다문화사회 2006. 8. 8. 23:08

    죤 제프리 블랙 페더는 아메리칸 인디언입니다. 

    이 북아메리카에 살던 500국가 중 하나인 
    오카니치 국(부족)의 후예입니다. 

    그는 넓은 얼굴에 광대뼈가 나오고
    곱슬이지만 검은 머리에 검은눈을 갖고 있어요. 
    네이티브 아메리칸(미국에서 인디언들을 부르는 명칭) 의 바탕에 
    백인, 흑인의 피가 배어든 흔적이 그대로 그의 모습에 나타납니다. 

    내가 사는 작은 중소도시의 옆에 있는, 
    영화의 세팅장으로 쓸 만큼 전형적인 미국의 작은 마을에 사는 그는 
    십몇년 째 그 동네를 근거로 오카니치 국가(부족)의 후예임을 
    법으로 인정받는 외로운 투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 지역 대학들의 학자들이 그의 뒤에 진을 치고 응원을 하고 있어서 
    이 법정투쟁의 결과가 꼭 나쁘지만도 않으리란 
    막연한 낙관도 가지고 있었지요. 

    그의 부족이 오카니찌 부족의 정통성을 인정 받게 되면 
    주의회에 의석도 하나 차지하게 되고 
    지방 행정에 작으나마 정치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저 봉우리는 원래 
    우리 부족이 기우제를 올리고 조상의 혼을 모셔놓은 성스런 곳인데 
    백인들이 저기다 기상 관측대를 지어 훼손시켰지. 
    신성한 산의 맥을 끊어 정기를 없앴어.' 

    원래 아무리 돌아보아도 구르는 언덕들만 있고 산은 없는 이 지방에서 
    그 중 제일 높은 언덕을 가리키며 죤 블랙페더는 자주 회한에 차곤 합니다. 

    * * * 

    몇년 전에 죤이 사는 동네 다운타운에 
    옛날 오카니치 부족의 유적지를 '오카니찌 마을' 문화재 로 지정하는 축제(Pow Wow)가 열렸어요. 

    반마일 남짓한 반경의 작고 아담한 숲과 개울로 둘러 쌓인 땅을 축복하러 
    전 미국에 사는 잔존하는 네이티브 어메리칸 지도자들이 많이 모였지요.
    멀리서는 멕시코나 남미로 부터 온 사람들도 있었구요. 

    평소에 청바지에 티셔츠를 즐겨입고 농담도 잘하는 사람좋은 
    내 친구 죤 블랙페더가 
    그날은 오카니치 부족장의 화려한 옷과 독수리 날개로 만든 관을 쓰고 
    제주가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새벽 공기 속에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둘러 섰어요. 
    그리고 새로 문화재로 지정된 그 땅을 깨끗이 하고(purify) 축복하는 
    의식이 시작되었어요. 

    제일 먼저, 푸른 눈이지만 네이티브 어메리칸의 피가 섞인걸 알 수 있는 
    중년의 여인이 땅에 쑥연기를 풍기며 구석구석 돌아다닙니다.
    쑥타는 향기가 땅에 자욱이 퍼집니다. 

    이어 죤 제프리 블랙페더는 
    자신의 아내를 포함한 네명의 여인들에게 
    각각 성스러운 풀들을 나누어 주었어요. 
    쑥(sage), 담배(tobacco), 향나무(cedar) 
    그리고 Sweet Grass( 불 붙이면 하르르 타며 향기를 뿜는 풀)들의 
    연기를 품으며 네 여인은 동서남북의 방향으로 나뉘어 걷습니다. 


    기도문을 연기편에 하늘에 올리는 것입니다. 
    파아란 연기와 각 풀들이 뿜는 향기가 진동하는 가운데, 
    제주는 땅을, 하늘을,비를, 바람을, 나무를, 풀을, 
    새를, 기는 짐승을, 물고기를, 
    남자를, 여자를, 어른을, 아이들을, 노인들을 축복하는 
    기도문을 외웁니다. 

    사람과 동물, 식물간에 우열없이 
    모두를 동등하게 어우러져 사는 생물들로 축복합니다. 

    봄날의 이른 아침 안개도 아직 덜 걷힌 땅위에서 이루어지는 
    제에 모두들 숙연합니다. 



    갑자기 
    구경꾼들 틈에서 느닷없이 으앙 한살배기 쯤의 어린아이가 
    자지러지게 울어댑니다. 

    마이크도 없이 육성만인 죤의 기도문이 
    아이울음 소리에 눌려 잘 안들립니다. 
    울음소리가 계속 되고 기도문이 귀에 잘 안들어 오기 시작하려는데 

    '아, 아가들이여. 울어라, 울어라, 
    어린아이의 울음보다 더 생기 찬 생명의 노래가 
    어디있는가. 귀여운 아가야 울어라, 
    너의 힘찬 울음은 건강한 소년, 용기있는 젊은이를 예견하게 하는구나, 
    여자들이여, 어머니들이여, 
    아기들의 울음에 답하는 그대들에 축복이 있을지니...' 


    자칫, 제를 망칠 뻔한 아기 울음이 
    일순간에 힘찬 축제의 나팔소리로 들리더군요. 

    지혜로운, 
    모든 것을 품을 줄 아는 지도자가 행한 기적이었지요. 

    땅을 축복하는 축제는 하루 종일 걸렸습니다. 


    커다란 북을 여러 사람의 젊은 이가 함께 두드리며 부르는 노래( 한국의 창과 같은 창법)에 맞추어 우리는 두 발로 땅을 밟는 춤을 하루종일 추고 또 추었습니다. 발끝으로 추는 서양의 발레와 달리, 축제에 온 사람들 모두가 발뒤축을 시작으로 하여 온 발바닥으로 땅을 비벼대는 춤은 우리를 먹여살리는, 
    모든 생명의 어머니인 땅을 발로 마싸아지 해 위로해 주는 동작이라 합니다.



    * * * 

    올해 이월에 
    죤과 그의 구십에 가까운 아버지는 드디어 다른 부족들과 함께 
    오카니치 족으로 주에서 인정받았습니다. 

    족장제는 없고 이년 만에 한번씩 선거를 통해서 부족회의 의장을 뽑는데 
    지금은 죤이 그 직을 맡고 있습니다. 


    구십이 가까운 죤의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이제까지 사람들이 
    '너는 누구냐(What are you?) 하고 물으면 
    '사람(Human being)이라고 대답했었다구요. 

    이제부턴 
    '나는 오카니치 부족의 사람이다. 그런데 역시 사람이다.' 라고 
    대답한답니다. 

    * * * 

    죤의 오카니치 부족의 이름은 블랙 페더(Black Feather) 검은 깃털이고 

    팬케익을 잘굽고 
    마을에서 교사노릇을 오래 하고 은퇴한 그의 아름다운 부인 르넷의 이름은 
    윈드플라워(Windflower)입니다. 
    윈드플라워(바람꽃)은 나비를 말한다며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아주 사랑합니다. 

    그들의 어린 손주 이름은 작은 곰(Little Bear)이구요. 



    다양한 친구들로 삶이 풍성하고 사람임이 감사한 

    교포아줌마 올림 


    *2002년 9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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