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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와인과의 만남
    농장주변이야기 2006. 8. 8. 23:00

    좋은 와인과의 만남    2008/05/29 00:19 추천 2      1
     
    http://blog.chosun.com/gyoa/3039224 주소복사 트위터로 글 내보내기 페이스북으로 글 내보내기
     
    피뇨 노아(Pinot Noir)의 산지 오레곤 맥민빌 옆의 던디의 작은 레스토랑에서 우리는 지미와 마주 앉았다.

    첫 눈에 그는 마음 좋은 씨름꾼 같아 보였다. 
    육척 거구에 스틸 토 작업구두를 신고 흙냄새를 물씬 풍기는 모습이었다.


    아틀란틱 먼슬리 매거진에 이 고장의 맛좋은 피뇨 노아 포도주와 함께 
    떠오르는 젊은 와인 메이커로 소개된 그에 대한 기사를 읽고 연락을 하니 그는 쾌히 우릴 만나주었다.

    지미 브뤀스 (Jimi Brooks )
    피뇨 노아의 명인이고 천연농(biodynamic farming)의 신봉자라고 거창하게 소개되었지만
    그는 한마디로 소박하게 영세농을 믿는 사람이었다.
    작은 땅을 가지고 푸른 채소를 길러 먹고 남는 건 겨울을 위해 말리고 조리고 병이며 깡통에 저장하고
    한 구석에 과일 나무들 심어 단 과일을 즐기고 남으면 술 담가서 농한기에 이웃과 나눠 마시고
    소 길러서 거름도 얻고 친구 삼아 같이 살아가고….

    너무 많이 수확하려는 욕심에서 땅을 망치지요.

    거름으로 식물, 소, 말, 닭의 분뇨에만 의지하는 천연농은 우리의 옛 영농의 실?그 자체다.

    살충제보다는 벌레들과 대충 나눠 먹으며 나비도 보고 벌레소리도 즐기는 것이
    더 낫다고 지미는 환하게 웃으며 기염을 토했다.

    농부의 특권은 일과 여가(leisure)를 함께 섞는데 있지요.
    놀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놀고요.
    물질의 많고 많음에 관계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삶이지요.

    삼십대말의 젊은이 답지 않게 그는 느긋함 그 자체로 전혀 서둘러 본 적이 없는 사람 같았다.

    곧 작은 농장을 하나 구입하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일곱살난 아들 빠스칼에게 생일 선물로 송아지를 하나 사 주었거든요.
    같이 자라면서 아주 좋은 친구가 될 거에요. 지금은 친구네 농장에다 놓고 키우고 있는데 아주 성질도 순하고 분홍색 털을 가진 잘 생긴 암송아지에요. 

    지미는 홀몬제나 항생제에 시달리면서 과잉 생산에 동원되는 소들의 수명이 평균 사오년인데 비해 천연의 삶을 사는
    소들은 길게는 삼십년 까지 살 수 있다고 했다.

    와인은요. 음식하고 어울릴 때 제 맛을 더하지요. 

    당연히 그는 빠리의 요리학교에서 수업한 일가견을 가진 요리사이기도 했다.
    피뇨 노아는 해산물하고 잘 맞아요.
    스시랑 아주 단짝인걸요.
    한국의 해물 전골하고 한 번 곁들여 보세요. 기가 막히지요.

    전 세계 음식을 두루 애정을 갖고 꿰는 그의 태도에서 거침없는 열린 마음을 엿보았다.

    좋은 와인이란 것이 딱이 정해진 것이 아니지요.
    언제 어디서 누구랑 어떤 분위기에서 마셨는가가 와인의 향과 맛을 결정하는 데 큰 요소가 되거든요.
    빠스칼 엄마를 처음 만나 데이트 하던 날 마신 폴란드 와인 맛이 기가 막힐 정도로 멋졌는데 근래에 똑같은 와인을 마셨더니 영 아니올시다더군요.


    아들을 하나 낳고 훌쩍 떠난 그의 아내와 마신 와인 이야기에서 나는 
    그가 싱글 대디로 땅과 일과 아들에 사랑을 쏟고 사는 것을 알았다.

    파스칼한테 스트레스 없이 조금 먹고 몸으로 일하면서 느긋이 사는 삶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참 다행스러워요. 지금부터 포도주 만드는 곳곳에 데리고 다니면서 어깨 넘어로 배우게 하고 있거든요.
    아마 내 나이때 쯤 되면 이 아빠보다 훨씬 맛있는 포도주를 만들 수 있을거에요.

    어릴 적 아버지없이 조부모 밑에서 컸다는 그는 자신의 몫까지 배로 하여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하는 빛이 역력했다.

    왜 천연농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그의 질문에 
    적당한 육체노동과 먹는 것을 스스로 기르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천연농부가 되기 위해서 어떤 생활 태도를 갖고 있지요?

    주어진 환경 그대로 하루를 살지요.

    나는 정말 그런 생활 태도를 갖고 있는지 자신도 알 수 없는 채로 정답인 것 같아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바로 그거에요.
    환경을 바꾸려고 하지말고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기본이지요.
    천천히 살면 참 세상이 좋고 편해지지요.

    자연 이야기가 슬로우 푸드로 넘어갔고 우리의 간장, 된장을 메주 쑤어 만드는 법, 김장독 묻기, 식혜 담그는 일을 그는 경청했다.

    우리가 점심을 먹은 오레곤 던디(Dundee) 의 작은 레스토랑 던디 비스트로는 와인 명소의 식당답게 야생에서 채취한 버섯같은 재료하며 음식 맛이 일품이었다.

    그 자리에서 지미는 우리가 천연농을 위한 땅과 재배작물 그리고 땅에 맞는 포도 종류를 고르는 것을 도와주기로 약속한 후 우리가
    읽어야 할 책자며 정보들을 몇 차례에 걸쳐 성실하게 친절하게 전해주었었다.


    언제 우리의 서툰 농가에 들르면 김치찌게를 대접한다고 나는 약속을 했었고.
    지미는 내게 향기로운 아이스 와인 만드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약속했었다.


    그리고 가을이 시작하는 어느 날 그는 돌연히 심장마비로 이 세상을 떠났다.

    서른 여덟 짧은 인생을 그는 천천히 살다 갔다.
    자신의 단명을 알기에 그는 소걸음으로 그리 천천히 매 걸음을 즐기며 살다 간 것일까?

    그가 떠난 자리에는 그의 향기로운 와인들과
    아직 제 자리를 찾지 못한 분홍색 어린 암송아지와 그의 어린 아들 파스칼이 남아있다.

    그의 죽음을 알리는 인터넷 뉴스지에
    평소의 넉넉하고 순한 웃음을 날리는 그의 모습과 함께 그의 돌연한 퇴장을 아쉬워하는 천연농 이웃들과 와인 메이커, 애호가들의 안타까운 애도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커뮤니티에서 지미의 어린 아들 파스칼을 위한 모금을 한다는 기사와 함께.



    천연농의 단순하고 여유로운 삶을 가르쳐준 사람 좋던 지미를 그리며
    교포아줌마 올림


    노트: 지미가 남긴 와인들은 그의 죽음으로 전설적인 와인들이 되어가고 있고 
    Runaway Red는 Brooks Winery의 대표적인 와인 중 하나입니다. 
    2004년 9월 초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 세상에 맛보인 스윝 와인 2003 Brooks Riesling은
    세계 와인 애호가들이 더욱 그의 요절을 애도하게 합니다.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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