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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지개가 뜨는 들
    농장주변이야기 2005. 8. 8. 22:54
    들판엔 바람이 거세게 분다.
    지난 겨울은 온통 바람에 시달려 
    너른 들에 아랫목이랑 아궁이터를 고른 걸 참 많이 후회했다.

    밤이면 승냥이들이 어렵게 잡은 토끼로 주린 배를 채우느라 
    밤새 캥캥 울부짖으며 싸우고 
    들쥐 사냥하는 부엉이들의 쉬리릭하는 금속성 소리까지 곁들여
    잠 못드는 밤이 많았다.

    봄이되어 갖가지 철새들이 날아 와 집처마 밑에다 근처의 나무들에다 둥지를 틀고 
    알을 품더니 요즘엔 어린 날개의 쥬니어 새들이 새 날개로 서툰 비행을 익히느라 어미 애비들의 흥분된 응원 소리에 세발 자전거 타듯 뒤뚱뒤뚱 날개짓을 하느라 하늘이 온통 유치원 운동장이다.

    흰머리 독수리들은 강아지만한 토끼를 채서 하늘 높이 올라가서는 툭 떨어뜨려 
    숨을 죽인 다음 쏜살같이 내려와 다시 들고 유유히 날아간다.

    잎이 빽빽한 큰 나무에 가마귀가 큰 무리를 지어사는데 
    독수리 하나 떴다하면 들판의 부모 가마귀들이 일시에 불안한 날개짓으로 둥지로 돌아가서 온통 나무를 둘러싸고 긴박하게 깍깍 짖으며 새끼들을 보호한다.

    여러마리가 협공하여 독수리를 쫓아보내는 아슬아슬한 공중전이 심심챦게 벌어지곤 한다.

    가끔은 
    독수리가 입에 가마귀 새끼를 물고 서둘러 
    새끼가 있는 제 둥지로 돌아가는 것도 본다.

    들은 하늘이 넓다

    동서남북으로 트인 넓은 하늘에서 별들이 운행하고 
    해와 달이 지고 뜨는 게 선명하다.

    빛을 몰고오는 아침 해의 경건한 시작과
    빛을 닫는 저녁엔 서녘 하늘 마지막 한 가닥 빛까지 미련으로 붉히는 노을 

    들판엔
    비도 길게 선을 그으며 내린다.

    올 봄엔 비가 잦고 무지개가 심심치 않게 떠서 기쁘더니
    며칠 전 저녁 무렵 
    내 생전 그런 거대한 무지개는 처음 봤다.

    동남쪽으로 겹 무지개가 완전한 아아치 형으로 섰다.

    무지개 끝엔 금항아리가 있다는데
    데이나네 집이랑 저 건너 쌤네 목장에
    양끝을 땅에 선명히 뿌리 박은 
    무지개가 둘 섰다.

    거의 한시간 동안 
    비온 후 신선한 저녁 들위에 넉넉하게 걸쳐졌던 
    겹 무지개를 보면서

    아름다움에
    경외감에 전율했다.

    지리산 장터목 이른 아침 
    갈잎들 위에 맺혔던 왕이슬 방울들의 눈부신 반짝임

    세석 평전의 짙은 새벽 안개를 붉게 물들이던 끝없는 철쭉밭

    여름 밤하늘에 명멸하는 별빛

    큰 몸으로 희게 부서지는 싱그러운 여름날의 폭포

    태고의 빙하 밑으로 깊게 언 호수의 파아람과 함께 

    나의 보석함에 또 하나 영롱하게 간직될 진귀한 보석이다. 

    오늘은
    저근 덧 사는 인생 길에
    어찌어찌하다가 이 땅을 거쳐가게 되어
    무지개가 찬연히 서는 빈 들에서 짐을 풀게 되길 잘 했다
    생각한다. 


    라아벤다 들 위에 걸린 겹무지개 June 2005 교포아줌마

    2005년 6월
    교포아줌마 올림
     

    Copyright(c) 2005 교포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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