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가 불교신자가 되는데는 넘어가야 할 장애가 많은 것 같다.
우리 동네에 있는 절에 로스앤젤리스에서 온 흑인여자중(크리스 말로는 the black female monk from L.A.)이 떠나고 새로 티베트에서 아주 중요한 라마가 상주하기로 했다고 한다.
절에서 주는 모찌와 녹차를 즐기며 불교에 입문해보려고 노력한지 어언 이년째의 크리스
그녀 자신만의 오감으로 느껴 날라다 주는 절 소식이 차 마시는 중간중간 조금씩 베어 먹는 생강과자 처럼 재밌고 맛있다.
새로 온 티베트의 라마는 아주 높아서 사람들의 허리가 구십도 각도 밑으로 구부러지더라고.
한시간 강론을 하는데 무슨 말인지 영 감도 안잡히고 산만하더라고. 도대체 남의 시간을 그렇게 쓸거면 미리 프린트 물이라도 줘야하는 것 아니냐고 투덜댄다.
원고가 있는 것 같지도 않고 그냥 입에서 나오는대로 아무말이나 종횡무진 주제가 정해져 있지도 않더라고.
그대로 잘 전해주는지 모르겠는데 일본의 절에서 오래 머문 백인 중이 해석을 했다고.
'몇번이나 반복되어 외울 지경에 다른 말은 이 아름다운 자연속에 사는 여러분은 복된 사람들입니다. 아주 선택된 사람들입니다. 결코 불평, 불만을 하면 안됩니다.'
어딘가 빈 곳을 채워보려고 깨달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향해 이래라 저래라로 일관하는 것에 실망했다고.
크리스는 겉모습으로 그 스님들과 닮은 내게 토로하면 뭔가 자신이 노친 것을 다시 주워주고 더 가깝게 이해하기 쉬운 해석을 얻을 수 있을까하는 헛된 기대를 가지고 있다.
칵칵칵 세게 웃고 야, 설법이 뭐 학술 심포지엄이냐. 핫핫핫 강연할 프린트물 먼저 나눠주는게 어딨어? 그리고 그 설법을 네 그릇 된 만큼 담고 받아들일 수 있는 거니까 못알아듣는 건 전격 네 책임이라고 해. 담을 그릇을 만들고 크기를 깊고 넓게하는 게 스스로 해야 할 네 몫의 정진이라던 걸...
그래도 말 할 내용이나 주제 정도는 알아야 사전에 마음 준비를 하고 가는 것 아냐 시간 낭비도 막고.
크리스는 실질주의자고 철저한 준비파다.
근데 너 그 스님들 부르는 명칭들이 좀 그래...
그녀는 스님을 중(monk) 그 위의 스님을 큰 중 (big monk) 그보다 위의 스님을 좀 더 큰 중 (bigger monk) 그리고 라마는 아주 큰 중(the biggest monk) 이라고 싸이즈로 구분해 부른다.
뭐라고 불러야하지? 그녀의 눈가의 장난기흐르는 웃음을 보면서 중들간의 위계질서에 그녀가 얼마나 알레르기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있는지 나는 감지한다.
중(monk)보다 가르침을 주니 스승(teacher)이라고 부르고 계급이 높아짐에 따라 great teacher, greatest teacher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데.
부다의 가르침을 전해들으려고 하는데 왜 중간에 전하는 사람들을 거의 신격으로 모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어떤 종교든지 사람을 모시고, 숭배하기 시작하면 가짜로 느끼거든.
그녀는 STUPID라는 말을 쓰며 이 부분을 되게 불쾌해한다.
젊은 날 지구의 곳곳을 살아보아서 인류전반에 대해 평평한 눈을 가지고 각 문화에 대해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진 옥스포드 출신의, 과학자로 대학 강단에 오래 선 육십을 갓넘은 크리스
해마다 다문화 행사로 남미,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의 민속음악가들을 초대해서 음악회를 열고 그들을 위해 자신의 집을 열어 숙식을 제공하고 온갖 궂은 일을 마다 않는 크리스
지난 번에도 캐쓸린네서 잡은 소 여섯마리의 머리를 얻어서 자신의 트럭에 싣고 로헬리오네 동네 멕시칸 이주 노동자 집단 마을에 실어다 주고 며칠후 소머리 타코(HEAD TACO) 파티에 초대되어 그들과 하나되어 신나게 먹고 춤추고 온 크리스.
콩가루를 입히고 팥앙금을 넣은 인절미는 입에 달고 녹차는 머리를 맑게 해주고 대나무랑 단풍들과 맑은 연못으로 마음을 달래주는 절 마당에 끌려 불교 신자가 되어보려고 하는데........
미국인으로 살아서 언제나 걸리는 건 바로 이 위계란 거야. 누가 누구위에 군림하거나 누가 누구밑에서 굽신거리면 펄떡 인권유린이 생각나거든.
그리곤 아무리 멋진 가름침이라도 다 BULLSHIT(소똥, 개소리, 거짓)이 되 버리는거야.
* * *
마터호른으로 오르는 골짜기 마을 절맡(ZERMATT)에는 이제까지 그 봉우리에 오른 사람들의 역사적인 사진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있다.
벽 하나를 다 차지한 옛날 사진 앞에서 두 젊은이가 씩씩댄다.
지는 다리가 없나 이걸 뭘 올라갔다고 치냐 뷩신덜.
네사람이 나무의자를 등에 지고 그 가마 의자에 떡하니 올라앉아 등정한 귀족의 사진을 앞에 놓고 흉보는 중이다.
늬들 미국에서 왔지? 물으니 시카고에서 온 젊은이들이란다.
아들 나이또래의 그 젊은이들과 나는 즉석에서 하이 파이브를 했었다.
* * * 일년 만에 다시 서울에서 낸시를 만났다.
사오년째 한국 회사와 기술 협력을 한 미국회사의 현지 엔지니어로 나와있는 남편 죤과 함께 서울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죤이 내게 물어보고 해석을 구했다는 이야기인 즉,
회사의 회장이 만날 때 마다 자기네 집에 한번 초대하겠다는 말을 수없이 해왔는데 한번도 초대된 적은 없다고.
이번에 미국에서 새로 온 여자 직원은 오는 날로 회장네 집에 초대되어 저녁을 먹고 왔다는 말을 들었다고.
낸시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역력하다.
내가 물었다.
그날로 초대받은 여자직원의 직위가 높으냐고.
경영진의 높은 보쓰라고 했다.
격을 맞춤 (MATCHING)이라는 말로 설명해줬다.
초대하고 초대받는 것도 그에 걸맞는 격과 지위에 맞춰 하는게 이곳 문화라고.
그러면 왜 맨날 초대한다고 립서비스는 하냐? 낸시는 전혀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이다.
나도 이해는 안되는데 초대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정도로 받아들이면 돼.
크리스마스 파티나 여름날의 바비큐 파티에 주최히는 집에 온 부서 직원이 사장에서 부터 임시 고용한 학생 인턴과 그들의 가족까지 다 초대되어 자유롭게 어울려 노는 미국 회사의 분위기에 익숙한 낸시랑 죤에게는 참 이상한 일로 풀기 힘든 문제이리라. * * *
크리스는 한동안은 절에 드나들 것 같다.
떡이랑 녹차를 따라주는 잔이랑 일본식 정원에 끌려서...
우리 어릴 적 싼타클로스가 주는 선물에 끌려 교회에 갔듯...
미국 교회의 목사가 자신을 성을 뗀 이름으로 부르라고 했을때 JiM이라고 자연스레 부르게 되기 까지 내게 얼마나 오랜 세월이 필요했던가?!
이천구년 십이월 구일
교포아줌마
노트: 몇년 전에 조선블로그에 올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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