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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 가자미 식해 만들기얼치기 음식 2020. 1. 17. 01:49
손녀가 한달간 머물고 간 자리는
텅 비고 허전하다.
아들네가 동부에서 서부로 이사하는 덕분에
마음껏 누린 우리 부부의
즐거운 호강 이었네
눈깔 사탕 처럼 아끼며
매일 매일
달고 단 시간을 보냈다.
이제 마악 생각하는 말문이 터진 손녀의
끊일 줄 모르는
why? why? why? 에
또박또박 천천히 미스터 로져스 처럼 답해주고
천천히 움직이며 아이를 기다려주고.
우리 애들 어릴 적에도
이런 인내심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는 건
참 복이다.
무한정의 너그러움과 품는 마음을
경험할 수 있어서.
둘이서
오랜 만에 서로의 등을 두드리며
허리를 편다.
날이 춥.다.
그 동안
주 중엔 하루 여덟시간 꼬박
전화로 인터넷으로 일한
며느리 입맛도 챙기느라 우리 부부 입맛은
뒷전으로 미루었다.
밀가루, 치즈를 많이 먹는
며느리네^^ 식구가 떠나고 난 후
한 달 전 담가서 저온 냉장고에서 익힌
가재미 식해를 꺼내니
남편이 반.가.와.라. 한다.
* * *
가재미 식해는
결혼하고 시집가서 처음 먹어 본 음식이다.
함흥이 고향이신
시 외할머님이 만드시던 함경도 가재미 식해를
어깨 너머로 보곤 했다.
맵고 냄새가 강한 음식이라
쉽게 젓가락이 가지 않았는데
어느 덧 내가 대를 이어
그것도 미국 땅에서 만들고 있네.
남편이 소기의 과정을 마치고 진로를 고민할 무렵
매사추세츠의 작은 어촌 글라우스터(Gloucester)에
클램 챠우더를 먹으러 가곤 했다.
거기서 그물에 걸린 작은 가재미들을 만나서
처음 담가 본 가재미 식해.
어림짐작으로 만들어 봤는데
얼추 흉내는 냈었다.
그걸 먹으며
가자미 식해가 있으면 미국도 살만하다' 라던 남편.
그렇게 시작한 미국에서 함경도 가재미 식해 담그기.
* * *
시 외할머님은 가재미 종류를 많이도 아셨다.
참가자미, 돌가자미, 물가자미...
작은 참가자미들로 만들어야 한다'
어느 땐 추운 겨울 바람에 장독대에서 꾸덕꾸덕 얼었다 녹았다 하며
말린 것들로 만드시고
어떤 땐 생 가자미 들로 만들기도 하셨다.
어린 가자미 들로 만들어야 뼈가 쉬이 무르고 삭아
뼈 째 먹어야 맛이 난다고.
속초 항도 아니고
어린 가자미들이 어디 있나?
궁할 땐 중간치 냉동 가자미 들로 담근 적도 있다.
손가락 굵기 만큼 자른 가자미를
마늘, 생강을 듬뿍 넣어 버무려 찬 곳(냉장고)에 일주일 쯤 두었다가
손으로 으깨보면 가재미 살이 부드럽게 부서진다.
무는 단단하고 단 걸로 골라
굵게 채쳐서
바람에 하루 이틀 말리거나
소금에 절여 물기를 짜서 마련한다.
가재미, 고추가루, 소금을 넣어 버무리고
좁쌀 밥을 포슬포슬하게 지어
함께 버무린다.
좁쌀은 삭는 (발효하는) 과정에서 단 맛을 더하고
물기를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고.
익었을 때 물기가 너무 질척 할라치면
할머니는 조밥을 되게 지어서 더 넣곤 하셨다.
빨리 익히려면
파를 송송 썰어 넣어 같이 버무리기 도 하는데
저온 에서 오래 익힐 수록 깊은 맛이 나기에
나는 생략한다.
이젠 제법 만들 때 마다
맛이 그럴 듯하게 나오는 게 신통하다.
꼭 정확한 조리법이 있는 게 아니고
그렁저렁 버무리면 제 맛이 나니
가자미 식해 만들기 달인이 된 것 같아 흐뭇하다.
잘 익.었.다.
김이 펄펄 나는
뜨거운 하얀 쌀밥에 먹어야 제 맛이 난다고.
이럴 땐
현미밥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그래야 맛있다는데.
입맛도 되찾고
둘만의 한가한 겨울 일상을 회복한다.
손녀가 놀다 간 자리에서
바람이 찬 날.
교포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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