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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게 피는 꽃들
    다문화사회 2016. 5. 24. 07:28




    올해 철이 삼주는 빠른 것 같다.


    사월 오월에 비도 내리는 간간이 더운 날씨가 계속되더니.



    6월 중순에나 피는 라벤다들도 벌써 보라빛이 완연하다.


    이러다간 작년 처럼 칠월말이면 대부분 꽃들이 다 피고 질 것 같다.







    뜰을 둘러보는데 유난히 흰꽃들이  눈에 뜨인다.


    지구상에 제일 많은 꽃 색갈은 흰색이라네.


    흰꽃들의 정갈함을 보노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색을 더하지 않고도

    꽃으로 피는 꽃들.


    아니다

    흰색도 고운 꽃빛이다.








    지난 화요일 


    캐씨가 테네씨로 떠나갔다.


     딸 그리고 딸의 파트너

    누구보다도 딸이 낳은 손녀와 딸의 파트너가 낳은 갓난 손주 곁으로.






    나는 캐씨를 걷는 그룹에서 만났다.


    퉁퉁하고 키가 크고 어딘가 서툴어보이는 인상으로

    호감이 갔다.


    같이 걷게 되는 일이 잦았는데

    초등학교 미술교사였다.


    어린이들에게 관심이 많아서 동화책들에 삽화를 그려넣은 이야기며

    천진난만한 동심들에 화들짝 양심이 찔려 부끄러웠던 이야기들

    아이들의 단순한 말에서 진리를 발견했던 일들을 나눠주곤 했다.



    섬유예술가이기도 해서 걷는 길에서 만나는  풀이나 나무 껍질을 보면 어떻게 다듬고

    어떻게 쓰는지 보여주기도 했다.


    마른 미역줄기, 다시마줄기나 해변에 쓸려온 

    선이 멋진 덩쿨나무들을 주워 풀과 함께 엮는 그의 바구니들은 

    상상을 넘게 운치있다.







    사년 전인가 손녀가 태어난다고 남쪽에 다녀 왔었다.


    손녀와 딸 사진을 보여줄 때

    아가가 엄마 닮았니, 아빠 닮았니 하고 당연하게 물었더니

    글쎄... 잘 모르겠어.

    얼버무렸었다.


    그렇거니 했었다.






    예쁜 털모자를 짜가지고 가서 씌웠는데

    독특한 모양이었다.


    맞아

    예술가 할머닐 둔 아가들은 참 멋장이가 되네.

    그렇게 아가사진을 돌아가며 즐겼었다.






    어느 날은 이야기 끝에 

    삼십년 결혼 생활을 추하게 종지부를 찍은 

    전 남편의 이야길 하며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다.



    드넓은 태평양을 발 아래 두고 바람부는 절벽에 서서 

    학대기질이 있던 남편이야길 하다가

    자리를 비켜 혼자 걷기도 하더니.


    인터넷으로 만난 섬의 싱글맨이랑 데이트한 이야기도 

    두어번 들은 것 같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지푸라기를 넣은 진흙벽돌로 만든 두꺼운 벽의 자기만의 집을 짓고

    야채 과일을 기르며 작품을 하며 혼자서 사는 시간이 너무도 빨리 간다며

    싱글로 사는 것이 이렇게 편하고 자유롭다고도 했다.






    거의 일년 남짓하게 

    걷는 그룹에 나가지 않고 지냈다.


    겨울이 끝나가는 이월 말

    우연히

    동네 그로서리에서 만난 캐씨는 몰라보게 날씬하게 변해있었다.


    요가를 한다고

    그리고 완전 채식주의자가 되었다고.


    십오년은 젊어보이고 

    눈매가 캔디스버겐 젊은 시절을 연상시켰다.


    캐씨!!

    알아, 나 많이 변했지?!

    몰라볼 뻔 했어.


    두손을 부여잡고 반가와했다.





    오월 중순에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

    집도 팔렸어.


    이젠 떠나기만 하면 돼.


    아주 밝은 얼굴로 말했다.




    캐씨가 떠나기 닷새 전

    동네 화원의 카페에서 둘이 마지막으로 만났다.



    가구도 다 처분했다고.

    그냥 옷만 몇벌 철 따라 가지고 간다고.


    십여년전 

    삼십년간 살던 아이들을 낳고 기른 집을 떠나 올 때는

    짐을 정리하며 많이 울었는데

    이번엔 하나하나 처분하는데  아주 홀가분했다고.


    가서 필요한 거 하나하나 천천히 장만하지 뭐.

    없으면 없는대로 살고.


    아마 떠나는 것에 익숙해진 것 같애.






    딸이 낳은 외손녀 사진을 다시 보여준다.

    벌써 네살이야.

    많이 컸네

    .

    얼마나 착하게 잘 자라고 있는지 몰라.


    새로 태어난 남동생 아가를 어찌나 잘 돌보는지 기특하다고.

    딸의 파트너가 낳은 간난 외손주 사진도 보여 준다.








    딸이랑 파트너가 아이들을 낳기로 결정하고 나서

    주위에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한거야.


    처음엔 많이 힘들었어.


    딸의 딸아이가

     딸과 파트너의 사랑을 받으며

    예쁘게 자라는 걸 보면서,


    딸과 딸의 파트너를 위해

    그 둘이 낳아 기르는 아이들을 위해


      

    " 머릿속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어느 날 

    간단하게 확 바꿔버렸어.


    그랬더니 마음이 아주 편한거야.


    누굴 판단할 기준이나 자격은 아무에게도 없어.

    누구라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어.


    이쯤에선 예쁜 손주들을 즐기고 보살피는 일만 남았어.

    딸의 파트너는 엄마가 일찍 돌아가셨대. 그 아버지는 할아버지 사랑을 주고

    나는 할머니 사랑을 주고."


    아주 환하게 웃는 캐씨가 

    전혀 할머니 같지 않게 싱그럽게 젊어보인다.

    해방감에서 일까.



    말문을 열기가 결코 쉽지 않았으리라.

    고맙네.




    섬에서의 혼자 십년 세월에 

    그렇게 자신을 회복하고


    종래의 틀을 과감히 깨고

    딸의 가정을 품고 보듬으려

    섬을 떠난다.


    잘 지내  (Be Well)

    그동안 걸으면서 좋은 시간 많이 보냈어, 우리.


    캐씨랑 나는 포옹하고 헤어졌다.


    .




    *   *   *


    사족: 캐씨의 딸은 은퇴한 미국 올림픽 대표 선수다.

    그녀의 파트너도.


    네 살때 부터 그 남다른 재질을 드러냈다고.




    이천십육년 

    오월 이십삼일

    교포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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