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캐나다의 마지막 사진 신부-아사요 무라카미의 생)
아사요 무라카미(1898-2002) 캐나다의 마지막 ‘사진 신부(picture bride)’ 104세에 타계
2002년 12월 27일 캐나다 브리티시 콜럼비아 ‘뱅쿠버 썬’ 지에 실린 기사이다.
아사요는 1908년 부터 1924년 사이에 캐나다에 이민한 일본 청년들과 사진 교환으로만 결혼을 결정한 육천명의 일본 여성들중 마지막으로 생존했던 인물로 그녀의 일생은 손녀인 린다 오하마 (Linda Ohama)가 ‘Obaachan’s Garden(할머니의 정원)’이라는 제목의 기록 영화로 만들어졌다.
1924년 뱅쿠버에 도착한 아사요는 첫눈에 어부인 약혼자가 자신의 남편감이 아니라고 느끼고, 그 자리에서 파혼한다. 그후, 3년간 통조림 공장과 딸기농장에서 일하다가 역시 어부이며 배만드는 기술자인 오토기치 무라가미와 사랑을 하게되어 결혼한다. 그 사이에 10남매를 낳고 4대에 걸쳐 93명(10명의 자식, 21 손주, 53 증손주, 5 고손주)의 자손을 남기고 떠났다. 자손들의 성씨엔 무라카미 외에도 다양한 서구식 성씨의 자손들도 많은 것으로 미루어 본토 캐나다인들과의 인종간 결혼도 많이 이루어졌다.
그녀는 18년간을 브리티시 콜롬비아 뱅쿠버에서 살다가 이차대전 중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북미 대륙의 일본 이민들이 강제 집단 농장으로 옮겨질 때 Manitoba로 옮겨져서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했다. 전후에 가족이 남쪽 Alberta로 이주해서 감자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말년에는 친척들이 있는 캘거리로 이주해서 살다가 거기서 생을 마쳤다.
100세되는 생일에 그녀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일본에서의 과거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본국에 두고 온, 떠나올 때 여섯살과 네살이었던 두 딸의 이야기도 , 긴긴 세월 홀로 품고만 있던 두 딸의 사진과 함께.
아사요는 일본의 지체높은 집안 의 며느리였는데 두 딸을 낳고 세번째로 아들을 낳았지만 몇달만에 그 아들이 죽어버리자 시집에서 며느리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며느리를 쫓아내는 방법으로 ‘사진 신부’ 명단에 올렸다고 한다.
백세가 되어서 75년 만에 두고 온 두딸 중 생존해있는 둘째 딸과, 그녀가 오랜동안 가꾼, 지금은 캐나다의 문화재로 지정된 스테베스톤 가든에서 재 상봉했다. 그후 그녀의 일생은 마치 다시 봄을 만난 것처럼 새롭고 활기찬 것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평생 고향을 그리워했다는데, 손녀인 린다는 아사요의 고향인 오노미치에서 그녀의 기록 영화의 일부를 찍고, 그 영화를 마을 사람들에게 개봉하고 그녀가 일본을 떠날 때 입고온 기모노의 분홍색 띠(obi)를 그녀의 고향에 묻고 제를 올려 혼을 일본에 묻어 주었다고 한다. * * *
그 길고 긴 백여년 한평생은
여인이기에, 그리고 캐나다의 적국인 일본 사람이기에 강제 이혼, 강제 이동등으로 이리저리 갑작스레 보금자리를 빼앗겨야했던 파란만장의 일생이었다.
그러나 아사요는 어딜가든지 꾸준히 땅을 가꾸며 생존자로 살아남았다.
그녀가 뱅쿠버에서 남편인 무라카미 씨와 처음 살던 집에서 가꾸던 정원은 리치몬드(Richmond)의 Britania Heritage Shipyard Park의 일부로 복구되어 보존되고 있고 강제 이동 중에도 , 그리고 말년까지 그녀의 정원일은 계속되어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정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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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요에 대한 기사를 읽으면서 문득 떠오르는 영화 장면 하나.
프레데리코 펠리니(Frederico Fellini )감독의 이태리 영화 ‘길(La Strada)’
1954년에 개봉되어 전세계의 우리 어머니 세대들을 울린 명화로 요즘에 봐도 그 감동이 줄지 않는 명작이다.
로마의 주변 해변가의 가난한 집에서 동생들과 천진난만하게 살다가, 어느날, 짚시인 거리 광대 쌈빠노(앤소니 퀸 )에게 동전 몇닢에 광대의 조수겸, 여자로 팔린 젤소미나(Giulietta Masina).
고물 트럭을 타고 이동네 저동네를 다니며 써커스를 벌리고 모자를 돌려 동전을 걷어들이는 어릿광대 역활을 하면서 난봉장이이며 온갖 학대를 일삼는 쌈빠노와의 내일의 기약이 없는 끊임없는 방랑의 길에서 지친다.
어느날 이름 모를 역의 철길 옆에서 토마토씨를 받아서 땅에 심어보는 젤소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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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를 뿌리는 행위는 희망을 심는 것이다.
땅을 가꾸는 것은 정착자의 모습이다.
‘정원일을 좋아한 할머니는 어떤 토양의 땅에서든지 아름다운 꽃들과 싱싱하고 영양가 있는 야채들을 길러내는 매직 터치를 갖고 있었습니다
(‘Grandma , who loved to garden, could grow beautiful flowers and nutritious vegetables in all kinds of soil with her magic touch.’)
손녀인 린다는 할머니를 한마디로 그렇게 표현한다.
아사요의 후손들은 누구나 할머니의 정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아주 삶을 행복하게 꾸려간 할머니’로 기억한다.
내동댕이 쳐진 곳곳 마다 절망하지않고 일어 나 두발로 디딘 곳의 땅을 즐겨 가꾸며 살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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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귀한 것 중의 하나이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살아나갈 수 있는 힘을 주기에…..
그리고 그것을 품으려는 용기있는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온가슴이 뻐근하게 벅차게 차오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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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 땅이 녹기를 기다리며
2002년 12월 28일
교포아줌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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