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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꽁꽁언 날 걷기
    카테고리 없음 2014. 11. 19. 16:30






    꽁꽁 언 날



    아홉 사람

    평소의 반밖에 안되게 모였다.



     커다란 만(bay) 가운데 쌓은 둑길을 따라 걸었다.






                                                                                        



    아무리 얕은 바닷물이라도 이렇게 꽁꽁 어는 건

    흔치 않게 춥다.


    이상기후라는 말을 너도 나도 한번씩쯤 하고

    그래도 비가 안오니 불평없다고 찬공기를 가르며

    발걸음을 옮긴다.


    이상기후라는 말


    정말일까?


    일기측정하는 인공위성들과

    날씨 통보 뉴스가 너무 넘쳐나는데서 나오는 현상은 아닐까?


    삼국유사를 보면 이상기후, 천재지변은 예전에도 숱하게 있던 걸.


    얼마나 긴 세월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로 

    이상기후라는 말이 나오는 걸까.



    아침에 일어나면 선택의 여지없이 그저

    주어지는 것이 그날의 날씨인데.


    비 오고

    해 나고

    바람불고

    서리

    안개

    또 비...


    그렇게 경이롭게 주어지는 날들.





      

    린이랑 같이 걷게 되었다.


    키가 크고 황새같은 다리를 가진 린이 어김없이 나랑 보조를 맞춰 걷는 것이 참 신기하다.

                                                                                    

    어린 시절을 알라스카의 작은 마을에서 자란 린은 알라스카를 연상시키는 아침이라고

    좋아한다.


    자동차가 없고

    배나 수륙양용 작은 비행기 밖에는

    외부로 나갈 길이 없었다고.



    왜 그렇게 고립된 곳에 부모님이 사셨을까


    조부모님들이 놀웨이에서 이민 왔는데

    살던 곳이랑 가장 비슷한 환경이 

    알라스카여서 거기 정착했다고.








    너른 미국땅에 오는 이민자들은

    선택이 주어지면

    대부분 자신들이 떠나온 곳과 기후, 환경이 같은 곳에 정착하지, 맞아.


    서북부 북미해안 지역에

    북 유럽에서 온 이민들이 많이 모여사는 것도 그렇고

    남부 캘리포니아엔 

    지중해지역에서 온 이민자들이 정착해 살고 싶어하는 것도

    그렇다.


    고향을 떠나 온 사람들은 

    정착하는 곳에서 

    자신들의 고향을 다시 만든다.



    살던 동네 이름까지도  옮겨온다.


     런던, 보스톤, 마드리드, 아테네...


    크고 작은 도시 이름들을 보면

    어떤 이민자들이 처음 정착했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지.



    리틀 도쿄, 리틀 이탈리, 챠이나타운,코리아타운.. 처럼 

    같은 데서 온 사람들이 많이 모여사는 곳들도 있고.



    백인들이 맨 마지막으로 정복한 곳이라 

    우리 와싱톤주에는 

    네이티브 어메리칸들이 그 중 많이 살아남아있고

    지명도 네이티브 어메리칸 언어로 된 곳들이 그 중 많아서



     스노호미쉬(Snohomish), 스큄(Squim),  타코마(Tacoma),  머킬티오 (Mukilteo), 이사콰(Issaqua), 이넘클러(Enumclaw)  시할리스(Chehallis)......



    북미 대륙의 지명들은 정착자들의 분포를 그대로 보여주네



    전세계의 지명들을 미국땅에서 찾을 수 있으니

    전세계 사람들이 옮겨와서 사는 미국


    이민자의 나라 맞다.


     사람들은 그렇게 사는 곳의 이름에 자신들의 뿌리를 연결하며

    살아나가고 있네.


    어디 도시 이름 뿐인가

    길, 작은 골목 이름들은 어쩌구.


    우리집 옆으로 새로 길을 낼 때

    카운티에서 

    남편의 성씨를 길이름에 붙일 수 있다고 했을 때

     남편이랑 쉽게 도리질을 했었다.


    발자취의 흔적.


    의미없는 일이다.

    그저 살다가 스쳐지나가는 것일 뿐인데....


    산은 산으로

    들은 들로

    물은 물로

    그대로 놔두었으면.


    거기다 정복자의 문패마냥 써붙인 너덜너덜한 빛바랜 이름들

    긴 세월 부는 바람속에서는

    다 부질없고 허무한 일인데.




    둘이 맞장구 치며 


    주거니받거니  걷다보니


    부품한 털모자를 벗어도 될만큼 몸이 녹는다.





    서로의 아이들 이야기도 하고.



    맨해튼의 이름있는 회사의 중역을 하던 사십대 초반인 린의 아들이 

    몇년 전 일을 그만두고

    흑인 동네 할렘의 중학교 교사로 전직

    아침 마다 기대에 차서 학교로 나가는데

    직업을 너무 즐긴다고.


    남편의 선택을 따르고 응원해주는 며느리가 너무나 고맙다고.


    그런데 아들 말이

    "엄마

    '교육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좋은 관계를 학생들과 교사가 맺는 거여요.

    그러고나면 학습은 저절로 이루어져요.'"


    맞아. 어쩜!


    린이랑 둘이서 주먹을 맞대며 동의했다.



    평생을 교사로 교장으로 대도시의 교육감으로 그리고 대학강단에서

    가르치는 사람으로 살아온 린 


    엄마가 자기 삶의 롤모델이라고 

    아들이 그랬다고 

    수줍게 말하는데

    그녀의 흐뭇함이 전해 온다.



    며칠 전 칠십세 생일을 맞은 소감을


    깜짝 놀랐어

    내가 칠십이라니.

    믿을 수 있니?



    린, 오죽하면 폴 사이먼이 노래도 만들었을까

    How strange to be Seventy  라고.



    나이가 드는 건 

    모든 전문성을 점차 떨어버리고

    누구나 처럼  네발 가진  사람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단순한 마음으로.




    나도 아직은 머언 길 인것 같지만

    그 이상한 곳으로 다가가고 있구나.







    돌아오는 길 

    차안에서 옆에 앉은 켈리는  줄곧 혼자 걸었다고.


    몇달 전에 돌아가신 엄마의 재 일부를

    평소 엄마가 새들  보러 즐겨가던 곳이었기에

    가져다가 걷는길 옆 

     곳곳  뿌려드리고 왔다고.


    그랬구나.


       엄마랑 같이 걸었었구나.



      그랬다고.










    이천십사년 십일월 십구일


    교포아줌마


    음악은 유키 구라모도의 medi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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