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 속에서-노루가 못 먹는 꽃들-카테고리 없음 2019. 2. 23. 03:08
아침 부터
남쪽에서 바람이 분다.
집을 도는 바람 소리가
콸콸 흐르는 큰 시내물 소리 같기도
가끔은 큰 폭으로 떨어지는 폭포 소리 같기도 하다.
굴뚝 들이
바람에 울리는 소리가
집안 가득하다.
바람부는 날엔
밖에 나가지 않는다.
비가 와도
안개가 끼어도
뜰은 잘도 받아주지만
바람은 쓸어가고 몰아오기에
시달리고
고되다.
어제 하다만 일이 뜰에 가득한데.
오늘은 쉬자.
-북미주 캐스캐이드 산 들에 피는 야생화들-
올 여름엔
여우장갑 (foxglove)을 많이 볼 것 같다.
처음 이사왔을 땐
들이 온통 이 꽃들 투성이었는데
북 미주에
산과 들에 널린 게 이 꽃이라
보이는대로 다 뽑아버렸다.
십오년 세월이 지나
다시 이 꽃을 귀하게 모셔 오네.
우리 동네 토박이라서
셰스타 데이지 처럼
절로 잘도 핀다.
-셰스타 데이지(shasta daisy)는 꽃송이가 아주 크고 여름 내 핀다.-
더구나
먹성 좋은 노루들도
독성 때문에 피하고
전혀 먹지 않아서 좋다.
튤립은 땅에 넣는대로
뿌리 까지 찾아내 알뜰하게 파먹는다.
화원에서 모셔와
고이 심은 풀꽃들은
몇년
공 들이다 보면 시들시들 없어지거나
끈질긴 노루,토끼들의 먹이로
씨가 말라버리곤 했다.
-캐스캐이드 산에서도 우리뜰에서도 잘 사는 꽃-
이 주 전 쯤
라아크가 노루가 안 먹고
꽃송이가 주먹만하다며
수선화 뿌리를 몇십알 가져다 줘서 땅에 넣었다.
어제 보니
벌써 노오란 싹들이 흙을 뚫고 있었다.
-가꾸지 않는 두엄더미 옆에 절로 피는 갓, 양귀비들. 양귀비는 독성이 있어 노루가 피한다고.-
라아크는
고흐의 그림에 나오는
푸른 아이리스 뿌리를 한 양동이 가져갔다.
한동안
희귀하고 잘생긴 꽃들을 모셔다가
공들여 가꾸더니
이젠 노루와의 싸움에 지쳐
노루가 못 먹는 것들로만 심겠다고.
보스턴 교외에 처음 집을 샀을 때
먼저 주인이 가드너라서
색 고운 아이리스가 앞 마당에 가득했다.
캐롤라이나로 이사갈 때
몇 뿌리 데려간 것이
종자를 치고 또 치고
여기 까지 데리고 와서
계속 이웃들에게 퍼지는 중이다.
이 동네 기후에 맞아
가만 두어도 혼자 잘 피고 지고
다시 돌아오는 꽃
노루랑 토끼가 덜 먹는 꽃
그래야 내 굼떠지는
일손도 덜 가고
사는 풀꽃들도 고생이 덜 하겠지.
들꽃이 정원에 피는 꽃들과 다른 것은
가꾸지 않는 것이다.
'모든 꽃들은 한 때 다 들꽃이었다.'
오늘 내일 지나면
바람이 잦아 지겠지.
오늘은 집안에서 견디기로.
이천십구년 이월 이십이일
바람 심한 날
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