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arrington 농가의 헛간(barn), Reynolds Price같은 남부 작가들이 크리스마스 시즌에 불우이웃돕기 시낭송회 장소로도 이용된다> 아이들이 어릴때 뉴잉글랜드에서 캐롤라이나로 이사가던 칠월 어느 날 푸른 하늘에 뭉게 구름이 푸짐하고 너른 땅이 붉다는 첫인상이었다. 척박한 땅에서 손이 갈쿠리 같은 백인, 흑인 농부들. 도시를 조금만 빠져나가면 주민의 삼십 퍼센트 정도가 집안에 개수대가 없는 가난한 주 'Jesus is my driving power' 같은 집채만한 간판들이 황량한 들판에 우뚝 우뚝 서 있는 곳. 'Jesus loves you' 라는 팻말이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집 옆에 서 있는 곳. 거기서 아이들의 잔뼈가 굵어지고 대학가느라 집을 떠나가게 될 때까지 오래 살게 될 줄 몰랐다. 삽이 안들어가는 찰진 진흙을 구슬땀흘리며 꽃밭으로 일구어놓으면 5월이 다 가기 전 정원의 풀꽃들이 열기에 타버리는 곳 땅을 떠 맞춤한 크기로 잘라 구우면 그대로 벽돌이 되어 붉은 벽돌건물이 유난히 많고 도자기 굽는 사람들이 대대로 모여사는 곳. UNC Chapel Hill, 교정, 마이클 조던의 모교이기도하다. 뜰을 가꾸는 햇수가 늘수록 공기도 물도 스며들수 없는 숨 못쉬는 땅이라는 생각에 행여 정착하고 살다 가 이곳에서 죽더라도 몸은 이땅에 묻지 말아야지 그런 생각을 했었다. 아이들은 진흙땅에서 나는 딸기랑 고구마(yam)랑 먹으며 농구,야구,축구를하고 달리기를하며 크고 작은 토네이도와 여름날의 천둥 번개를 피해가며 팔꿈치에 무릅에, 옷에 붉은 진흙을 묻히면서 쑥쑥 자라났다. 그리곤 뉴잉글랜드로 캘리포니아로 자신들의 꿈을 좇아 떠나갔다. 그리고 몇년 후 빈둥지의 우리 부부도 서부로 떠나갔었다. * * * 이 겨울에 찾아간 캐롤라이나는 영하의 날씨로 추웠다. 언제나 진흙 가루로 부연 흙탕물의 호수들이 얼어붙었다. 캐롤라이나의 물들은 호수건 시내건 붉은 흙탕물인데 눈에 익은게 뭔지 다시 보니 반갑다. 떠난지가 몇년 되었다고. 반갑다고 정성들여 차려주는 음식들이 화들짝 놀라게 기름지고 양이 무척 많다. 또 케잌이랑 티들은 목이 타도록 달다. 남부에서 아이스 티는 무조건 설탕을 듬뿍 넣은 걸 말한다. 늘어지는 사투리에 상냥한 남부의 예의 그 호의들(Southern hospitality)이 묻어나오니 잊었던 고향집에 잠시 다니러 온 기분이다. 팔십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유명한 큰 대학이 세개나 있는 남부에서도 유일하게 깨였다 할 수 있는 이 지역에서도 흑인 백인이 들어가는 식당이 따로 있었다. 노쓰캐롤라이나 채플힐 대학교의 유명한 농구 코치 Dean Smith가 흑인 학생 선수들을 데리고 좀 한다하는 레스토랑에 갔다가 저지를 받고서 그대로 밀고 들어가서 밥을 먹인 일이 신문에 대서 특필 되던 곳이다. 허긴 농구에 관한 건 무엇이나 대서특필되는 농구대 없는 집에서 사는 건 불법이라고 할만큼 탈탈 진흙땅에서 농구들을 하는 곳. 전국민이 골고루 즐기는 운동이지만 미국에서 농구는 대략 가난한 사람들의 스포츠다. 공 하나만 있으면 골목 어디서나 아이들끼리 모여서 놀 수 있기 때문이다. 살던 동네 찾아가니 내가 심은 은행나무가 가지 많이 벋어 큰나무가 되어있고 옆집 살던 붉은 곱슬머리 주근깨 투성이 키어런이 훌쩍 중학생이 되어 가라지 옆 농구대에서 뽈을 쏘고 있다. 기저귀떼고 부터 톨톨 농구볼 치는 소리로 우리 아침 잠을 깨우곤 하더니. 나랑 '영원한 Tar Heel(UNC Chapel Hill 농구팀)' 팬인 걸 재차 확인하고 오바마랑 미셸처럼 주먹을 박치며 악수를 했다. * * * 미국 보수 극우의 심볼이던 상원의원 Jesse Helms의 출신지인 남부의 노쓰캐롤라이나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놀라웁게도 예상을 뒤집고 오바마를 당선시켰다. 호텔에서 저녁 시간에 룸 서비스해주는 흑인 아줌마한테 내일 마틴 루터 킹 생일과 모레로 닥아온 대통령 취임을 축하한다고 했더니 와락 손을 잡으면서 자신은 아직도 믿기지않는 사실이란다. 너무 기뻐서 이틀간 휴가내서 일을 쉬고 동네사람들 바비큐해서 먹인단다. 우리 부부도 무조건 초대하니 시간나면 오란다. 남부의 농민들이 초대할 때는 절대 빈말이 아니다. 나는 그녀의 바베큐 파티를 머리에 금방 그릴 수 있을만큼 익히 안다. 커다란 돼지를 큰 오일 드럼통을 잘라 개조한 오븐 속에 넣고 새벽 부터 반나절 통째로 구워 기름을 쏙 빼고 그 옆 드럼통 오븐 그릴위엔 노쓰캐롤라이나에 뛰어노는 모든 닭들의 다리랑 날개를 온통 다 잘라 온 걸로 착각할 만큼 무수한 닭다리를 조개탄에 구워내는 BBQ를 말이다. 성씨가 거기서 거기인 (아프리칸 어메리칸들의 성은 대개 노예시절 백인 주인의 성을 딴 것이 많다) 이리저리 이으면 다 혈연으로 연결되어 친척이고 사돈이되는 동네사람들이 모여들고 느린 속도로 지나가는 사람들도 일부러 길 물어보다가 매운 소오스 친 바비큐와 푹 고은 시래기 한 접시 듬뿍 얻어먹고 갈수 있는 그런 BBQ 말이다. 아이들은 기름끓는 프라이 치킨 튀기는 가마솥 옆에 모여 앉아 고소한 냄새에 침을 흘리고 이웃들은 단 케이크랑 푸딩이랑 파이들을 들고 나타나 음식 되기가 무섭게 허겁지겁 배터지게 먹고 또 먹고 먹는 것 빼고나면 노래 한가락의 여흥조차 없는 남부 시골 흑인들의 가난한 바비큐 파티를 말이다. <캐롤라이나 도기들은 낮은 불에 구워 우리나라 옹기처럼 잘 깨진다.> 그 레이디랑 남부 사투리로 오바마 이야기에 '기쁜일' '좋은일' 하며 침튀기고 열올리다보니 어느 새 십년지기처럼 서로가 두손을 부여잡고 있다. '우리같이 다르게 생긴 사람들은 다 기뻐할 일이야. 오바마 정부 각료들 중에 아시안들도 있지?' 아직 아시안계 대통령이 안나와서 그렇게 말하는 배려가 참 고와서 하하 크게 웃고 둘이 얼싸 안았다. 오늘 밤 열한시까지 당번이니 필요한 건 뭐든지 말하라며 극구 사양했는데도 음료수를 두병 더 놓고 갔다. * * * 대통령 취임식날 전날 밤 부터 내리기 시작하던 눈이 폭설 경보로 바뀌고 아침에 일어나니 온 천지가 하얗다. 줄줄이 연착, 취소되는 항공 스케줄 때문에 다행이었던 건 공항에 걸린 대형 TV로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을 실시간에 다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앞이 안보이는 눈보라속에서 발은 묶여 있었지만 링컨의 바이블에 손을 얹고 대통령 선서를 하는 44대 대통령 오바마를 보면서 더운 눈물을 줄줄 흘렸다. * * * 살면서 여러 곳에 짐을 내려놓고 우리의 텐트를 치곤한다. 어떤 땐 아주 생소하고 낯선 곳에 짐을 풀게 된다. 어느 곳이고 더불어 산 그곳의 이웃들과 함께 내 삶의 지울 수 없는 일부가 된다. 나를 먹이고 키운 곳들. 이웃들. 다 눈물겹게 소중하고 고.맙.다.
January/20/2009 Carolina 이천 구년 일월 십구일 교포아줌마 <제임스 테일러는 노쓰 캐롤라이나가 자랑하는 칸츄리언 웨스턴 (뽕짝) 가수로 그가 어릴 때 놀던 붉은 흙탕물의 시냇가의 기억을 바탕으로 만든 copperline (구릿빛도는 붉은 시내) 이라는 노래로 남부의 유명작가 Reynolds Price와 같이 가사를 만들었다. 이번에 가보니 그가 어릴 때 놀던 집 근처의 시내 위에 만든 다리를 근간에 '제임스 테일러 다리'라고 명명해 놓은 것이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