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의 집
오랜 만에 우리 동네 농부 들이 모이는 주말시장에 갔다.
몇 년 못 본 사이 세월이 지나간 걸 서로 의 모습에서 확인하고
다시 만남에 안도하는 눈인사, 두 손 마주잡기..
누군가 큰 소리로 나를 부른다.
'헤이 아무개야!'
'이게 누구야?'
수잔과 나는 포옹했다.
살살해. 나는 부서지기 직전이거든.
훨씬 수척해진 수잔이 큰 신발을 느슨하게 신은 발을 지팡이로 가르쳤다.
벌써 십수년 전 부터 한 발이 온전치 않아 항상 절며 느리게 걸었는데.
아직 두 발로 서서 여전히 걷고 있다고.
장이 서기 한시간 전에 도착해서 작은 테이블 위에 오늘 장에 팔 물건들을 다 정리해 놓았네.
*큰 새들의 깃털, 돌, 실로 엮어 만든 모빌들
*향기 나는 초목의 잎, 껍질, 꽃 등을 모아 실로 꽁꽁 싸맨 스멋지 (smudge)
(네이티브 어메리칸들이 태워서 그 향기와 연기로 더러운 것, 악한 것 들을 정화, 순화 한다고 믿는다.)
*동네 도자기꾼들 화덕 비는 구석을 빌려 구워내는 작은 꽃 꽂이 받침들
' 이거 하나 가져'
수잔은 나만 보면 손에 잡히는 대로 뭘 주려고 애를 쓴다.
' 그 동안 너 한테 받은게 여기 진열한 것들 보다 더 많아. ' 나도 애써 사양한다.
이십년 전
이제는 다른 세상으로 가 버린 내 친구, 영국 사람, 크리쓰가
동네 사는 ' 또 하나의 영국인 (another Brit) 이라고 내게 소개한 그 때 부터도
수잔은 언제나 살 집을 찾고 계속 옮겨다니며 살았다.
집을 자주 비우는 사람네 작은 별채 에서 집 봐주는 사람으로,
틴에이져 아이를 혼자 놓고 해외로 간 사람의 베이비시터 겸 집 관리자로,
혼자 사는 노인의 말동무로.....
어느 해는 이웃 섬에 있는 어느 집의 화초용 온실에서 겨울을 보내고
추워서 혼났다며 벌벌 떨며 이른 봄에 돌아왔다.
십년 전 쯤엔 뉴멕시코로 살러 간다며
가는 도중 유타 사막 한 가운데 여관 에서 한 밤 중에 내게 전화를 했었다.
'길이 너무 머네, 괜히 떠났나 봐.'
그래도 사람 같은 친구가 없는 우리 동네 에서 더 이상 살지 않기로 했다고.
뉴멕시코에선 좋은 사람들을 만날것 같다고.
그리곤 그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다시 우리 동네로 돌아왔다.
가끔 주말 장에 펼쳐 놓은 작은 테이블 뒤 수잔이 내어주는 낮은 나무 의자에 앉아
그 날 장 에서 산, 먹을 걸 나누며 이야기 할 때
스멋지에 쓸 라벤더를 가지러 라벤더 밭에 올 때
그녀의 하소연은 한결 같았다.
마음을 나눌 친구가 없다'고.
만난 사람들에 실망했다고.
-이 깃털은 축복과 풍요를 가져다 줍니다. 친구에게 굳은 우정의 표시로 선물하세요-
자신이 만들어 파는 '우정의 깃털' 에 써놓은 설명이다.
그녀가 손으로 빚고 만들어 파는 물건 들이
한결같이 마음을 위로하고 북돋우는 것들이다.
수잔이 장에서 구하는 건 돈 이 아니다.
채소, 꽃, 과일, 구운 빵, 쨈, 치즈....등을 파는 이웃 상인 들과 비교도 안 되게
손님이 드물고 수입이 적다.
간혹, 발을 멈추고 그녀가 만든 물건들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수잔은 매 번 어떤 기대와 설레임을 가지고 대하는 듯 보인다.
묻는 말에 지극정성을 다하고,
대화가 길어지고 때로는 속에 있는 개인적인 사연 까지 한 시간 가까이
털어놓는 고객도 있다.
이럴 땐 장사는 뒷 전 이다.
형편이 어려운 것 같으면 돈 안 받고 물건을 거저 주는 경우도 목격했다.
행운을 가져다 줄거라며
나쁜 기운을 없앨 거라며
다시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될거라며
말 안듣는 아이가 철 들 때가 있을거라며
위로의 말로 떠나보내며 저만치 갈 때 까지 그 사람 등에서 눈을 떼지 않는 수잔.
요즘 한창인 잉글리시 라벤다들을 스멋지 에 쓰라고
장이 끝날 즈음 다시 갔다.
'오늘 얼마 벌었어?'
'칠십불'
'괜챦은거야?'
' 언제나 처럼 내가 필요로 하는 것 보다 많아.'
As always, more than I need.'
한 눈을 찡긋하며 활짝 웃는다. 주름이 많이 깊은 얼굴로.
'지금은 어디 살아?'
조심스레 묻는 내 말에 활짝 웃으며
'드디어 내 집을 마련했어.
동네 공원 있쟎아, 거기 작은 모빌 캠퍼를 갖다 놓았는데
앞으론 바다가 트여있고 옆엔 숲이 있어 새들이 친구 해 '
팔다 남았다면서 옆 자리 농부가 ' 쓴 상추' 한 개를 수잔 에게 건네니
한 잎을 떼어 나 먹어보라고 준다.
부드러운 잎이 쓰기도 하네.
상추 때문 만은 아닌 것 같다.
마음이 마구 찔린다.
칼릴 지브란 (Kahlil Gibran) 의 The Prophet 중
' 집에 대하여 ( On House) ' 의 구절들을
문득 떠 올렸네.
그러자 한 석공이 나아와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집에 대해 말해 주세요."
그가 대답하며 말했습니다:
상상 속에서 황야 속에 정자를 지으세요, 도시 성벽 안에 집을 짓기 전에.
당신들이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당신 안에 방랑자가 있듯이, 그도 항상 멀리 있고 홀로 있습니다.
당신의 집은 당신의 더 큰 몸입니다.
그것은 태양 속에서 자라고, 밤의 고요 속에서 잠을 잡니다. 그리고 그것은 꿈을 꾸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집도 꿈꾸지 않나요? 그리고 꿈꾸면서, 그것은 도시를 떠나 숲이나 언덕에 이릅니다.
내가 당신들의 집들을 손에 모을 수만 있다면, 마치 씨앗을 뿌리듯 숲과 초원에 흩뿌리고 싶습니다.
계곡이 당신들의 거리였으면 좋겠고, 초록의 길들이 당신들의 골목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당신들이 포도밭을 지나 서로를 찾고, 옷 속에 땅의 향기를 담아 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 일들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의 조상들은 두려움 속에서 당신들을 너무 가깝게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조금 더 지속될 것입니다. 조금 더, 당신들의 성벽이 당신들의 집과 들판을 구분할 것입니다.
그리고 말해 주세요, 오르팔레세 사람들, 당신들은 이 집들 안에 무엇을 가지고 있나요? 그리고 무엇을 잠가 놓은 문으로 지키고 있나요?
당신들은 평화를 가지고 있나요, 당신의 힘을 드러내는 고요한 충동을?
기억을 가지고 있나요, 마음의 정상들을 가로지르는 반짝이는 아치들?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나요, 나무와 돌로 만들어진 것들에서 성스러운 산으로 마음을 인도하는 것?
말해 주세요, 당신들의 집 안에 이러한 것들이 있나요?
아니면 오직 편안함과 편안함에 대한 욕망만 있나요? 그 몰래 다가와 손님처럼 집에 들어왔다가, 주인이 되고, 결국 주인자가 되는 그것?
그렇습니다, 그것은 길들이는 자가 되어, 갈고리와 채찍으로 당신의 더 큰 욕망들을 꼭두각시처럼 만듭니다.
그 손은 비단 같지만, 그 마음은 철입니다.
그것은 당신을 잠재우고는, 당신의 침대 옆에서 일어나 육체의 존엄을 조롱합니다.
그것은 당신의 건전한 이성을 비웃고, 그것들을 민들레 솜처럼 연약한 그릇에 놓습니다.
실로, 편안함에 대한 욕망은 영혼의 열정을 죽이고, 그 후 장례식에서 웃으며 걷습니다.
그러나 당신들, 공간의 자식들, 쉼 속에서도 끊임없이 움직이는 자들, 당신들은 갇히거나 길들여지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의 집은 닻이 아니라 기둥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상처를 덮는 반짝이는 막이 아니라, 눈을 지키는 눈꺼풀이 될 것입니다.
당신은 문을 지나가기 위해 날개를 접지 않으며, 천장이 머리를 쳐서 꺾이지 않게 머리를 숙이지 않으며, 벽이 무너지지 않도록 숨쉬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죽은 자들이 살아있는 자들을 위해 만든 무덤에 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웅장하고 화려하더라도, 당신의 집은 당신의 비밀을 감추지 않으며 당신의 갈망을 보호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 안에 무한한 것은 하늘의 대저택에 머물며, 그 문은 아침 안개이며, 그 창은 밤의 노래와 고요입니다.
-ChatGpt 번역-
나는 수잔의 친구가 아니었네 !!
스승은 복병 처럼 나타난다..
이천이십오년 유월 하순
오랜 만에 84세 된 수잔을 다시 만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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