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2)
비가 많이 내린다.
어제도 그제도
오늘도 온다.
해도 짧아지고
바깥에서 일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니
집안에서 소일 거리를 찾는다.
롸쓰가 떠나갔다.
이른 아침 캐롤라이나에서 온 전화에 남편이
Oh, No!
감으로 알았다.
트리플 바이패쓰 심장 수술을 한 후
열심히 운동하고
아스피린 먹고 하는 중에도
고비를 몇번 넘기기는 했다.
심장에 패이쓰메이커를 단 후로는
계단을 두개 오르기도 어려웠던 때가 언제였던가 하고
18홀을 거뜬히 치기도 하고.
다시 건강하게 정상적인 생활을 해 왔었는데.
미국에 온 후
우리는 아이들의 친구 부모들
같은 직장에서 일한 동료들
사는 동네 이웃들 중에
형제처럼 가까운 친구가 된 사람들이 있다
남편에겐 친형 같은 롸쓰.
나 한텐 큰 형부 같은 롸쓰
메모리얼 서비스 일정이 정해졌다.
당연히 가야지.
남편이 짐을 싼다.
열아홉에 롸쓰를 만나 블론드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함께 한 샬롯
덜컥 임신을 하는 덕분에
월남전 파병에서 면제된 젊은 아빠 롸쓰
풋볼 장학생으로 버클리에 들어가서
낮에는 풋볼, 학업,
낮 밤으로 젊은 부부가 피자가게 종업원으로 뛰며 시작한 결혼생활이
오십삼년.
샬롯을 위로할까 하는 마음에
아린 마음을 다스리느라
바느질을 했다.
지붕에 듣는 비소리를 들으며
너그럽고 선한 웃음을 떠올린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진정하게 친절했던 롸쓰
일찌기 사십대 중반에 심장장애를 경험하고는
철저하게 매일 매순간을 마지막 날 마지막 순간처럼
다 내려놓고
최선을 다해 살다 갔다.
같이 간 여행지에서
택시를 탈라치면
오불 요금 짧은 거리에 의례 이십불을 팁으로 더 얹어주던.
같이 간 레스토랑에서는
서빙하는 웨이터 웨이트레스들은 물론
주방의 셰프들까지 나와서
음식에 대한 이야기들로 식탁을 흥겹게 하던.
직장에서
하는 일이나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존중하는 태도와 사석에서는 친구로 편하게 지내던
크리스마스엔
상사에게가 아닌
부하직원들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꼭 하는 것을
남편은 롸쓰한테서 배웠다.
참 좋은 상사였고 친구였고
두 가족 서로의 희로애락을
다 지켜 본 가까운 친척이었다.
사반세기 이상 함께 하는 동안
모르는 것 투성이 크고 작은 미국 삶의 길잡이가 되어준 사람.
혼자 잘 살 수 없는 일
주위에 오는 누구이던 간에 행복해야 자신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실천하는 걸 옆에서 보았다.
아들이 둘
며느리 둘이 낳은
손자 하나
손녀 다섯
큰 나무인 아버지 그늘 밑에서 자라지 못한 작은 나무들이었을까
별로 생산적이지 못한 두 아들의 가정을 잘 보듬고
자상한 할아버지로 가까이 사는 손주들 크는 재미도
많이 본 할아버지였다.
자폐증의 손자로 아들 내외와 손자에게 시간과 마음을 많이 쓴
자상한 할아버지였고.
향년 칠십일세
자신이 일생 프로로 한 일에
열정을 가지고 마지막 까지 매진했고
자손을 돌보는 일에도
이웃이나 친구들과 가족들과 살아나가는 일에도
낙천적으로 만족하며 살다 간
사람
한땀 한땀 뜨고
지난번 얻은 새털들을 이리저리 모아 멋도 내고.
다림질로 곱게 다려 마무리 하고
캐롤라이나에 사는 두 친구가 생각나서
베개를 두개 더 만들었다.
저녁 무렵이 다 되었는데
비속을 뚫고
크리쓰가 왔다.
줄곧 오는 비에 갇혀 어떻게 지내느냐고.
다리미 꺼낸 김에
실크 쟈켓을 다림질해주었더니
근사하게 새 옷이 되었다.
요즘에 다리미질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할만 하고 재미있다고 둘이 웃었다.
크림색 향낭을 샬롯한테 보내기로 하고
작은 카드도 하나
마련했다.
일생의 대부분을 함께 살았으니
한동안 얼마나 이상할까
그리고
허전할까
누구나 한 때 푸르게 젊었었다.
그리고 젊을 시절 듣던 노래 속에서
항상 젊어있다.
이천십육년 시월이십일
롸쓰를 보내며
교포아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