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주변이야기

포도가 익는 날들

교포아줌마 2016. 9. 9. 01:13



포도가 익어

단내가 솔솔 풍기면


새들이 모여든다.



저 건너 집 커다란 나무 위에 떼로 모여 사는 가마귀들

가슴이 붉은 로빈

수백마리 하늘을 덮으며 날아오는 검은 찌르레기들(starlings)....



새들도 농사를 짓는다, 눈으로.


그러기에 딱 맞게 익으면 그렇게 모여와 

당당하게 따 먹지.


네트를 치는 사이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바로 옆에서 맹렬하게 먹는다.



와인용 포도는 설탕이 해 아래서 더 졸아야하니

네트를 쳐서 보호하고


과일로 먹는 포도 중 

한국 포도와 비슷한 린덴 블루가 다 익어가는데


꾸역꾸역 몰려들어 진을 치는 새 떼에

놀러 온 친구들 까지 합세해

예정을 앞당겨 포도를 땄다.



예년 보다 포도 익는 시기도 훨씬 빠르네


어제 오늘 차들어 가는 반달이 

얼마 있어 다 차면 추석 보름이니 왜 안그럴까.







-린덴블루(Lynden Blue), 오른쪽 알이 작은 포도는 아직 덜 익은 피뇨 느와( Pinot Noir)-




올 봄

포도 꽃이 필 때 비가 많이 와서인지

포도 송이가 크지 않다.



자연 수확도 작년의 반 밖에 안되네.


그래도 달다.


이년 연거푸 포도 풍년이었으니

나무도 좀 쉬나보다.



쑤자네

마리아네

어얼네

웨인네

필리스네

렌디네

바바라네

라크네

크리스네

...



포도가 언제 익느냐고 묻는 이웃들에게

맛보라고 조금씩 돌린다.






제일 가까운 필리스네 


포도 익을 때가 다 된 걸 알았다며 반갑게 맞는다.



부지런한 켄이 겨울 준비를 저렇게도

착착 해 놓았네




잠깐 기다리라더니

결혼 기념일에 남편한테 줄 카드를 보여준다.


밋밋한 상업용 카드를 사서

그 밑에 뜰에서 주운 작은 까만 돌맹이 세개를 붙여서

소를 만들었네.


필리스는 돌맹이 아티스트다.

크고 작은 돌들에 그림을 그려넣는게 취미다.


스무살 연상의 켄과 결혼한 지가

벌써 십이년이나 되었다고.


저 쪽에선 

소들을 돌보고 있는 켄의 등이 유달리 굽어보인다.


켄이 얼마나 기쁠까 이 카드를 받으면.


그렇겠지?









노동절 휴가로 놀러 온 친척들이 달걀을 다 먹어서 미안하다며

파랗고, 녹색이고, 희고 노란 색색의 달걀 한 꾸러미를 굳이 안겨준다.


사양하지 않고 고맙게 받았다.



점심 먹고 나선 포도돌리기가

저녁할 시간이 한참 넘어서야 끝이 났다.


동네 이웃들 근황

업데이트도 하고

하하호호 웃고 수다를 늘어놓고 다녔네.



뒷좌석에 보니


달걀 3 꾸러미

소고기 버거 고기 5 파운드

잘 익은 큰 복숭아 4 개

염소젖 반 갤론

농 익은 자두 한 소쿠리

각종 고운 새 깃털 모음 한 봉지

갓 구운 애플 월넛 케잌 

갓 구운 오렌지 케잌

블랙베리, 레즈베리 식초 두병



가지고 간 것 보다 받아 온 것이 더 많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트럼프를 지지하는 가난한 레드넥 이웃들로 부터 

받았네!


리버럴이고 민주당을 지지하는

비교적 부유한 이웃들은

땡큐 베리 마치, 땡큐 쏘오 마치를 

입이 닳도록 말하고

정성들여 쓴 땡큐 카드를 보내거나

얼마나 맛있었는지를 이메일 편지로 보내 온다.


그 참

확연한 차이네!



몇년 포도 돌리기를 하다

문득 깨달은 것이다.



이천십육년 

노동절 휴가 주말에


교포아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