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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에 만난 모더니즘

교포아줌마 2009. 7. 28. 00:41





오월 어머니날 주간엔
쌘프란시스코에 있는 아들과 뉴욕에 있는 딸을 만나러 갔었다.
아들이 일하는 낮 시간엔 시내를 어슬렁거리기로 되어있는데
모던 아트 뮤지엄에 가 보란다. 

나의 미술관행은 이렇게 예외없이 짜투리 시간이나 하릴없는 시간들을 메꾸는 것으로 
터덜터덜 무심하게 시작한다.



안내 데스크에서 모더니즘을 강의하는 투어가 방금 떠났으니 
바삐 올라가면 따라 잡을 수 있을 거라한다.

체계적인 지식은 없이 유럽 일색의 유명한, 
그래서 너무나 널려있어 그동안 익히 보아 온 그림들이라 시큰둥 그러마했다.

투어 가이드는 두 개의 여인들의 초상을 비교하며 모더니즘의 시작을 설명하고 있었다.
작가가 기존의 남자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 새롭게 모델인 여인의 공간과 개성을 살려줬다는 면에서 전통에 대한 파격으로 모더니즘의 시작 어쩌구 저쩌구 한다.



선천적으로 그룹 기피증 장애가 있는지라 
듣는둥 마는둥 하다 혼자 빠져나와 전시장에 덜렁 놓인, 
미술관에서 관객을 우롱한다고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고물 양변기도 흘낏 보고 
앤드류 워홀의 소녀시절 리즈 테일러 모습이 코카콜라병처럼 연쇄적으로 찍힌  
Silk (은막)도 바삐 지나고 

인도 작가의 공중에 매단 설치 미술도 보고(인도와 중국에 돈이 생기니 이 두 나라 작가의 작품들을 미국의 주요 미술관에 빈번하게 비중을 두어 전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심심하게 공치는 기분으로 또 계단을 올랐다.

거기서 아주 새로운 것을 만났다.

특별전으로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이 온통 흑백 뿐이다.

윌리엄 켄트릳지(William Kentridge) 

처음 들어보는 작가로 남아공화국 출신인데 
요즘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의 하나란다.

숯으로 쓱쓱 그렸다 지웠다하는 기법으로 그린 그림들과 실물을 섞어 영상 사진으로 
찍어서 화면에 비쳐내는 작품들에 햐 하고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위의 작품은 밑에서 커다란 원반 스크린을 돌리고 거기다 위에서 프로젝터로 돌리는 것으로 실제로 전시관에서 보면 시각적 효과가 훨씬 다르다.원판 스크린이 돌아서 그 앞에 서서 시간의 흐름에 빨려드는 경험을 했다. 그의 그림들은 평면의 캔바스를 떠나고
스토리를 전개하며 움직인다.









위의 작품은 전시엔 없었던 것이지만 그의 특유한 기법을 볼 수 있다.숯(charcoal) 그림의 특성을 이용해서 그리고, 흐리게하고, 지우고,하면서 선 하나의 변화나 부분적인 변화들이 극적인 시각적 효과를 준다.










대부분의 그의 작품엔 자신이 출연한다.머리가 벗겨지고 배가 불뚝 나온 자신이 사진으로 또는 그림으로 등장한다. 음악을 공부하고 배우가 되려고 빠리에서 배우 수업을 했는데 너무 연기를 못하고 앞날이 안보여서 그림으로 전환한 후의 미련에서 일까? 일련의 애니메이션 필름을 거꾸로 돌리는 기법도 그의 독특한 작품 표현중의 하나다. 시간의 흐름과 거스름의 효과를 준다.
확실히 그의 작품들엔 시간이 살아서 흐른다. 





남아공에서 백인의 눈으로 본 
백인들의 흑인 분리 거주 정책, 다이아몬드 광 주위의 풍경, 인종차별, 동물 학살등이 그의 초기 작품들의 주제들이다. 
흰종이와 숯의 강렬한 대비를 애니메이션으로 찍어 영화로 돌리는 그의 작품들은 강한 '고발'의 효과를 지녔다.
이런면에서 그는 자신을 '정치적인 화가'라고 거침없이 자칭한다고 한다.

켄트릿지 전시관은 몇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한방에선
그의 유명한 Magic Flute을 포함해 세개의 무대로 나누어 차례로 무대를 바꾸어가며 
상영했는데, 앉은 자리에서 돌아앉으며 이 무대 저무대를 보는 것을 다 끝내고 나니 두시간 남짓 걸렸는데 새로움과 강렬한 시각, 모짜르트 오페라, 남아공의 민속음악등 
청각적인 효과에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마술 피리(Magic Flute)은 숯그림 애니매이션 영화를 
몇겹으로 만든 우리나라 인형극 무대보다 더 작은 무대 스크린에 비추고 코뿔소, 여인등 평면으로 만든 종이 인형들을 시시로 무대 좌우로 이동 출연하게 조작하고 음악을 곁들여서 연극, 영화의 효과를 주었다.

화가가 연출하는 연극, 영화인 셈이다
(유투브에서 매직 플루트를 다른 사이트로 옮길 수 없게 해서 이곳에 소개할 수 없지만William Kentridge, Magic Flute,Utube를 찾으면 볼 수 있다.)


*   *    *

뉴욕에서도 
Mother's Day에 일하는 딸 덕분에 남편이랑 같이 뉴욕 모던아트 뮤지엄에 갔다. 
이젠 너무나 많이 봐서 너덜너덜 진부해진 피카소, 마티쓰를 건성건성 건너 띠고 붓과 이젤을 거부하고 바닥에 캔버스를 놓고 물감을 뿌려댄 미국식 표현주의 작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그림아닌 난장판은 보는둥 마는둥 지나서 나왔다.

모더니즘
구태여 무슨 무슨 모더니즘으로 세분하지 않더라도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시도하는 반항의 기운

인간의 역사가 시작한 이래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더니즘 아닌 새로운 것이 어디 있으랴.

사람 사는 방법이 계속 바뀌는 것을 보면...

어머니날 저녁 엄마에게 전화드렸다.

애들 잘있느냐 하시기에 아들은 걸프랜드랑 같이 살기로 통보해 온 이후로 
오손도손 소꼽장난 연습 사이좋게 하면서 결혼할 짝을 맞춰보고 있는 중이고 

딸은 커리어 개발 중에 아직도 결혼할 날이 까마득하니 
서른 넘기 전에 자신의 난자 몇개 꺼내 보관해둘까한다며 농담아닌
농담을 하더라고 전했다.

'그렇구나, 세상이 그렇게 변했구나. 젊은 사람들 사는 방법이 그러니...

'팔십 중반의 엄마를 어머니날에 너무 놀래켜드렸나.....

어떤 모더니즘은 참 소화하기 힘들다. 

새로운 것이 늘 그렇듯이...


이천구년 칠월 이십팔일

교포아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