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야학을 시작한 장소는 어느 종교 단체의 건물이었는데 종교 단체에서 학생들의 학용품을 사주기도 하고 가끔씩 교사들 수고한다고 늦은 밤 짜장면이 배달되기도 했었다. 어느날 그 단체의 지도자가 교사들과 사전 상의 없이 야학 활동을 기사화해서 자신의 종교단체의 활동으로 소개하는 일이 생겼다. 공부하는 아이들의 사진이 찍히고 대표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주요 일간지에 게재되자 우리 중에서도 아주 중증으로 골빈 교사들이 학생들의 얼굴을 신문에 내어 상업화하고 선전용으로 쓴다고 흥분했다, 학생들의 프라이버시 침해에 관한 문제였고 선행을 선전, 상품화하는 파렴치를 문제로 삼았다. 교단측의 합리적인 입장을 우덜 교사들에게 이해시키지 못했다. 어떤 관계가 맺어질 때 한쪽은 돕는자이고 한쪽은 도움을 받는자라고 못박는 일이 전혀 납득이 안되었었다. 급기야는 분리를 선언하고 버스 종점에서도 한참 걸어들어가는 서울 변두리의 공터에 천막 학교를 세웠다. 새 학교가 세워진 장소의 잇점은 그 당시 판자촌으로 학교에 못가는 청소년들이 많은 곳이기도 했다. 비만 오면 발이 푹푹 빠지던 동네. 검정색이나 자주색 구두는 언제나 흙진창을 묻혀 다녀 누랬다. 그때 우리들을 꾸준히 밤늦게 까지 천막 학교에 머물게 한것은 눈을 반짝이며 시간을 쪼개던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망울도 있었고 젊은 남녀들이 모이는 곳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교사간의 치정 관계'^^를 하지맙시다 라는 말을 누가 교사회의 끝에 던지면 와그르르 웃었는데.... 어느새 누군가 누구와 눈이 맞는 걸 눈치채고 그 경쟁에서 밀린 낙오자의 흰손수건을 던지는 패배의 변이었거나 친구의 사랑을 애틋하게 밀어주어 선포하는 우정어린 응원의 말이었다. 짝을 만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하고 교사직을 미련없이 떠나는 솔직명쾌한 실리파들도 있었고 더 열심히 둘이서 손잡고 열성으로 몇년간을 계속 가르치던 커플들도 있었다. 수줍은 성격에 얼굴만 빨개지고 옆에서 들어도 쿵쿵 심장 소리가 들리고 관자놀이가 불뚝불뚝 뛰어도 끝내 고백 못하고 교안이나 서로 교환하다가 그만 상사병에 훌쩍 군대로 가버리는 친구도 있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의 사랑은 흔들리는 것인가? 엄격한 부모 내세워 연애 따로 결혼 따로 라고 살짝 살짝 연애 흉내만 내다 깨버리는 맛보기식 연애도 있었고 너무나 열렬한 사랑이 현실감이 없다고, 한번 깨서 얼마나 강한 사랑인가를 실험한다고 일부러 쪽박을 깨봤다가 아뿔싸 아주 깨져 박살이 나버린 어처구니 없는 사랑도 있었다. 어쩌다 잘 나가던 사이가 깨지는 경우 실연의 고통을 세상이 다 알도록 끙끙 신음을 해대던 친구. 실연을 하기 위해 연애를 한 것처럼 그 친구는 실연 당했다는 사실에 목을 걸고 실연의 슬픔에 흠뻑 취했었다. '우리 잉간은 하등동물이다. 암,수. 한 몸인 환형동물들. 예로 회충, 지렁이들을 봐라 실연의 슬픔으로 생을 갉아먹지도 않고 얼마나 인간보다 진화된 고등동물이냐.' 그 친구의 회충 예찬론이 너무 커서 그 당시 서울 장안에 다 울려 일년 후 모처에서 눈물어린 재회를 했고 둘이서 한몸 처럼 늘 붙어다니다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약혼식에서 힘차게 부르고 일찌기 결혼해서 암수 한몸 고등동물로의 진화하여 소원을 이루었던 칭구. 그렇게도 경계한 교사간의 연애질이 결혼으로 까지 맺어진 여러 치정 교사 커플 중의 하나의 이야기다. 이러구러 진흙밭을 오가는 사이 더러 휴학하고 가끔 출석수를 못채워 낙제를 하기도 하고, 실연을 하기도 하고 육군 쫄병으로, 해병대 공수부대로 자원해 하늘에서 뛰어내리기도 하고, 드물게 유학을 가기도 하고 그 당시 한국의 젊은이들이면 겪어야 하는 인생의 의례들을 치루어 가며 헤어지고 만나며 바람을 맞으며 골빈 얼굴들이 깊어져갔던 거디다. 야학은 우리덜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얻은 뒤에도 후배들과 그들의 친구, 애인, 그 후배들이 줄줄이 이어갔는데 고액과외로 과외재벌이던 대학생들이 호주머니를 이곳에서 주저없이 훌훌 털어 비우던 곳이었다. 인생을 우리들보다 더 많이 살고 더 성숙했던 우리에게 할일을 준 학생들. 몇몇은 다시 달리는 버스속으로 돌아가곤 했다. 몇몇은 중학교 검정고시 패쓰를 거쳐 유수의 야간 실업학교에 진학후 졸업해서 버젓한 직장의 정규 사원이 되었다. 그 이름들이 가슴 뿌듯하게 떠오른다. 첫월급 받았다고 뚜껑달린 볼펜을 선물로 받았었던 것 같다. 우리 인생에 들어와 우리의 세상을 넓혀주었던 귀한 인연들. 이젠 함께 나이들어가는 사이가 되었네. 어디서 어떻게 살고들 있는지... 이쯤에서 골빈 야학당 이야기는 끝을 맺는데 연애질 이야기가 가르친 이야기 보다 더 많이 나오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청춘사업에도 골몰햇기 때문이리라. 세월이 아무래도 누구에게나 그들 몫의 봄날들이 있다. 스쳐가고, 맺어지고, 깨지고, 비오고, 해나던 순간들이 파편이었을 망정 매순간 마다 진지했던... 우리들의 봄. 그 어리석은 봄에 사랑을 한 것은 순리였다. 이천십일년 시월 십이일 스무살대에 오늘 또 머문.. 교포아줌마(C) > |